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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Oct 24. 2021

사랑의 역사

앞으로 다가올 용기와 사랑을 위해

나와 현, 나와 온, 현과 온.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는 중일까? 둘이 만나 셋이 되었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셋의 시간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나는  글을 목포의 어느 한옥에서 썼다. 온의  번째 생일을 맞아 떠난 여행에서 홀로 새벽에   글을 썼다. 온과 함께 하는 여행은 온의 빠른 성장 속도와 함께 매번 색다빛을 낸다.


온은 천천히 조금씩 때로는 빠르게 훌쩍 성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인생에서 시간이 남기는 새로운 궤적을 발견하고 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에 적응해 가면 내 시계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찍히는 기억의 워터 마크가 점점 적게 찍히면서 기억하는 순간들이 유년시절보다 적어지고 그 시간들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이 곧 서글프기만 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건강했고 일을 비롯한 생활이 점점 손에 익어 갔고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꾸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평온했다. 그 안에서 익숙한 시간의 켜를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었다.


온이 태어난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의 몸은 큰 변화를 겪고 더디게 회복했고 동시에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고 연약한 생명을 돌봐야 했다. 이 두 가지 변화는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정서적으로도 큰 변화를 마주했다. 내가 누군가의 세계에서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은 생각보다 큰 책임감과 헌신을 수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도 할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구멍은 내 안에서 계속 커지며 나를 힘들게 했다. 온에게 나의 모든 시간과 시선을 바쳤고 그만큼 빠르게 현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상황을 초래했다. 현은 내게 결핍을 느꼈고 오해가 쌓였으며 그 때문에 온과 가까워지는데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나는 멀리 돌고 있는 현을 보며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고 외로움과 분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셋이라는 상태를,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지만 셋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많은 실수와 좌절의 순간 사이사이에서도 마법 같이 빛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채워졌고 그 마법사는 바로 온이었다.


현과 나는 온의 변화를 바라보며 온이 안내하는 온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처음 바깥세상에 나와 신발들 통해 내딛는 감각의 신선함. 그 낯설고 새로운 감각이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 잊고 있었던 순간들을 나와 현은 온을 통해 다시 경험한다. 드문드문 찍히던 타임스탬프가 온의 감각과 함께 촘촘하게 채워지기 시작하며 반짝인다. 온이 우리에게 뿌리고 있는 마법이다.


온과 함께 하며 현과 나는 스스로도 몰랐던 각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보기도 한다. 그건 밝고 어두움 부분 모두를 포함한다. 과거의 어두운 시간 조차 현재의 빛 속에서 누군가와 나누기 시작하니 꽁꽁 싸매 두었던 때보다 조금 더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간격이 생겼다.


현과 만나면서 어딘가 결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물론 함께 살며 그 비슷한 결보다 서로 너무도 다른 틈이 존재한다는 걸 절절하게 느끼기도 한다. 비슷한 결 중 하나는 우리가 회피 성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나는 문제가 되는 원인을 외면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껄끄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내가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려 매 순간 긴장한다. 몰랐는데 현에게도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경향이 있다. 긴 기간 교제를 하면서 크게 부딪힌 일이 거의 없다. 그건 우리가 모든 면에서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힘든 상황에 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큰 갈등을 피하려는 성향이 일조했다. 서로의 좋은 점을 먼저 보고 서로의 작은 힘듦을 먼저 보고 배려해주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둘 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극한에 내몰리는 상황이 오자 서로를 먼저 챙기는 게 어려워졌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 나쁜 상태로 몰아갔다. 우리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었더라? 안타깝게도 특별한 마법 같은 솔루션이 있었던 건 아니다. 돌아보면 포기하지 않았던 것, 그것 하나 덕분이다. 나는 많은 관계들에서 먼저 포기하고 돌아서고 남은 외로움과 고독은 혼자 감내하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상대의 고통에도 무감해지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에서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현과 내가 보내온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중한 시간들을 온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학부 째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안에 갖고 있던 수없이 많은 의문들 중 일부에 아주 작은 빛이 비쳐 드는 경험을 했다. 아직도 더 많은 알 수 없는 어두운 영역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한때는 그 작은 빛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 같은 위안을 느꼈다.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것들이 존재하며 그중 작은 빛이라도 발견한다면 그것에 경이로워할 줄 알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려 한다.


