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책 Oct 16. 2021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세상에 왔다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들

아이를 낳고 제일 놀라웠던 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세상에 온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나온다. 내가 아닌 타인의 세계를 찢으며 세상에 온다.


지금 거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내가 지금껏 만나오고 스쳐 지나갔지만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 때로는 사랑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무시하고 경멸했던 모든 사람들. 내가 알지 못하는 이 세상의 존재들. 그들 모두가 이렇게 누군가의 세계를 찢고 나온다는 것. 그 사실에 가치 판단이 배제된 경이로움을 느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어떤 깊은 영향을 주지 않으려 조심조심 살아왔다.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서. 내 주위를 감싸는 투명한 막이 있어서 그 막을 통해 나는 세상을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나의 어떤 것도 세상에 가 닿지 않았으면 하는 망상을 해보던 때도 있었다. 갑자기 전화하는 대신 지금 통화할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내고 답을 받아야만 전화를 걸기도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뾰족하거나 까칠하게 굴기도 했다. 그렇게 내면에 자라는 외로움을 키워갔다. 수십 년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다 책이나 영화에만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살면서 하나의 단계가 지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이전에 만났던 인연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간혹 생각나는 이들이 있었지만 선뜻 갑자기 다시 연락을 하지도 못했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sns 계정은 비활동 상태이기 때문에 온라인상으로라도 이어지는 인연이 거의 없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 또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지낸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회피형 인간으로 살아왔지만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는 짓이었다. 태어남과 동시에 누군가의 세계를 찢고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며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세상에 온 나, 그리고 우리.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를 통해 똑같이 세상에 왔다.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안에 다른 생명이 움트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조금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 낯선 존재와 함께 할 앞날을. 대부분 실질적인 준비라기보다 내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옛 기억을 끄집어내고 짜 맞춰가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 딱딱하게 자리하고 있는 심연을 깨기 위해 책을 읽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전과 다른 마음으로 귀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실은 아직도 그 심연은 깨지지 않았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불쑥불쑥 나타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꺼내본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정처 없는 이야기를.


세상은 참 신기하다. 내가 어느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그것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는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서로의 감정을 비밀스레 나누곤 했다. 세상은 모두 누군가에게 연모를 바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반면 개별적 감정의 고유성이 나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고독한 개인으로 되돌려 놓는 시간을 견뎌야만 하기도 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나는 주변에 이렇게 임신부가 많은지 처음 알았다. 동네에, 회사에, 거리에 나보다 먼저 임신한 사람들, 겉으로 티는 나지 않지만 임신부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어디에서나 만났다. 저출산 시대라는데 나는 곳곳에서 우리들을 찾아냈다. 어쩜 우리들은 눈여겨보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임신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 모두는 출산이라는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보고 들은 것들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애매모호했다.


임신하면 입덧이란 것을 한다더라. 어린 나이에 출산할수록 수월하다더라. 출산은 마치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것과 같다더라.  


내가 당면한 막연한 두려움은 거기에서 기인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애매모호하게만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엄마에게서 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천정에 불빛이 안 보이는 순간 나왔다. 이게 내가 엄마에게 들은 나의 출산 과정의 다 였다. 임신을 했을 때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해서는 더 무지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는데, 왜 어떻게 나오는지 그 과정에서 한 개인이 어떤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고 세계관이 달라지는지 왜 잘 모르고 있었을까?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 조금씩 다른 과정을 겪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 모두가 관심이 없거나.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들. 그래서 제대로 모르는 것들.


하지만 당사자인 내게는 너무도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 작은 존재가 내 세상을 전혀 다르게 흔들었기 때문에.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에. 내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세상에 왔기에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전 02화 한 줄 혹은 두 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