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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3. 2021

절망이 손을 내밀 때 우리는

빛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얼마 전 온은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2년이란 시간이 내 인생에서는 짧은 한 부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라는 것이 새삼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이 땅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 잊고 있던 이름들을 떠올린다.




그러니까 벌써 2년 전이다. 나는 임신 마지막 주차에 들어섰고 잘 먹고 건강하게 임신 기간을 보낸 덕분에 뱃속의 온도 주수에 맞게 잘 자라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초산이기 때문에 예정일보다 출산이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태아가 더 크게 되어 자연분만이 힘들 수 있으니 유도분만을 권유했다. 나는 조금 무서웠지만 큰 고민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긴 임신 기간을 보내며 힘이 되었던 담당의 선생님의 말을 마지막까지 믿고 입원을 했다.


출산 가방을 챙겨 병원에 입원하고 촉진제를 맞았다. 엄마는 막내 동생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낳았다. 마지막에 임신 중독 증상을 보여 유도분만을 했다. 내가 입원했다고 하자 엄마는 촉진제 맞으면 2,3시간 만에 진통이 온다고 했다. 긴장된 마음으로 촉진제를 맞고 누웠다.


분만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는 촉진제를 맞으며 아무리 기다려도 진통이 오지 않았다. 남편 역시 긴장한 채로 함께 기다리다가 식사를 하고 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오도록 진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담당의 선생님께서 긴장한 나를 안심시켜 주며, 내일 오전에 다시 한번 시도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촉진제를 더 맞지 말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데,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연예인 설리의 작고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믿을 수 없었고 오보이길 간절하게 바랐다. 나는 연예인으로서 그를 잘 몰랐지만, 인간으로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가 낸 목소리를 듣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황망한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한 슬픔에 잠겨 잠이 들었고 그날 밤에 진통이 찾아왔다.


어둠 속에서 찾아온 진통은 파도와 같았다. 처음에는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통증에 잠이 깼다. 몇 번 반복되자 이게 진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병원 침대 옆 벽에는 진통이 왔을 때, 호흡법이 단계별로 적혀 있었다. 어두웠지만 읽을 수 있는 희미한 빛은 있었다. 나는 벽에 걸린 그림 하나에 의지해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옆에서 혼곤하게 잠든 남편의 숨소리가 들렸다. 깨우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일로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걸 알고 있기도 했거니와 진통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었다.


진통은 강도를 더해가며 계속해서 찾아왔다. 눈을 감았다 뜨고 다시 감고 진통을 견디려 호흡을 하고. 이런 시간이 밤새 계속되었다. ‘이번 한 번만 참자. 이 통증도 결국 지나갈 거야.’라고 뇌 되며 숨을 쉬었다. 그리고 뱃속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온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세상에 나오기 위해 엄마가 느끼는 산고의 몇 배를 아이도 느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를 믿고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온을 응원하며 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침착하게 숨을 쉬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진통과 함께 찾아오는 것은 깊은 고립감이었다. 이 세상에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싸움은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껏 내가 해왔던 방식대로 외면하고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해내야 했다.


그때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도 이 방 밖에서 숨을 쉬고 잠을 자며 하루를 준비하는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이렇게 세상에 왔구나. 기억하지 못하지만 두렵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빛을 향해, 이렇게 세상에 왔구나.


진통이 극심해질 때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상태를 살펴보러 오시고는 깜짝 놀라셨다. 막연하게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지금이 진통의 마지막 단계인가 생각했지만 사실 잘 몰랐다. 이 만큼 아픈 것이 다들 그만큼 아픈 것인지, 더 큰 아픔이 찾아오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프셨으면 저희를 찾을 법도 한데, 어떻게 계셨어요.”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야 진통이 꽤 진행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시기도 지난 상태였다. 몇 번 더 내진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급하게 분만 준비를 하셨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크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모두들 내 진통을 대신해 줄 순 없지만 한 마음으로 돕고 계셨다. 말 한마디, 한 번의 눈 맞춤에서 그들 마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 나와 온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나는 좀 더 용기를 냈다.


복도 맞은편에 있는 분만실로 옮겼다. 어두운 병실에 있다가 갑자기 밝아졌다. 병실보다 넓어서 그런지 살짝 차갑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담당의 선생님 대신 당직을 서고 계셨던 선생님께서 내 분만을 맡아주셨다. 본격적인 분만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는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라 선생님의 말에 따라 호흡을 하고 힘을 줬다. 이를 악물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에 힘이 들어갔다.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힘을 줄 때는 숨을 참고 온 힘을 다해야 했고 다음 순간에는 크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스쳐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선생님의 말에 맞춰 온 힘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와 온은 떨어져 각자의 몸으로 세상을 맞았다.


