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장 기념사 논란을 보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광복 80주년 기념사 논란이 뜨겁다.
그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작년에는 독립기념관 개관이래 처음으로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해 구설에 올랐고 백선엽 등의 친일파를 재조명하는 활동으로 독립기념관장의 자질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아침 뉴스를 보니, “광복은 연합군 선물”이라고 발언했다는 일부 언론과 여당의 주장은 “기념사 내용을 왜곡한 것으로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고 하여, 기념사를 찾아 읽어본다.
그는 광복을 ‘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란 관점과 ‘독립전쟁 승리로 쟁취한 것’이란 두가지 시각을 소개한다. 전자를 세계사적 관점, 후자를 민족사적 관점이라 칭한다.
논리를 딋받침하기 위해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 말했던 함석헌 선생을 등장시켜 마치 선생이 세계사적 관점의 동조자였던 양 설명한다.
과연 광복을 이해하는 시각에 민족사적 관점과 세계사적 관점이라는 것이 있는가 싶다.
그냥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의 광복을 이해하면 되는 사실을 그는 독립운동의 저항을 격하하고 일왕의 항복은 미국의 핵폭탄 때문이었음을 부각시키려 한다.
교묘하다. 그의 기념사에는 김구, 정인보, 윤봉길, 함석헌 선생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독립투사의 글과 말이 인용되어 그럴듯해 보이는데, 내용을 살피다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함석헌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주투사였다.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독립정신을 주창했고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사랑하던 사상가였다.
일제와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며 수차례 옥고를 치른 함석헌 선생이 말한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의 의미는 곧이곧대로 연합군의 선물이라는 해석보다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한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국내에서 상해에서 가열차게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나중에 하늘도 보상을 내린 것으로 선생의 글을 이해함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2차 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 연합국의 전쟁이었다.
전쟁을 불러온 추축국은 나찌즘과 파시즘, 제국주의 등 당연히 악의 축이었지만, 연합국 모두가 처음부터 변함없는 선량한 평화세력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한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당사자인 체코의 동의없이 히틀러에게 체코 땅 주테델란트 할양에 동의한다.
히틀러의 기갑사단이 동맹국 체코를 넘어 폴란드까지 거침없이 진격해도 영국과 프랑스는 참전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파리가 함락되고 런던이 공습으로 무너지는데도 참전하지 않았다.
1941년 12월, 일본의 가미카제 폭격기에 의해 하와이의 진주만이 기습당하고 나서야 미국은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다.
소련도 독일 전차가 자기네 땅으로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독일에 우호적이었다.
1905년 미국과 일본사이에 맺은 가쓰라 테프트 밀약도 기억해야 한다. 일본은 조선을 갖고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하자고 당시 제국주의 세력간에 맺은 합의로 약육강식 힘의 논리로 작동되던 국제 외교질서의 한 사례다.
그는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에디슨같은 과학자가 되어라."라는 유언도 언급한다.
그리고, 이 숭고한 유언을 사회통합의 메시지와 결부시킨다.
이제는 역사전쟁을 끝내고 사회통합에 나서자고 한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틀렸다.
폭탄을 투척해 잡히면 바로 죽음의 길임을 알면서도 윤봉길 의사는 그 길을 따라갔다.
자식들에게 만큼은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믿음에 따라 죽음의 길에 들어선 독립투사의 열망을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 아버지따라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꿈꾸었을 애국지사의 바램에 흠집을 내어서도 아니 된다.
역사전쟁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구별해야한다.
뉴라이트는 자꾸 역사전쟁을 부추긴다. 이단적 견해를 정통사관인양 들이민다.
그러면서 사회통합을 들먹인다.
실증적인 사료에 입각하여 정통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젊은 청소년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철저히 배우지 못하고,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민족은 피지배의 역사를 반복했다.
굴종의 역사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