#34 스스로 선택하는 삶

아픈 아이와 그런 자식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

by 비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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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양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A양은 엄마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주 만나는 타입의 학생으로 뾰로통하고,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런 친구와의 만남은 제겐 너무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A양의 표정이 여느 학생과 조금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하기 싫어도 앞에 앉은 사람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긴장하기도 하고, 여학생이라면 수줍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A양에게선 전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난 아무것도 듣지 않을 테니 괜한 수고 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란 표정을 하고 저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이리도 당돌하게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경험을 예전엔 하지 못했었습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전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 : 오늘부터 네가 해야 할 것은, 여기에 적어둘 테니 이거보고 하루에 시간 정해서 열심히 해놓으면 돼~

A양 : 네~그럼 끝났나요?

나 : 어머니 어디 계시니?

A양 : 밖에 계실 거예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초면에 참 예의가 없는 학생이구나 생각했지만 첫날이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 시간부터 혼내야겠다 다짐하고 방을 나섰습니다. 거실에선 어머니께서 절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 고생하셨어요 선생님. 우리 아이가 조금 까칠하지요?

나 : 네? 아니요. 어머니 A가 낯을 많이 가리나 봐요.

어머니 : 네.. 그렇기도 하고.....


학생이 까칠하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고,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질수록 A양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A양은 많이 아픈 상태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천식에 호흡기 장애를 알고 있어 가끔 숨쉬기 아주 힘들 만큼 고통스럽기도 하고, 염증으로 인해 온 몸이 붓기도 하는 그런 아이였던 것입니다.


나 : 어머니, 아이가 아픈데 공부를 하는 것보다 지금은 쉬게 하는 게.. 체력이 바쳐주지 않으면 학습도 어렵습니다.

어머니 :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기본적인 부분이라도 다잡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제 욕심인지요. 학교도 2~3일 빠질 때도 있어서 기본적인 교과과정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습니다.

나 : 음.. 일단 알겠습니다. 어머니. 학습을 진행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 : 그리고 오래도록 지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선생님이 자꾸 바뀌어서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나 : 네. 알겠습니다.


아픈 아이에게 학습을 시킬 수밖에 없는 부모와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학습이 너무나 싫은 아이 모두가 이해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날에는 학교도, 저와의 수업도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은 병원에 입원하기도 해야 했고, 어떤 때는 일주일 동안 수업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괜찮아지면 어머니는 아이의 학습이 걱정하였습니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행여 기본적인 학습의 부재로 쉽게 좌절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갔지만 학습에서 A양의 생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A양과 학습 이외의 대화도 하게 되었을 때 물어보았습니다.


나 : 너 선생님 오는 거 싫지?

A양 : 네.

나 : 그럼 어머니하고 얘기해서 수업 안 받도록 얘기해볼까?

A양 : 아니요.

나 : 왜? 그렇게 싫어하면서...

A양 : 어차피 선생님이 안 온다고 해도 다른 선생님이 올 거고 전 엄마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학교에서 못 배운 부분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들어둬야 할 것 같긴 해요.


A양은 엄마가 왜 자신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수업을 시키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에 공부는 하기 싫지만 그래도 그 끈을 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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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A양은 중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공부하길 싫어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건 어떤 것이 있는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겨운 영어와 수학은 여전히 안 하려 하지만 독서나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과목들은 조금이라도 보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걸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건, 부모에게도 학생 자신에게도 참 슬픈 일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아픈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양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약한 자신의 모습에 슬프기도 합니다.

너무나 씁쓸한 상황이지만 A양과 어머니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바람대로 학습의 끈은 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하려 하고, 엄마는 아이에게 학습을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밝게 잘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합니다. 다만 아이의 미래가 그래도 걱정되기에 기본적인 학습만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와 엄마가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에 아이는 건강하기만 한다면 분명 잘 자랄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아이는 분명 바르게 자랄 것입니다. 건강한 아이에게 부모가 바라는 건 학습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그런데 만일 아이가 아프다면.. 부모가 최우선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이의 건강입니다. 그저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그거 하나면 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땐,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만 다오'라고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의 마음은 그게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기왕 공부하는 거, 남들보다 잘했으면 좋겠고 아이의 재능이 사회에서 먹고살기 힘든 일이라면 재능에 대한 칭찬과 격려보단 좀 더 먹고 살기 쉬운 길, 남들과 같은 길을 가길 바랍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아이의 생각보다 부모의 생각을 교육에 더 투영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빠(엄마)가 살아보니...', '일단 좋은 대학을 들어가면....'

아이의 생각보다 부모의 관점에서 아이는 자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선택의 기회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주어집니다. 20살 이전까지 부모의 선택으로만 자라온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몰라 때론 방황하기도 합니다.


올바르게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아이들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망설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선택이 아닌, 아이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택한 길이 올바르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택한 길이 만일 잘못된 길이라면 다시 경로를 수정해 다른 길로 모색하는 것 또한 아이의 몫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선택지를 보여주며 아이가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것. 그게 필요한 사회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더 이상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성공이 아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학생과 부모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서로를 믿고 배려하며 좀 더 올바른 선택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지..

A양과 A양 어머니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통해 잠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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