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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Oct 16. 2021

목숨과 바꾼 상처

아기 다리가 썩고 있대요

2013. 5월 12일 누리가 1등으로 퇴원했다. 마루의 몸무게가 제일 빨리 회복되었지만 요로감염에 걸려 며칠 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누리를 안고 병원을 나오던 날 나는 진짜 세상을 다 가진 엄마였다. 누리가 순한글로 세상이라는 뜻이란 것을 살짝 흘려본다. 집으로 아기를 데리고 와서 초짜 엄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걱정은 혹시나 배고프다고 우는 아기 소리를 못 듣고 잘 까 봐 밤을 거의 새웠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다. 엔도르핀 과다 분출로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온 세상 , 강누리 아기님

 누리는 1110g으로 태어나 뱃속에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손끝, 발끝이 괴사 직전으로 태어났었다. 수액으로 순환시켜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절단할 수도 있다고 했었다. 아기를 낳은 지 6시간 만에 들은 일이었다. 진짜 귀를 씻고 싶었다. 끔찍했다. 지금도 그 말을 기억하면 소름이 끼친다. 게다가 동맥관이 닫히지 않아 수술 위기도 있었으며 갑자기 패혈증으로 많이 아팠고, 소화도 제일 되지 않아 금식도 자주 했었는데 가장 먼저 건강해져서 퇴원을 한 것이다.  누리가 오고 나름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며 아라와 마루의 면회를 갔다. 마루도 곧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3일 전에도 멀쩡했던 아라의 다리가 이상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서 곧 터질 것 같았다. 원인은 수액이 잘 못 흘러서 피부 밑으로 흘러 들어가서라고 했다. 누리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금세 괜찮아졌었지만 이번엔 좀 심각한 상황이었다. 정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 눈치를 봤고 의사 선생님도 내 기분을 살폈다. 하지만 그분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아라는 미숙아 중에서도 초극소 미숙아였다. 750g. 말이 쉽지 딱 미미와 주주 같은 마루 인형 사이즈였다. 곧 우리 곁을 떠날 것만 같았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단태아보다 강한 생명력의 다태아였고, 두 동생들 받치고 있던 강한 아이 었다. 아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께 의지 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만 달라고 매일 밤 기도했다. 

 

 우리 아라는 잘 이겨냈고 동생들처럼 곧 잘 먹고 잘 크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모두 신생아 중환자실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한 순간 잘못 보셨다고 원망을 할 순 없었다. 순간 화가 나긴 했지만 곧 가라앉았다. 자신들의 부주의함을 인정하고 끝까지 책임져 주겠다고 하였다.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며칠 뒤 빵빵하게 부풀었던 부분은 줄어들었지만 일부 괴사가 진행되어 긁어내는 시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술 동의서를 쓰고 최대한 상처가 남지 않도록 부탁드린다고 했다.


 문제는 그 이후로 또 케어가 잘못된 것이다. 상처 테두리에만 진행되던 괴사가 상처 전체로 퍼졌다. 피부이식밖에는 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 너무 화가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처했다. 화를 내는 것이 아라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얼굴이 이렇게 이쁜데 미스코리아는 이제 못 나간다고 그러니 상처 안 남게 해 주시라 웃는 얼굴로 부탁하고 또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여린 내 아기의 허벅지에서 피부를 떼어내어 발목에 이식을 했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내 심장이 썩고, 가슴을 도려내는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작은데 더 작아진 느낌이었다. 속이 아려 아픈 것이 아픈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인지라 다리를 다치고 나서 잘 먹지도 못해 크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로 한 달 넘게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 집에 오는 날이 더디어지고 있었다.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심장이 쪼글쪼글해졌다. 그저 기도밖에 해줄 수 없는 엄마여서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또 기도했다. 삼신할머니 우리 아기 지켜주세요. 하나님 우리 아라 지켜주세요. 누구든 계신다면 우리 아기 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제발...

작은 다리에 큰 상처, 엄지 손가락만큼 얇다

 못난 초보 엄마는 오늘도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아가한테 미안해. 씩씩하고 싶은데 자꾸만 약해져서 미안해. 아가들이 엄마를 지켜주고 있어서 미안해. 미안해서 또 미안해. 튼튼하게 못 낳아준 것 같아서 미안해. 자꾸자꾸 만 미안한 엄마라 미안해 아가들...


걷는데만 지장 없다면 감사하자

우리 그렇게 생각하고 살자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건강하게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하다고

목숨하고 바꾼 상처이니

우리 그렇게 생각하자 아라야...

우리 아라는 마음이 아라(바다)니까 이해할 수 있겠지?

엄마는 또 그렇게 억지로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너를 기다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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