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을 떠난 어린 왕자
대학에 가며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던 날이 기억난다. 친구 오빠에게 받은 보라색 커다란 캐리어 하나와 사계절 덮을 수 있는 이불 보따리 하나가 내 짐의 전부였다. 캐리어에는 옷가지와 세면용품, 문구류 약간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썼던 책상용 스탠드가 들어있었다. 엄마와 미리 올라와 정한 학교 근처 고시원엔 창문이라 부를만한 것이 하나 있었지만 작디작은 그 창으로 얼마만큼의 빛이 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그때의 난 도서관 같은 공공시설보다 내 방, 내 책상에 혼자 앉아 공부하는데 익숙했다. 방과 책상을 통째로 서울로 옮길 수 없었던 나는 빛을 비춰줄 익숙한 스탠드를 가장 먼저 챙겼다. 익숙한 소리로 켜지고 익숙한 조도의 빛을 떨궈주는 스탠드가 내 서울살이의 불안함을 조금 잠재워 주길 바라며.
함께 온 가족들이 떠나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 홀로 남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 나를 덮쳐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과 배움을 안겨줄 것만 같았던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과 기대.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운 공간이 내뿜는 외로움. 이제 내 스스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와 해방감. 이런 모순되는 감정들이 나를 휘감았다.
그렇다. 스무 살 나의 독립엔 온전히 내 삶을 꾸려나가는 첫걸음에 대한 터질 듯한 기쁨과 기대가 있었다. 동시에 이 넓은 곳에서 내가 뭔갈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외로움 역시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주말이나 방학 때 잠시 본가를 들르는 걸 제외하면 줄곧 원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았다.
그 모든 것의 첫날. 비어 있는 허전함과 외로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해질 무렵 학교 주변을 무턱대고 걸었다. 익숙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힘차게 걸었다. 3월의 첫 날은 추웠다. 점점 걸음도 느려졌다. 그때 나는 이 적막감을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하단 걸 알았다. 걸음을 멈춘 그곳엔 작은 화원이 하나 있었다. 곧장 들어가 작은 튤립 화분 하나를 샀다. 매일 물을 주고 자라나는 생명이 삭막한 공간을 채워주리라 기대하며.
그날 이후 나의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고 더 큰 혼란과 자기부정, 새로운 경험의 설렘과 짜릿함, 아픈 이별 등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창가의 작은 화분은 잊혔고 버려졌다. 나의 외로움을 가라앉히려 들인 생명을 나 스스로 내다 버렸다. 그 이후로 내 공간에 생명이 있는 것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생명을.
나 이외의 것에 애정과 돌봄을 쏟기에 내 그릇이 작다는 걸 너무 늦지 않게 깨달은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난 내가 그 화분으로부터, 화분을 버리던 나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나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 뒤로 나는 아홉 번 정도의 이사를 했다. 막연히 바라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는 나조차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쉽지 않은 기질 때문에 취업은 어렵겠다는 생각에 낙담했다. 내가 만나던 이들에게 내 마음과 정성을 있는 힘껏 다하려 노력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서 멀어진다 해도 내가 꺾이지 않도록 이런저런 방패막들을 마련해 놓기도 했다. 운지 좋게도 나를 크게 깎아내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가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지만 10년을 다녔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도 했다.
나는 그 화분에서 얼마나 왔을까.
나보다 여린 생명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살피고 애정을 준다는 것은 내 오랜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스탠드는 내기 필요할 때 빛을 주지만 내 관심과 주기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튤립 화분은 내 작은 공간을 생명이 있는 무언가와 함께 있다는 위안을 주었지만 나의 잦은 손길을 필요로 했다. 내가 그 생명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관심을 주지 못했을 때, 그 생명은 꺼져갔다. 자신이 애정을 준, 그래서 그에게 길들여져 버린 장미를 그 어떤 악의도 없이 떠나버린 어린 왕자. 나는 내가 그런 어린 왕자가 되는 것에 두려움을 안고 있다. 매우 깊은 두려움을.
그렇다, 지금 나는 내가 회피형 인간이란 것을 돌려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배우자와 아이가 있는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