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되지 않은 타인의 죽음
2014년 겨울, 크리스마스 다음날. 나는 파리의 한 건물 맨 꼭대기층의 방에서 낑낑대며 짐을 싸고 있었다. 열흘 남짓한 나의 첫 유럽 여행이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다. 첫 유럽 여행의 흥에 취해 생각보다 추운 프랑스의 겨울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곤 했다. 새삼 나갔다 들어오면 누군가에 의해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호텔의 시스템을 그리워하면서. 덜덜 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에 올라가면 접이식 침대를 펼쳐야 했는데, 하루는 낯선 청년이 문을 두드렸다. 낯선 이의 방문에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경을 끼고 조심스럽게 영어로 말을 건 그 청년은 "이곳은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작은 소음도 아래층에 들린다. 그러니 침대를 접고 펼 때 주의해 달라."라고 했다. 한밤 중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랐고, 나에겐 여행 중의 숙소가 누군가에겐 삶의 공간이었고 내가 만들어낸 소음이 타인의 평범한 휴식을 방해했다는 것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문을 닫았다. 여행지에서 지칠 줄 모르고 하루 몇 만보씩 걸어 다니던 내 20대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한낮이지만 혹시 아래층 청년이 집에 있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끌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소속되어 있던 스튜디오 단체 커뮤니티에 부고 소식이 떴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던 동료가 본인상을 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발인 날짜가 올라왔다. 해당팀 팀장이 올린 건조한 메시지였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쯤이면 이미 발인 날짜가 지나 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같은 프로젝트에 있긴 했지만 서로 협업이 많지 않은 팀에 속해 있어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가 나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우연히 봉사 동호회 활동을 같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나와 동갑이고 예전에는 건축 쪽에서 일하다가(이 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이직을 했다는 것,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이것도 한때 있었다는 것이지 헤어졌는지 계속 만나고 있는지 알고 있을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정도였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한 공간에 있던 동료의 죽음은 충격이었을 법 하나, 그때 나는 오히려 실감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잘못 발을 디디면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으로 된 파리의 낡은 건물에서 들은 부고는 현실감이 없었다. 부고 소식엔 사고인지 지병이 있었는지 어떤 정보도 없었다. 새해를 며칠 앞둔 그 시점에 나는 서른을 앞두고 있었고 그는 이십 대에 머물렀다.
휴가가 끝나고 회사에 갔다. 그의 장례 소식이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왠지 그의 죽음에 대해 모두들 말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한 나는 누구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는 게 왠지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지나가듯 건너 들은 얘기는 그냥 자연사였다는 것이다. 설명되지 않은 것이 많았지만 그의 죽음은 그렇게 잊혔다. 회사는 예전과 똑같이 굴러가고 있었다. 나 역시 괜한 호기심으로 비치기 싫어서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모두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몰아냈던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때때로 내 한편에 남아 불쑥불쑥 찾아왔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의 죽음처럼 너무도 가볍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소식은 영화 속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 현실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왜 그때 의식적으로 배제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속 문장을 읽고 그때 거기엔 무언가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던 게 아닐까하며 또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애써 의식적으로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
혹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70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