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하고 비로소 깨달은 몇 가지
그렇게 수술이 끝났다.
2주간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지나고 나니 짧은 것 같은데, 그땐 매우 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이렇게 오래 연이어 쉬어본 적이 없다. 다시금 2주간 병원에서 보내는 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첫 1주
수술 직후에는 통증 때문에 그냥 쓰러져 누워있었다. 왼쪽 팔에 꼽혀 있는 주삿바늘 때문에 혼자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고, 사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내가 몸이 약해지니 가장 먼저 느낀 것이 가족이란 이름의 울타리였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울타리.
스무 살 이후 혼자 살면서 내게 가족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애틋한 존재였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얼굴 보고, 같이 밥 먹을 일이 없기에 오히려 예전처럼 사소하게 다투고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연락하거나 집에 내려가는 횟수도 뜸해졌다. 하루를 마칠 때, 엄마, 아빠, 동생들을 일상적으로 떠올리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오히려 친구와 더 자주 연락했다.
그런데 막상 다치고 나니, 가장 먼저 달려와 주고 옆에 있어주었던 건 가족이었다.
입원하고 수술하러 갈 때 같이 있어준 것도 엄마였고, 수술 후에 혼자 움직이기 힘들 때 옆에서 도와준 것도 엄마였다.
혼자 심심하게 있을까 봐 저녁이나 주말에 잊지 않고 찾아와 준 것도 동생이었다.
수술 후에 잘 회복하고 있는지 와준 것도 아빠였고, 그런 아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수술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당황한 나를 안쓰럽고 따뜻한 얼굴로 바라봐 준 것도 아빠였다.
장문으로 메시지를 보내도 "ㅇㅇ"만 보낼 정도로 시크한 질풍노도의 시기 임에도 불구하고, 가기 전에 머뭇거리며 별말 없이 손을 잡아준 것도 동생이었다.
가족들 한 명 한 명이 내게 어떤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집순이에 가깝다.
친구들도 만나고, 출사도 가고, 데이트도 하고, 운동도 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2주간 입원을 한다고 했을 때도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못했던 잉여로운 것들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2주간의 입원 생활에서 느낀 건 인간관계의 빈틈에서 불어오는 허전함이었다.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지만 약속을 잡지 않는 것과 내가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상태에서 약속을 "못"잡는 것의 차이일까?
그 2주간 사람이 그리웠다.
같은 병실을 쓰는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짧게 짧게 나누는 대화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하고 일상적인, 큰 의미 없는 말이라도 더 마음을 열고 대화했던 것 같다.
2주간의 입원 생활은 나에게 이런 저런 깨달음을 주었다.
내 주변에 대해서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비로소 - 고은
나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가 노를 놓쳤다.
비로소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을 돌아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