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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고래 Oct 18. 2021

응급실, 마지막 고비

뇌수막염, 오늘이 고비입니다. 

 고작 9개월짜리 엄마는 엄마로서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중에도 가장 최악은 아기의 생사여부를 듣던 순간이었다. 누리가 퇴원한 지 한 달쯤 되어 가던 날, 누구보다 방긋방긋 웃어 주던 아기가 웃질 않는다. 엄마로서 직감했다. 아기에게 큰일이 난 것 같다고. 그런데 누구도 내 말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고 하며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내 눈에는 아기 낯빛이 안 좋았다. 뽀얗고 분홍빛이 돌던 볼이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흙빛으로 보였다. 그것도 내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하며 좀 쉬라고 했다.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는지 아직도 의문이긴 하다. 동네 병원에서 이런 케이스(세 쌍둥이&이른둥이)를 케어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양산 부산대 신생아 중환자실에 전화를 했다. 아직 첫째 아라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울먹이며 누리의 상태를 이야기했고 선생님은 수화기 넘어로도 알 수 있도록 걱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열체크와 수유 체크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미열은 나더라도 괜찮을 수 있지만 수유가 6시간 이상 끊긴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 했다. 수유 알람 수준이었던 누리였기에 체크하기가 수월했다. 저녁을 먹더니 그 후론 수유를 거부했다. 누구보다 먹는 것에 진심인 아기인데 가슴이 철렁했다. 아기의 증상을 폭풍 검색하니 뇌수막염 증상과 비슷했다.


 뇌수막염이 바이러스성이라면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갈 수 있지만, 세균성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후유증이 청력상실, 뇌성마비다.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니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부랴부랴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일요일이라 짝꿍이 와 함께 아라를 보러 가는 날이라 준비를 하고 있어서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가는 동안 아기는 미동이 거의 없었다. 진짜 잘못될 것 같았다. 또 누구라도 좋으니 아가 좀 살려달라고 울면서 빌었다. 제발 내 아기 좀 살려달라고 누구인지 모르는 누구에게 빌고 또 빌었다.


 병원도 도착하자마자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낯빛이 흙빛인 이유였다. 수액을 놓기 위해 주삿바늘을 찔러야 했다. 정말 미친 여자처럼 간호사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 한 번에 찌를 자신 없으면 다른 선생님 불러주세요. 제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 정말 화를 낼 것 같아서 그래요 선생님." 

" 네, 어머니 한 번에 하도록 할게요."

" 진짜 한 번에 안되면 안 돼요!"


그렇게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며 어린 간호사 선생님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부들부들한 손으로 다행히 한 번에 주사를 꽂으셨고 정말로 감사했다. 아기가 아프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했고, 내가 길길이 날뛰지 않도록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척수 검사를 했다. 아기 등에서 척수를 뽑아서 검사하는 거라 아기가 아파했다. 이미 심장이 다 찢기고 없었고,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이는 듯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아팠다. 처음 느끼는 분노와 슬픔과 아픔이 공존하는 최악을 경험하고 있었다. 언어로 표현이 안되고 할 수도 없다.


오전 8시에 들어갔는데 벌써 1시였다. 아라 면회를 가야 했다. 엄마를 기다리는 또 다른 아기에게 가야 했다. 아픈 놈 두고 가려니 발이 안 떨어졌다. 아라하고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오니 30분 사이에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아기를 붙잡고 울고 있는 아기아빠를 보고 직감했다. 큰일 났구나...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뇌수막염이란다. 그것도 세균성이었다. 짝꿍이가 아기를 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큰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 여보, 아기 뇌가 녹고 있대."

"뭐라고?" 

"여보, 우리 누리 잘못하면 하늘로 갈 수도 있대."

"그게 무슨 헛소리야! 내 새끼가 왜 죽어! "


 응급실에서 목 놓아 울었다. 서러웠다. 어제라도 왔으면 덜 위험했을 텐데 내가 너무 미웠다. 새끼도 못 지키는 엄마가 무슨 엄마냐고 엄마 자격 없다고 발광을 했다. 원래는 일반 중환자실로 가야 하나 누리는 고작 3 kgf이고, 생각보다 더 심각해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또 생이별이었다. 아픈 아기를 떼어놓으려 하니 생살 뜯는 것보다 더 아려왔다.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짝꿍이도 울고 나도 울고 울지 않으려는데 눈물이 계속 났다. 뇌가 녹고 있으면 이미 가망이 없다는 건가 어떤 건가 내가 의사 선생님을 직접 보지 못해서 더 답답했다. 일요일이라 담당 교수님은 휴진이시고 전문의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너무 바빠 물어보지도 만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오후 4시가 되었다. 하루 종일 굶었지만 목이 마르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아마 바늘로 찔러도 아픔을 못 느꼈을 것 같다. 지나가던 의사 선생님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밤새 거기 그러고 있었지 싶다. 아라 봐주시던 선생님이 지나가시다 우리를 보고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어머님, 왜 울고 계세요~?"

"선생님, 우리 누리가 아프대요, 뇌수막염이라는데 혹시 보셨어요?

"네, 아라 옆에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기 뇌가 녹고 있다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네? 뇌가 녹고 있다고요? "

"네. 응급실 선생님이 그러셨대요."

"아... 그게 아니라 뇌수막염이라 혹시나 뇌염으로 번지면 뇌가 손상될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일 거예요."

"네!? 그럼 지금 녹은 게 아니네요?"

"네. 지금은 아니에요. 그런데 오늘이 고비는 맞아요. 항생제를 투여해도 바로 반응이 오지 않아서 오늘 밤 혹시나 경기를 하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폐렴구균으로 인한 뇌수막염은 생후 한 달 안에 발병하는데 누리는 벌써 3월이 다 되어가고 있어 특이 케이스예요"

" 그럼 아직은 괜찮은 건가요? "

" 네, 그러니 집에 가서 쉬셔요. 아리랑 누리 잘 볼게요"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관세음보살님 아니 신이 계신다면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 아기 데려가지 마세요. 충분히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것마저 겪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짝꿍 이를 째려봤다.


"야!!!!! 뇌가 녹고 있다며!!!"

"진짜 그렇게 들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다. 그렇지?"

"아.. 진짜..."


 무한 긍정 짝꿍 씨는 무슨 말을 어찌 들었는지 중간 말 다 까먹고 나한테 마지막 최후의 경고만 들려준 것이다. 물론 심각한 상황이 아니란 것은 아니지만 뇌가 녹고 있다는 건 진짜 아니지 않나. 이것은 뭐 희망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버텨낼 수 있는 희망이 생겨 우리는 일어났다.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정신을 차리니 순대 국밥 집이었다. 순대 국밥을 먹으며 최악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서로를 다독였다.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국밥을 먹었다.  꼭 살려서 데려갈 거라고, 후유증 생겨도 좋으니 살아만 주면 된다고 서로에게 주문을 걸듯 말했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또 한 번의 패혈증까지 겪은 우리 누리는 이제 병원 근처도 가지 않는 튼튼이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소소하게 아픈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 때 단련된 나의 멘탈은 생명에 지장 없으면 괜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엄마가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삶에 대한 태도이다. 나에대한 것에서 타인에 대한 것으로 보는 눈이 커졌고, 감성이 풍부해졌다. 그와 더불어 멘탈도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우는 중이다. 나를 사람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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