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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지겨울 때

50년의 시간을 건너 내게 건네진 위로와 격려의 말

by 나날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심화를 위해서.

<무소유> 중, 종점에서 조명을, 법정, (경향신문, 1970.5.30)


어떤 글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수필집을 북카페에서 발견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작고 가벼운 크기.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기며 마음에 드는 제목의 글을 순서 없이 읽어나갔다. 위 문장은 그곳에서 발견했다. 이 글이 발표된 것은 무려 1970년이다. 5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마음을 두드린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이 문득 지겹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갑자기 모든 게 권태롭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땐 똑같은 추억을 마주해도 그 추억마저 다 빛바래고 쓸쓸해 보인다.


요즘은 자꾸만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 인생의 카테고리로 보면 "사회생활"이라 묶일 수 있는 시간들. 분명 하루하루 힘들지만 그 안에서 즐겁게 일하고 사람들과 교류했을 텐데 갑자기 그 모든 시간이 무게가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 무게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소위 3,6,9라고 하는 직장인에게 찾아오는 권태와 위기의 시간을 나도 지나왔다. 큰 틀에서는 같은 일을 했지만 조금씩의 변주를 꿰했고 그렇게 10년을 일했다. 퇴사라는 옵션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나에겐 생계가 우선이었고 퇴사 이후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이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많이 떠나갔다. 더 나은 직장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삶으로.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번아웃. 지금까지 몇 번인가 겪고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수준이 다른 번아웃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혹은 조직이나 집단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짓 열정과 노력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라는 자기 인식이 찾아왔다.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가면을 바꿔가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버거워졌다. 내 안에 무언가가 고갈된 것이다. 이 시기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당분간 휴식을 갖기로 했다.


쉬면서 무엇을 할지 정해 놓은 것은 없다.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을 뿐 나의 일상은 또 이런저런 반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또 지겨움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아직 모든 행동에 목적과 목표, 결과가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박혀 있는 나의 마음은 불편하다. 이 쉼의 끝에 무엇이 찾아올지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다. 일상이 지겨울 때, 반복되는 것들에 시들하고 흥미가 떨어질 때, 그때 내 인생의 끝에서 지금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반복되는 것들에서 변주를 꿰하고 그것이 심화로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50년 전에 쓰인 글이 오늘의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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