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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삶

무거움을 털어내는 연습

by 나날
무엇이든 눈앞에 자신의 소유물이 쌓여가는 것이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두 부류로만 나눈다면 나는 분명 못하는 사람 쪽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위만 하더라도 스탠드, 책, 북다트, 에어팟, 헤드셋, 전자책 리더기, 노트, 연필, 코스터, 작은 쓰레기통,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를 잡은 노트북이 딱히 질서 없이 놓여있다. 이를테면 나는 정리가 딱히 되어 있지 않아도 그 속에 들어앉아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다. 손이 닿는 거리에 내가 쓰는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에 소질은 없지만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있는 것은 참지 못한다. 내가 쓰는 공간에 먼지가 없도록 쓸고 닦는 것은 자주 한다. 정리파와 청소파가 있다면 나는 당연 청소파에 속한다.


이런 성향과 오랜 자취 생활이 겹치면서 물건을 쉽게 늘리지 않는 성향이 만들어졌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건이 늘어나면 이사할 때마다 상자를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고 이고 지고 옮길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신기하게도 내가 쓰려고 하는 물건은 못 찾거나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제대로 정리는 못하는 인간의 비애다. 그렇게 서서히 물건을 쉽게 들이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물론 무언가를 사는 것 혹은 돈을 쓰는 일이 일종의 해방으로 느껴지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가며 나는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했다. 학비와 주거비는 부모님이 어느 정도 원조를 해 주셨고 나머지는 내 스스로 벌어서 생활했다.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고 밥을 사 먹고 영화를 보고 생활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내게 큰 충족감을 안겨 주었다. 사치를 할 정도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내 행동이나 욕망을 누군가에게 허락받거나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를 느꼈다.


스무 살 여름, 나는 실연이라 부를 만한 것을 경험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가진 돈을 털어 비싼 전자제품을 구입했다. 지금은 언제 어디에 그걸 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느 상자에 넣어두고 상자째 들고 이사를 다니다가, 어느 순간 그게 그 상자 안에 있었다는 걸 망각한 채 버렸을지 모른다. 값비싼 무언가가 나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걸 손에 넣자마자 알았다. 그 뒤로는 내 안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사는 행위는 웬만해선 잘하지 않는다. 거기엔 더 큰 구멍이 뚫린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혼자 살 때는 모든 것이 단순했다. 심지어 나는 생필품도 사서 쌓아놓는 대신 필요할 때 그때그때 사서 쓰곤 했다. 한참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올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니 그게 쉽지 않다. 무엇이든 최소로 사려는 나와 기본적인 것은 갖춰야 한다는 배우자의 가치관이 충돌했다. 그때 알았다. 무언가 사서 쌓아두는 것이 나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대신 배우자는 나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정리를 차곡차곡 해 놓는다. 나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 분명하다. 함께 한다는 건 타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계를 공유하고 맞춰 간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다시 읽고 있다. 저 문장을 읽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을 영위하는데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삶은 그다지 가볍지 않다. 물건을 줄인다고 해서 가벼워질까? 정박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여행자의 삶이라고 가벼울까. 계속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면 그것 역시 나름의 무게를 쌓아가게 되지 않을까?

삶은 그냥 놔두면 자꾸만 무거워진다. 그 무게를 감당하거나 털어내는 연습을 스스로 해야 한다.


무엇이든 눈 앞에 자신의 소유물이 쌓여가는 것이 그녀에게 고통이었다. 가게에서 뭔가 살 때마다 죄의식을 느꼈다. 이런 거, 사실은 필요없는데, 하고 생각했다. 옷장 안의 예쁘장한 옷가지나 구두를 보면 가슴이 아리고 답답해졌다. 그처럼 자유롭고 풍족한 광경은,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던 부자유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이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녀는 곧잘 자문했다. 하나의 감옥에서 멋지게 빠져나온다고 해도, 그곳 역시 또다른 좀더 큰 감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1Q84 BOOK1>, 무라카미 하루키, 3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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