나에게는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면, 온에게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안전한 보호막 같은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의 피로 짐작되는 피가 쪼글쪼글한 주름 안에 고여있는 온을 안았을 때 느낌은 ‘이렇게 작구나’였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 세상에 왔구나.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빛이 있는 세상에 왔구나.


그리고 온은 남편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분만실 안 선생님들은 더 분주해졌다. 곧이어 태반이 나오고 분만 담당 선생님께서 후 치료를 해주셨다. 방금까지의 고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들을 끝냈다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곧 이제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피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피가 계속 나는지 다시 확인하고 꼬매는 과정을 거쳤다. 그 모든 과정이 겨우 끝나고 남편과 함께 다시 병실로 옮겼다. 분만하러 갈 때는 진통에도 불구하고 걸어갔지만, 분만이 끝나자 휠체어에 앉혀졌다. 그 순간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분만실에 계시던 선생님이 따뜻한 담요를 몸 전체에 덮어 주시자 비로소 다시 온기를 찾을 수 있었다.

  



병원에 이틀 정도 더 입원을 했다가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몸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했다. 산후조리원을 예약할 때 그곳에서 만난 산부들은 모두 아주 천천히 발을 떼듯 움직이셨다. 그때 막연하게만 짐작했던 상태를 내 온몸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에 누워 나는 생각했다. 출산과 관련된 모든 무용담들을. 무용담이 대개 그렇듯 그것은 진실이기도 하고 과장이기도 하고 과장 섞인 진실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를 하는 사람, 본인에게는 과장이라는 말이 무색한, 아니 과장에 과장을 더 보태도 부족한 진실이라고. 한편으로는 ‘옛날에는 애 낳고 삼일만에 밭을 매고 그랬다’라는 말은 거짓임이 분명했다. 아니 정말 누군가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럴 수 있어서 그러고 싶어서라기 보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나는 확신했다. 출산 후 나의 몸 상태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은 지나고 보면 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외로웠다. 통창에 가을 햇살이 비쳐 들었지만 나는 차갑고도 상쾌할 것이 분명한 가을의 공기를 마실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나는 갇혀 있었다. 조리원이라는 공간에, 출산 후 만신창이가 된 몸 안에.


조리원에서 나는 나를 채워줄 무언가를 간절히 찾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에 종이책을 조리원으로 배달해 읽기도 하고 전자책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나의 모든 일상을 일기에 적었다.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적어내려 갔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한 것이 또 있다. 유튜브로 <진리 상점>의 모든 회를 빠지지 않고 봤다. 진리 상점은 설리가 지인들과 열었던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였다. 화면으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이 말을 할 때 표정과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속싸개에 돌돌 쌓여 마치 누에고치 같은 온과 만날 때면 우리가 함께 할 세상을 생각했다. 그 세상에서 누구도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 몸과 마음은 형태를 잃어버린 연두부 같이 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보가 이어졌다. 스물다섯, 스물일곱. 그들의 죽음은 나에게 풀 수 없는 질문과 깊은 슬픔을 남겼다.


(고) 구하라가 남긴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힘들면 하지 마,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다 그래요. 그래도 전 이게 직업이고 일인데…….”


힘들면 그냥 하지 마. 누군가 힘들어할 때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나 역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육아를 하며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화가 났다.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내 삶을 놓아버리는 것을 선택할 만큼.  


이 땅에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또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라짐은 사라지지 않은 질문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긴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희망을 잃게 하고 삶의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미움은 왜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세상에 진정한 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회색의 모래폭풍 안에서 작은 빛도 내 옆의 사람에게 조차 건너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그런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내가 힘들 때 아주 작은 것에서 희망의 끈을 잡았다. 갓 태어난 온을 옆에 누이고 손바닥에 살짝 손가락을 갖다 대면 그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잡았다. 모로 반사의 일종이라고 한다.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누가 나를 힘껏 잡아주고 있다는 그 느낌이 눈물이 날 정도로 힘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그들에게도 그들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어떤 것은 아주 작은 빛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 어떤 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마치 블랙홀처럼.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순간 그 모든 것들은 저 먼 우주에 있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은 이토록 연약한 존재다.


내가 찾은 유일한 희망은 이것이었다.  역시 빛도 소리도 공기마저도 희박해 보이는 어둠에 빠진 적이 있기에, 나는 강하기만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렇게 보일지라도  말에도 쉽게 구멍이 뚫릴  있는 솜사탕 같은 영혼이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쉽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고 손을 내밀고 싶다.


이렇게 써본다고 해서 내가 매 순간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래도 이렇게 쓰고 쓰고 또 쓰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며 이 세상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나에게, 모두에게 되뇔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연약한 존재이니까. 그렇기에 함께 가기로 손을 잡은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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