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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2. 2021

아들과 딸, 아이의 세계

온의 성별을 알게 되던 날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온의 성별은 생각보다 내게 큰 의미였나보다. 막상 성별을 알게 된 순간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때까지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고 품어왔던 생각들.

다른 아이와 엄마들을 볼 때마다 거기에 나를 빗대어 상상해 보던 순간들. 태몽을 들으며 막연히 그려보던 모습.

초음파를 통해 나날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움과 기쁨을 느낀 순간들.

눈에 띄게 배가 나오기 시작하며 나도 모르게 배에 손을 갖다대며 조용히 온에게 말을 걸던 시간들.


이런 일련의 시간들을 보내오며 막연히 생각했다.

‘남자 아이구나.’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란 책을 읽고 있던 때였다. 이 세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과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새삼스럽게 다시 돌아보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제약을 받았던 기억이 내게는 많지 않았다. 내겐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은 않았기에 하고 싶은 걸 다 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참고 못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내게 살가운 존재는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내 손을 잡아주곤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챙겨준 것도 아빠였다. 여자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라, 하면 안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도 없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실은 내가 무언가를 시키거나, 나를 억지로 규정하는 말을 매우 싫어하는 성향도 있었다. 잘 놀다가도 그게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 같은 기색이 느껴지면 하기 싫어졌고, ‘너는 어떠어떠한 것 같다’라는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단정짓는 듯한 말을 들으면 반발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일까, 나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민감하게 던지며 성장해온 어린이였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 가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자연스레 내 주변을 채우게 되었다. 누군가를 하나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에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나서서 서로 보호하고 막아주는 사람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어찌보면 드물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그리고 운이 좋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당연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로서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된 것은 취업 준비를 하던 무렵부터 였다.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남자 선배들은 학교 타이틀을 등에 업고 하나 둘 척척 대기업의 문을 열어제꼈다. 반면 나는 그들을 황망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고 좌절과 자기 비판, 무력감 같은 것들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공공연하게 출산과 육아를 들먹이는 분위기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질문들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때의 나는 그걸 문제 삼기 보다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불합리한 구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체념하고 스스로의 무지를 합리화 했을 뿐이다.


그 어둡고 깜깜했던 터널을 지나 나름의 성장통을 겪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나의 마음의 한 부분을 크게 떼어내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물론 큰 혼란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운이 좋은 편이라는 인식, 안도감이 나를 슬프고 화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삼키고 받아들이고 때론 맞서고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거기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안도감 같은 것이 나를 화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모두가 당연하고도 기쁘게 누려야 할 것들에서 혼자 눈치보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었을 때 산부인과를 옮겼다. 진료를 보던 산부인과는 분만을 하는 곳이 아니어서 조금 멀지만 분만 병원으로 옮겼다.


“딸이네요.”


선생님은 단호하고 생기있는 목소리로 말해주셨다. 원래 진료를 보던 산부인과에서는 성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 초음파를 볼 때도 궁금했지만, 지금 자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의료법상 특정 주수 전에는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더 궁금해 하며 물어보지도 않았다. 딸이란 얘기를 듣고 지난 번 초음파까지는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들었다고 말씀드리니, 확실한 목소리로 다시 말해주셨다.


“딸이에요. 100%.”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면 “아빠를 닮았네요. 분홍색이 어울리네요.”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 고맙고 힘이 된다.


그런데 나 자신에 대해 규정하는 말을 듣는 것도 힘겨워하던 나는, 뱃속의 온에 대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니 갑자기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이 뒤섞인 가운데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음이 터졌다. 한번 눈물이 나오자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을 몰아쉬며 울었다.


갑자기 터진 울음의 이유를 나도 알지 못했다. 남편은 더욱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저런 말을 내게 건넸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행여나 뱃속의 온에게 서운한 감정으로 전달될까봐 울면서도 배를 쓰다듬으며

“온이 때문에 우는 거 아니야. 내가 울보라서 그래.”

라고 말하며 달랬다.


그 날 우리는 좋은 음식점에 들어갔다. 저녁 시간이라기엔 이른 시간이어서 넓은 홀엔 우리를 비롯해 한 두 자리만 채워져 있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비로소 내 생각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복잡한 마음의 레이어를 하나씩 분리해 살펴볼 틈이 생겼다.



 

지금 돌아보면 터무니 없는 생각이지만 나는 딸의 엄마가 된다는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건 당연하게도 내가 딸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렇듯 완벽하지 않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내가 막연하게 부모에게, 정확하게는 엄마에게 기대했던 것, 또 실망했던 것, 결국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인정했던 것들과 그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들을 안길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막연한 두려움이 덮쳐왔다.


