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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19. 2021

고독과 외로움 사이의 몸

임신이 가져온 몸의 변화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간 양호실에선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미색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작은 공간 안에 스미듯 바스러졌다. 아릿한 아랫배를 부여잡고 양호 선생님 앞에 앉았다. 작고 단단한 체구에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은 부드러운 눈길로 내 얘길 들었다. 배가 살짝 아플 뿐이었는데 이상하게 손발에 힘이 없었다. 선생님은 이 세상에 나와 단둘이 남아 있기라도 한 듯 내 이야기를 지그시 귀담아 들었다. 열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내 이마 위에 살포시 갖다 댄 손의 온기가 햇살을 타고 진동했다. 진통제를 줄 수도 있는데 많이 아픈 게 아니라면 잠시 누웠다 가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양호실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보기보다 아늑했다. 회백색 천장에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혼곤하게 빠져드는 오수였다.


엄마가 갑자기 교실로 찾아온 건 그다음 날이었다. 엄마는 조용히 나를 교실 밖으로 불러내더니 화장실로 가서 생리대를 건네주었다. 그때 나는 초경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성교육 시간을 통해, 성교육 만화책을 통해, 청소년 드라마 속 에피소드를 통해, 친구에게 들은 언니 이야기를 통해. 나도 언젠가 하게 될 거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닥치니 그게 생리혈이란 걸 몰랐다. 그날 나를 찾아온 엄마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그날 집에 돌아가니 엄마는 만화책에서 본 것처럼 내게 꽃다발을 선물해 주었다.


그날 이후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온 월경은 20여 년 후 임신을 하게 되며 잠시 멈췄다.


처음 생리를 하던 무렵 내 몸은 자꾸 변해갔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어딘가 달라져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기였다. 자연스럽다곤 하나 나는 끊임없니 내 몸이 낯설었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임신을 했을 무렵엔 내 몸에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이십 대 후반부터 생존을 위해 시작한 운동으로 내 몸은 나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옷이 되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게 무리가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적당한 휴식과 근육의 긴장을 조절해 나갔다. 요가와 필라테스 덕분이다. 숨이 차거나 단시간에 근육을 혹사시키는 운동은 나와 맞지 않았다. 조용히 숨을 고르고 계속해서 내 몸과 호흡의 변화에 집중하는 요가는 잘 맞았다. 꾸준히 몇 년을 했을 때 좀 더 욕심을 내서 복근 만들기에 집중했다. 나만 알아챌 정도의 변화였지만 그 작은 변화가 신기하고 뿌듯했다. 원래 크게 변하지 않았던 몸무게도 계속 유지했다. 조금만 벗어나도 이 익숙한 옷에서 나와야 함을 알기에 꾸준히 몸상태를 체크하고 유지했다.


임신은 이렇게 내 몸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만족스러웠을 때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갖고 싶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 피임을 하지 않았다. 결혼 석 달 만에 임신을 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소식이었지만 기뻤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생명을 소중히 지키고 싶었다.


임신은 몇 년간 유래 없이 평온했던 내 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임신 초기, 내 몸에 자리 잡은 손톱만 한 생명의 씨앗은 자신의 존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왔다. 조금만 무얼 해도 쉽게 피로해졌다. 잠시 몸을 누이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밤 중에 아랫배가 살짝살짝 아프고 소변이 마려워 잠이 깨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당황스러웠지만 포궁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애썼다.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속이 답답한 상태가 지속되어 새벽에 잠에서 깨기를 수차례 했다. 후각이 예민해져서 주방에서 희미하게 나는 밥 냄새에도 반응했다. 점심시간에 빠르게 점심을 먹고 수면실에 누웠다. 잠이 들진 않아도 눈을 감고 누워서 쉬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이 시기가 임신 기간 중 찾아온 첫 번째 힘든 시기였다. 임신 12주까지는 단축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소급 적용은 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신청하고 상급자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이후 태아 정기 검진 휴가, 후기 단축 근무까지 눈치 보지 않고 신청했다. 사실 아예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도 당당하게 신청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했다. 이건 우리 사회에서 배려와 권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갖고 있는 재능이 다르다. 뻔한 이야기지만 다르기 때문에 사회를 이뤄 모여사는 것이다. 내가 배려하고 곁을 내어 준다는 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배려하고 있다, 나 역시 배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 믿음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무리를 이뤄 살면서 우리가 어렵게 얻어내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만 잘못 생각해도 깨지기 쉽다. 금이 가기 쉽다. 나는 이런 것들이 의식적인 노력하에 단단해지는 사회를 꿈꾼다.


임신 중기가 되고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허리와 다리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급격히 체중이 늘면서 항상 익숙하게 나를 지탱해 오던 뼈와 근육이 신호를 보냈다. 다리가 저려 한밤 중에 소리를 지르며 깬 적도 있다. 점점 배가 커지면서 옆으로 누워서 자야 했다. 후기에 접어들면서 태아가 크는 속도가 빨라졌는지 배가 심하게 당겼다. 뱃가죽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로 커진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배가 커진다. 그것도 빠른 시간에.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당기는 배를 부여잡고 울었던 적도 있다. 임신선이란 것도 생겼다. 실은 임신선이란 말만 알았지 이런 건 줄 몰랐다. 막연히 가로로 선이 생기는 건가 싶었는데, 배꼽 위에 털이 자라는가 싶더니 세로로 길게 배꼽 주위로 둥그렇고 거뭇하게 생겼다. 배가 커지며 배꼽은 무섭게 팽팽해졌다. 내 배가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구나 놀란 뒤에도 계속 커졌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는 단기간에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우 낯설었다. 아이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주변의 배려를 충분히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 낯선 느낌은 계속 되었다. 당연하게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였기 때문이다. 그 변화는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건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이 변화를, 몸과 마음의 변화를 함께 나눌 수 없었다. 우리는 이토록 독립적인 개체이면서도 서로 의지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함께 있지만 결국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매 순간 실감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나와 같이 임신해 본 적이 있고 지금 임신을 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외로움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었다. 그건 단순한 이해나 공감이 아니었다. 우리 몸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인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도 각자 고유한 경험이다. 그 개별적인 경험에 대한 공감이 아니라 몸의 변화가 가져온 낯설고 외로운 감정, 그러면서도 때때로 잊지 않고 찾아오는 기쁨과 안도. 저 아래 흐르고 있는 이 양가적인 감정에 대한 공감이었다.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서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2019, 송해나)를 읽었다. 우리의 몸이 각자 다른 것처럼, 임신을 했을 때 맞는 변화나 상황은 모두 개별적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내 안을 휩쓴 이 모든 변화를 반려자와 나눌 수 없다는 게 슬펐다. 그건 함께 타고 있다고 생각한 기차에서 어느 한 명이 말도 없이 내리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동행을 향해 나는 손을 흔들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표정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 때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이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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