그중 하나가 애착 이론이었다. 이제는 심리학 상식이 되어 양육인들이 크게 신경 쓰는 부모와 아이의 애착 관계 이론. 그 이론을 공부하며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의해 보았다. 부모는 내게 너무도 크고 따뜻한 존재였지만 동시에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명확한 타인임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어린 시절의 나는 독립을 꿈꾸었다.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저 깊은 곳에서 키워왔다. 애착 이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듯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낙인을 찍어버렸다.


‘나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고 그렇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씁쓸한 상실감이 휘감았다. 이제는 알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있고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관계들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현과 함께 온에게 그것을 주고 싶다. 완벽한 애착 관계라는 환상을 걷어 내고 우리가 서로에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 믿음이라 불리는 관계. 부족한 순간이 있더라도 그 부족함과 실수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빛으로 나아가는 관계. 그러니까 사랑 말이다.


목포 여행을 하기 전, 온이 골목길 투어를 할 수 있을지, 걷는 걸 힘들어하지 않을지 현은 걱정했다.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주변을 산책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온을 향해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쪽으로도 가보거래이. 여기도 축제한다고 예쁘게 꾸며 놨대이.”


목포시에서 골목 투어로 벽화와 반짝이는 전구로 꾸며 놓은 곳이 바로 그 골목이었다. 그냥 지나칠뻔한 길을 온과 함께 알려준 할아버지가 계셨다.


골목은 좁고 오르막이었지만 온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갈래길에서 “어디로 갈까?” 물어보면 “이쪽으로 가야 해!”하며 우리보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온이 안내한 길엔 색색의 물고기들과 반짝이는 물결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높고 긴 계단도 손을 잡고 씩씩하게 올라갔다. 동네 할머니들이 앉아 계신 정자를 지날 때는 큰 목소리고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는 바람에 현이 들쳐 안고 조용히 부르자고 속삭이기도 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걸어가던 나는 아이들 노는 소리로 조용할 새 없었던 내 기억 속 골목길을 떠올렸다.


내려갈 때쯤, 전구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너무 좁아 가로등도 없는 그 길을 담장을 따라 알알이 빛나고 있는 전구빛에 의지해 내려왔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온은 한참을 신나게 노래 부르다 잠들었다.


온은 마치 골목길 안내자 같이 우리를 이끌었다. 온이 안내하는 세계 속에 나와 현은 기분 좋게 취했다.


그 여운에 취해 새벽에 이 글을 쓴다.


게스트 하우스 한옥 부엌에 불을 밝히고 글을 쓰고 있는데, 온이 잠결에 내가 없는 것을 느꼈는지 복도를 걸어 내가 있는 부엌까지 왔다. 토닥이고 안아주니 다시 잠들었다. 내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각인될 모습이다. 내가 온에게 주고 싶은 것은 사랑과 믿음, 세상에 대한 신뢰와 용기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고 나아갈 힘 같은 것. 그것을 주고자 내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떨쳐내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많은 길이 남아 있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혼자 울지 않고 어딘가에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길을 비추고 있는 빛을 따라온 온의 모습에 작은 용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가 누구에게 빛이 되고 온기가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


나는 작고 연약한 사람인데 나를 부드럽고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게 바로 사람이고 사랑이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면 어딘가에 도망가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어 하는 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 동시에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절망 끝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작은 빛에라도 의지해 나아가는 사람들. 나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의 목소리와 온기에 의지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매일 그날의 용기를 채운다. 에너지와 용기가 빠져나가는 밤이 오면 푹 자고 다시 다음 날 새로운 용기를 채우려 노력한다. 그 용기를 채워주는 사람들이 그때 거기 있었고, 지금 여기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새로운 용기와 사람이, 그러니까 새로운 사랑이 온다.


이 글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제목이자,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의 역사”라는 이름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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