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일 00시부터 00시까지 강설량 약 1~5cm 이상 예상됩니다, 이에 따른 제설 상황반 운영 예정입니다.''
오늘도 전문적인 대답을 해낸다.
눈이 오나 안 오나 잘 모른다. 아니 우리도 남들만큼만 안다. 하늘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자꾸 우리 부서에 물어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이 오면 활주로에서 눈을 치워야 하니깐.
낮에 눈을 치우는 건 밤보다 복잡하다. 비행기가 2~3분에 한 대씩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사이사이 시간에 활주로를 쓸고 닦아야 한다.
학교 청소시간 같다. 난 청소를 열심히 하는 편에 속했다. 친구들은 청소하기 싫어서 빗자루로 풍차를 돌리거나 걸레를 빠는 척 화장실로 시간이나 때우러 갔지만, 나는 책상을 뒤로 밀고 꼼꼼히 청소했다. 아무리 꼼꼼해도 쓰레받기에 먼지를 모으고 나면 조금씩 남는 먼지가 있었고, 이 먼지까지 없어진 것처럼 보이려고 후하고 불어버리거나 물걸레로 슥슥 닦았었다.
활주로도 비슷한데 모두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만 모였다. 족히 20명이 손잡고 서있는 것처럼 큰 제설차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활주로를 횡단한다. 큰 쓰레받기 같은 제설삽들을 지나쳐 눈이 재방처럼 조금 쌓여있는 것조차도 비행기 날개에는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송풍기는 눈을 후하고 불어준다. 눈이 그쳤다 싶으면 물걸레를 하는 것처럼 제설제를 활주로 곳곳에 뿌린다.
그리고 우리 부서는 이 모든 걸 정리한다. 청소할 때 필요한 걸레, 빗자루, 쓰레받기와 같은 도구와 같은 제설제, 제설차량, 송풍기.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 비행기 사이사이에 제설작업을 언제 또 어디서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큼의 비행기가 눈 때문에 갇혀있는지를 확인하고 보고한다. 나름 바쁘다. 전화가 수십 건씩 걸려오고 아는걸 전부 시험받아야 한다.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에 올라타 어디론가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눈 때문에 비행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아주 오래 기다리게 한 적이 있다. 스페인에서 독일에서 환승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비행기였을 거다.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 이제 돌아간다는 인사를 기다리는 이에게 건넸다. 비행기는 하늘을 날아가서 엇비슷한 시간에는 도착할 줄 알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승객을 전부 태우고는 한참이 지나도 출발하지 못했다. 눈이 이렇게 오는데 비행기가 날 수 있을까 걱정이, 그래서 언제 날아가는 거지라는 푸념으로 바뀌며 잠에 들었을 때 비행기는 날아올랐다. 눈이 오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그 사람은 ''welcome back''이라는 푯말을 들고 아주 한참을 기다렸다. 전광판의 '지연'이라는 두 글자가 언제쯤 '도착'이라는 글자로 바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읽지도 못하는 문자를 보내 놨다. 기다리임 하염없이 컸으리라. 그렇게 기다리기를 3시간은 더 기다려서 도착했다. 아침 일찍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이미 정오에 가까웠었다.
이 마음을 우리는 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한참 동안 쌓여서 그 사람과의 추억을 곱씹는 순간을.
연 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중략-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그리움, 이용악
시에서도 눈이 오고 있다. 시인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향에는 분명 시인과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소복이 쌓이는 눈길을 차는 들어가지 못해 오랜 시간 걸어서라도 만나려 할 것이다. 지금 활주로에서 어딘가로 향하는 마음들도 그렇게 눈으로 쌓이고 있다.
결론은, 눈이 그만내려서 사람들이 빨리 떠나고, 활주로는 얼지않고, 나도 라면만 먹고 집에 가서 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