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연 May 14. 2020

선물

살면서 깜짝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냄비를 잃어버렸다. 혼수로 샀던 그 냄비는 가장 많이 사용하던 편수 냄비로 자주 사용하는 주방용품 중 하나다. 그런데 그 냄비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전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거름망을 받치고 나갔던 것이 생각났다. 어이없게도 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잠시 주차장을 다녀온 후 냄비와 거름망은 까맣게 잊은 채 그대로 들어왔던 것이다. 기억이 났을 땐 이미 상황 끝! 설거지를 하면서 “아깝다”를 연발했더니 아이는 냄비와 거름망의 생김새를 묻는다. 나의 설명을 들은 아이는 “아~~~ 그거~~~!” 그러더니 얼마 후,


엄마! 선물이야~!


 

'엄마 선물이야~!' 하며 조그만 손에 무언가를 펼쳐 보인다. 편수 냄비와 음식물 거름망으로 사용하던 그것을 종이로 접은 것이다. 꼬옥~ 껴안고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는 그릇장 위에 올려두었다. 

'살면서 깜짝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아주 작은 선물이더라도.... 그러기 위해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걸 잊지만 않으면 된다.'

- 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중에서 -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큰 선물이 되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여자로 태어난 것에 깊이 감사했다. 하지만 임신 중 몸이 많이 아파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누구는 동시에 셋도 키우겠다는 순한 아이를 난 참으로 어렵게 키웠다.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은 형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난 훗날 내가 없는 세상이 오겠단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엄마 아빠 없는 세상에 형제도 없이 남겨질 내 딸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 내 아이에게 바람이 있다면 선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랜 전 배우 윤석화 씨의 인터뷰 기사로 기억한다. 아이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는데 “선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그녀의 대답으로 난 그대로 얼음이 되어 기도를 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그렇게 잘 자라기를.......' 선물 같은 사람이라... 이 얼마나 좋은가.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선물이란 무엇일까

아직은 추운 지난 2월, 아이는 현관문도 닫지 않은 채 들락날락거린다. 도대체 몇 번을 들락날락 거리는 건지, 중문 너머 아이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며 성공했는지 물으니 검지 손가락을 겹쳐 엑스를 하고는 입을 삐죽인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 밖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초콜릿이 먹고 싶다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 가게로 들어갔다. 알록달록 입구부터 진열되어있는 초콜릿들을 보며 그제야 발렌타인데이를 인지한 나는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내용을 아이에게 설명해줬다. 


직장생활을 할 땐 남자 직원들 모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도 하고, 결혼 초까지는 시아버님과 남편에게 직접 만든 초콜릿을 선물했었는데 어느 해부턴가 그 규모가 너무 커졌다는 느낌에 그만두었다. 하지만 선물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져버릴 수 없어 선택권을 줬다. 아이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현란한 포장으로 유혹하는 초콜릿을 뿌리치고 적당한 사이즈의 코너에서 아빠 것과 이모부 것, 그리고 경비 할아버지 것까지 고른다. 


초콜릿을 품은 정성스러운 포장 - 아이의 선물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와서는 이면지 함에서 종이를 고르더니 열심히 색칠을 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포장지를 만든다. 테이프도 덕지덕지 접음 새도 깔끔하지 못한 참으로 어설픈 포장이지만 그 자체로 훌륭하다. 제일 먼저 경비 할아버지께 드리겠다며 현관문도 닫지 않은 채 나간 아이는 선물을 다시 들고 들어왔다. 다른 분들도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돌아왔을 땐 그냥 드리라고... 그러면 나눠 드실 거라고 했더니 준비한 선물이 하나밖에 없어 그건 좀 안 되겠나 보다. 


한... 예닐곱 번쯤 다녀왔을 땐가? 드디어 성공! 할아버지가 고맙다 하셨다고, 춥지 않냐 물어보셨다고, 쫑알쫑알 예쁜 목소리를 낸다. 아~ 좋다!


선물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하거나 또는 그 물건'을 말하지만 꼭 물건이 아니어도 좋다. 진심이 담겨있는 쪽지나 고운 언어로 표현된 말은 가슴 깊은 곳까지 울림을 줘 내겐 큰 선물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난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끔씩 수고한 나를 위해 내게 선물하기도 하고 마음이 담긴 편지를 결혼기념일 선물로 써달라고 남편을 종용하기도 한다. 


최근엔 선물 고르는 것이 어려워 퉁! 치고 안 주고 안 받기도 하지만 참으로 다양한 선물을 했더랬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주로 핸드메이드 선물을 많이 했는데 받는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설레는 일인지 모른다. 그런 나를 닮아서인가? 아이는 그림을, 종이 접기를, 편지를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선물로 준다.  올해는 내게 특별한 해이다. 그 어느 해보다 선물 같은 한 해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선물 같은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걸 잊지만 않으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부부란 무엇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