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가 있는 낮 연작
회사에서 내가 제일 처음 맡은 업무는 프린터기 용지를 채우는 것도, 커피를 타는 것도 아닌 공항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이었다. 정말 자세히 ‘봤다’. 액자처럼 걸려있는 공항 지도는 달랐다. 이런 지도에서 공항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탑승구 A36번 게이트나, 출국을 위해 짐을 챙기는 수화물 찾는 곳을 표시한 게 아니다. 비행기가 어디서 뜨고 어디서 내리는지를 표시했다. 아니 표현했다고 하는 게 더 맡을 것이다. 목각인형의 틈새를 가르면 비슷하게 생긴 작은 목각인형이 또 있던 아주 어릴 적 선물처럼, 지도는 다른 작은 지도로 계속 이어졌다.
거기서 나는 2개의 큰 활주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봤다. 참 젓가락 같았다. 아직 먼 곳과 가까운 곳을 그리지 못하는 아이가 식탁 위에 젓가락을 그리면 그게 활주로가 되겠다. 그렇게 누워있는 활주로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참 두근댔다.
활주로, 활주-로,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쓰는 도로. 글자 그대로 비행기가 달릴 수 있는 아주 매끄럽고 긴 도로. 이 공학적으로 충분히 단단하고 역학적으로 충분히 긴 도로를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이 도로를 달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거나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하는 들뜬 마음으로 활주로에 올랐었다. 보통 창가 자리였다. 출발 전 비행기가 공항 로고 근처를 지나며, 앞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의 우리네 안전을 빌었다. 그리곤, 안전벨트를 매라는 스튜어디스 분들의 외침과 엔진이 점화되어 다가오는 진동을 느끼며 몇 분 간 우리가 뜰 차례를 활주로에서 기다렸다. 1, 2, 3.. 마음속으로 10까지 세고 싶지만 언제나 7 쯤에서 비행기는 출발했고 10이 돼서는 사람과 자동차가 아득한 밑으로 멀어졌다. 모든 움직임이 활주로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내 일의 시작도 활주로를 보며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