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의 동시 육아 휴직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있는데 마음이 없어서, 혹은 마음이 있긴 있는데 엇갈려서, 우리는 행복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자주 실패해.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113p
시간과 돈, 어느 것 하나 마음껏 내 것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정확히 말하면 체력이 부족했다.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끝마치고 돌아오면 에너지가 방전되어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그나마 잘 자는 편이기에 망정이지 불면증까지 있었다면 좀비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남들보다 적은 체력바(HP gauge)를 타고난지도 모른다. 남는 시간이 생기면 체력을 충전하기에 바쁘다.
혹은 어떤 것을 하기에 지금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그건 때론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미 너무 늦은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생각 뒤엔 항상 남과의 비교가 자리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 나이에 무언가를 이루었고 자신을 증명해 보였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보여줄 게 없다.'
이런 생각은 독과 같아서 한동안 자기 비하의 시간에 빠트렸다가 결국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이미 늦었어'를 만들어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은 그때마저 놓치면 영영 아무것도 못할 거란 서슬 퍼런 예언이다.
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풍족할 만큼 돈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스무 살 이후로 나는 내 몫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건 온전히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자유였다. 그 자유는 완벽히 충족되지 않았다. 절대 빈곤을 겪었던 것도 아닌데 항상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돈이 충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는 것을. 오늘의 나, 근 미래의 나를 위해서는 사실 생각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한도 내에서 여행도 다니고 갖고 싶은 것도 사고 친구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했다. 그런데도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 불안을 살짝 외면해 보았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 내에서 삶이 꾸려져서 그런지 점점 더 많은 것이 필요 없어졌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를 찾아가고 익숙해졌을 때쯤 반려자를 만나고 아이가 생겼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헌신을 요구했다. 내 시간과 에너지, 마음을 써야 했다. 내가 가진 그릇은 한계가 있는데 거기에 더 담으려 하니 감당하지 못하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내 마음은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럴지라도 표현이 줄어들면 상대방은 줄어든 표현만큼 부족함을 느낀다. 아이도 소중하고 지금껏 함께 해온 반려자 역시 소중했으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역시 그대로였다. 크고 작은 행동들이 오해를 쌓고 서운함으로 굳어져 간다.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우리는 함께 육아휴직을 쓰기로 결심했다.
아이 양육이 오롯이 내 책임이 되는걸 원치 않았다. 그렇다고 육아를 회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힘들고 좌절스러운 상황이 맞닥뜨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외롭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반려자 역시 육아로 인해 내가 혼자인 것처럼 느끼길 원치 않았다. 몇 달 간의 시행착오 끝에 둘이 함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2020년 법이 개정되면서 한 아이의 육아를 위해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어간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중이다. 곧 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덮쳐올 것이다.
시간과 돈, 돈과 시간.
이 어느 것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사실 그 앞에서 망설이기 때문에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저하고 고민하다 결국 둘 다 얻지 못하고 행복 역시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에 실패한다.
나와 내 배우자는 시간도 돈도 어느 정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휴직을 한다고 해서 그 모든 시간들이 오롯이 내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아이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시간을 나눠갖기로 했다. 시간이란 것이 얄궂어서 육아와 가사를 위한 시간이 명확하게 나뉘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점점 우리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나와 반려자, 아이가 살아가는데 당장은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매월 갚아야 하는 대출금만 빼면. 그동안 모은 돈을 얼마간 까먹으면서 살기로 했다. 예전의 나 같았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일이다. 반려자가 아니었다면 내 삶에서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되는 느낌이 드는 걸 용납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안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자유와 또 다른 의미의 자유를 찾아가고 있다.
돈과 시간을 조금씩 포기해서 우리가 행복에 다가갔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불행하진 않다. 눈을 마주 보고 웃었던 순간들이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면 하나 둘 떠오른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