내가 딸이었기에 딸에게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압박감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완벽한 부모란 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딸에게는 더더욱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딸을 상처주는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안에 자리한 회피 성향이 강하게 꿈틀댔다.


다른 하나의 레이어엔 여자로서의 내 삶에 대한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와 다를 수 있을지언정 언젠가 맞닿뜨려야 할 삶의 과정들. 온도 그것들을 겪게 되겠지,라는 모래알 같이 형체 없는 아픔이 마음을 짓눌렀다. 남자 아이가 겪어야 할 세상의 모습 역시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반면 여자 아이의 삶의 과정들은 마치 어떤 예지의 느낌처럼 막연하면서도 질감과 부피가 실체가 있는듯 다가왔다.


실은  감정은 온을 낳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험한 세상에 누군가의 손길 생존을 위해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갓난 아이의 존재는 종종 내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아이도 언젠가 세상에 나가 로애락을 겪게 되겠지. 내가 어찌할  없는 당연한 영역에 있는, 아직은   없는 미래의 시간들을 떠올려  때면 가슴  켠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지금은 그게 헛된 생각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모든 것을 대신 느끼고 아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파하고 상처 받을  있겠지만 그걸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보내고 계속 나아갈  있게 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나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이가 겪어야 할 성장통이 한꺼번에 느끼고 있었다. 여자 아이인 만큼 그 성장통은 나의 경험 아래 비추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요즘도 온을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인생의 한 시절을 두 번 보내는 것 같다고. 내가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온을 통해 다시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온의 성별을 알던 순간, 나는 한 시절이 아닌 내 삶 전체가 나를 뚫고 지나가는 어떤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그건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어떤 한계의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의 레이어에 자리한 감정도 관점만 다르지 실은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언제나 경계해오는 것이 자식의 삶을 대신 사는 부모이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자식에게 강요하며 그것이 그 아이의 행복이고 나의 삶인 듯 착각하며 살고 싶지 않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 주고 싶다. 혹여나 같은 성별의 아이에게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안달복달하진 않을까, 그렇게 피하고 싶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도 갑자기 터진 눈물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돌이켜보니 섣불리 예단하고 마음 아파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것을 나도 모르게 온에게 하고 있었다. 온의 삶이 어떤 빛깔을 띠고 나아갈지,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을 배우고 느끼고 성장해갈지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온의 몫인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내 세상의 전부는 엄마였다. 채소를 먹을 때면 “이거 먹으면 엄마처럼 예뻐져?”라고 물으며 꼭꼭 씹어 먹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그만큼 엄마에 대한 기대도 컸을 것이다. 자라면서 엄마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고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이해할 수 있는 모순과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내 안에 자리했다. 이제는 조금 안다. 엄마도 나와 같다는 것을, 나도 엄마와 같다는 걸. 질풍노도의 시기를 한참 지나서도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


스무살 무렵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준 기억이 있다. 뭔가 대화를 하며 단순히 의견이 달랐을 뿐이었는데 내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었다.


“엄마가 뭘 알아?”


이 말은 곧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였지만, 그 말을 던진 순간 얼어붙던 엄마를 마주했다. 나는 엄마가 괄호 속 의미를 포함하지 않고 내가 던진 말 자체에 충격을 받았음을 직감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는데, 엄마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수준을 뛰어넘었다.


엄마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몰라. 내가 뭘 알겠니.”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알던 세계에서 벗어나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멀어지는 것 같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어떤 무늬를 갖고 있는지 지금도 막연히 그려볼 수 있을 따름이다.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라는 소설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 유치원 다닐 때였나. 한번은 너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애가 유치원이 끝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집에 오지 않더라. 전화해보니 유치원 버스에도 타지 않았다고 하고. 친구집에 간다고 했대. 난리가 났지. 신발만 대충 꿰어 신고 나와서 유치원에서부터 허겁지겁 너를 찾는데 멀리 네 뒷모습이 보였어. 나는 가만히 네 뒤를 따라갔다. 네가 두 발쯤 걷다 자꾸만 멈춰 서기에 뭐하나 봤더니,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 앞에 서서 일일이 들여다 보고 관찰하고, 때로는 만져도 보고 그러고 있더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덜컥 무섭더구나. 네가 더이상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네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네가 걷고 싶은 길을 너의 속도로 걷는 게, 너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게 그렇게 섭섭하고 무서웠다.



어린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 당연한 일인데도 어른이자 부모인 사람들은 가끔 그걸 쉽게 잃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가 마주할 세상, 아이가 만들어갈 세계. 그 속에 내가 함께 노력해서 바꿔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 한편으로 내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 그 두가지를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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