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어내지 않는 마음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상처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상처 받은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스물 무렵의 내가 그랬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와 진정한 내 모습을 봐주었으면 했다. 어설픈 마음과 행동으로 상처 받지 않으려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강해져야 한다고 되뇌었지만 그런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내가 상처 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남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상처 받기 싫은 두려움과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갈망, 이 두 가지 모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걸 글로 배웠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나이였다.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언제든 이별할 가능성이 높은 시기이기도 했다. 작은 어긋남 하나로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고도 모른 체하며 빗겨나갈 수 있었다. 모든 가능성과 불완전함을 품고 있는 시기니까.
눈 앞에 보이는 이별의 순간을 품고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이 지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헤어질 순간이 정해진 인연은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고 부서지기 쉬웠다. 헤어짐 뒤에 아직 감당해 보지 못한 슬픔과 갈망의 순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끌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기쁨과 두려움, 망설임이 공존한다. 영화나 소설과 달리 내게 그건 영원한 사랑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분명하다. 잿빛 바다에 흩뿌리는 비를 보면 되살아나는 순간들처럼.
기억을 선물 받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 기억 때문에 견디기 힘들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아픈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때 무조건 외면하려 했다면, 상처 받고 아파하기 싫어서 내가 가진 감정을 딱딱하게 만들고 떼어내려 했다면 나는 그 이후의 인연도 모두 놓쳐버렸을지 모른다. 아파할 땐 아파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어떻게든 상처 받지 않으려 몸무림 쳤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 더 겁 없이 달려들고 아파했어야 했다. 상처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쉽지 않다는 것을.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제 보았다.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영화 속에서 잘 캐치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원작 소설을 읽었다.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이 세 장면이 있는데, 그중 두 장면은 소설에서도 좋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엘리오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건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직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284p
상처 받지 않으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자기 자신을 지워나가다 보면 새로운 사람에게 줄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프게 와 닿았다. 나는 과연 제대로 아파했는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무언가를 떼어내 버린 건 아닐까. 그게 지금 내 옆의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진 않을까. 다시 그때로 가서 더 아파할 순 없겠지만 나의 결핍 때문에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실수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