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비슷한 사람들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by 나날
'한 작품의 창작자와 그 소비자는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각별히 맺어진 사이이며 사실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란 내용이었다. 그 학자가 쓰는 언어는 낯설었고 '결'은 대체 어떻게 번역된 결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갸웃하면서도 문득 여왕님을 떠올렸던 것이다. 여왕님과 나는 결이 비슷한 거야, 하고.

피프티 피플, 정세랑, 370p


이 문장을 읽고 '좋음'과 '탁월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가 봐도 절대적으로 '탁월한' 어떤 것이 있을까? 혹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탁월함'이 있을까? 나는 한 분야를 깊게 파거나 특정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와!'하고 감탄을 할 만한 것들이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탁월함'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좋음'은 없단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설령 같은 어떤 것을 좋아하더라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이유나 좋아함의 정도는 너무도 다양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좋아하는 것은 곧 소비로 이어진다. 소비라는 것이 물질적, 속물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좋아하는 이가 낸 책을 사서 읽고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영상을 구독하여 광고 없이 보거나 "기꺼이" 광고를 참아가며 봐준다. 기꺼이 내 돈과 시간이라는 자원을 투자한다는 것, 그건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향유하려는 행동이다. 이때 느끼는 좋음이란 개별적이다. 그 내밀하고 개인적인 이유를 다 알진 못하지만 결국 거기엔 나의 어떤 부분이 반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와, 이거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데! 마치 내 안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온 것처럼 한 번에 꽂히는 음악인데! 와 이건 진짜...'


크고 작은 감탄이 모여 강을 이루고 나라는 사람의 내면을 채운다. 이런 감동이 밀려올 때, 어쩐지 이걸 만든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어디 어느 한 곳에선가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 누군가 창작해낸 작품을 향유하며 그 연결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을지라도 이렇게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어떤 면에 있어서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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