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오이(碧)
5. 5일째(18~20번 절), 아! 아오이(碧)
1월 17일(일)
하나와 상과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먼저 숙소를 나선다.
"하나와 상, 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도쿠시마라고 하는 큰 도시를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55번 국도를 따라 하염 없이 걷는데도 계속해서 따라 붙는 도시의 흔적들. 차량의 소음, 매연이 언제까지 이어질른지. 9km쯤 갔을까? 18번 절, 온잔지(恩山寺)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도시의 흔적을 간신히 지을 수 있었다. 절 내를 돌아보면서 어머니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코쿠 순례를 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어머니 상(喪 )을 맞아서였다. 벌써, 작년(2015년)이 되었네. 10월 28일 지병이 악화되셔서 75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신 것인데, 침상에서만 생활하셨다 가셨기 때문에, 자식으로서 해드린 게 별로 없어 회한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돌아가신 후 49재가 있는 날까지, 나름대로 해 드린다는 게, 주말마다 절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린 게 전부였다. 신자는 아니었기에 어설픈 감은 있었어도 왠지 부처님 발아래 엎드려 절을 드릴 때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통도사의 반야암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을 시발점으로 설악산의 봉정암에서, 사북 고한의 정암사에서 각각 하룻밤을 보냈고, 영월의 법흥사와 오대산의 상원사는 당일로 다녀왔다. 이 다섯 절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적멸보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49재를 맞이했고, 이어 시코쿠의 오헨로 순례길 88개의 절로 이어진 것이다. 병석에만 계셔서 함께 여행을 못했는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구경 시켜드렸고, 극락왕생 명복을 빌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19번 절, 다쓰에지(立江寺)를 지나 가츠우라가와(勝浦川)를 따라 난, 도로를 따라가다 시장기가 돌 무렵 아오끼식당 부근인 것 같은데, 서너 개의 귤이 있는 상자가 있어서 보니, 무료로 제공해 준다는 메모가 쓰여져 있다. 귤 하나를 까 먹고 있는데, 근처 다코야끼를 판매하는 상점의 아저씨가 부른다. 그런데, 이게 왠일, 나한테 다코야끼를 오셋다이로 주신다는 거다.
기대 이상의 접대를 받으니 너무 고마웠다.
아저씨의 접대를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배는 고팠지만
꾹 참고, 손에 들고 3km 전방의 가네꼬야 민박집까지 더 걷는다.
다꼬야끼의 따뜻함이 오래오래 전해져 옴을 느끼며
한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걷는다.
그리고 도착한 '가네꼬야(金子屋)'.
오늘밤 여기에서 묵을 하나와 상을 생각하며, 숙소 주인에게 하나와 상이 오시면 전해달라고 메모지를 하나 남긴다. 그런데, 메모지 전해 달라는 내용의 말을 전하는데만 한참 걸렸다. 나중에 하나와 상으로부터 메일로 감사의 답장을 받았다.
오셋다이로 받은 다코야끼를 먹는데,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다.
오후 2시를 조금 넘겨, 20번 절, 가쿠린지(鶴林寺)를 향해 길을 나선다. 해발 500m에 위치해 있어서 쇼산지 이후 힘든 산행길을 처음 만난다. 어이쿠, 마모시가 나를 반기네.
힘겹게, 힘겹게 도착한 가쿠린지. 산문의 양 옆에 있는 학(鶴)이 금강역사를 대신해 서 있는 게 새롭다. 산 이름도 한국의 통도사 뒤에 있는 영축산(영취산)과 동일하다.
4시가 되어 절 내,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아오이 주인에게 전화를 하니까, 곧바로
"바꾸(朴) 상, 4시 30분에 스이바시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5km 내리막길을 30분 내로 내려간다. 할 수 있지. 내려가면서 스이바시를 비롯한 멋진 정경이 펼쳐진다. 아름답게 굴곡진 산하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어 만나는 에미 상. 목소리가 참 고우시다. 차 안에서, 운전하시면서도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시면서 차분하게 대응하신다. 어쩜, 이렇게 말하기가 편할까?그런데, 에미 상은 감기가 들었는지 목소리가 약간 쉬었고, 기침도 간혹 하신다. 내가 다 미안하다. 전날 숙소에 머문 손님들을 접대하느라고 애쓰셔서 오늘은 쉬시려고 했는데, 괜히 나 때문에 쉬시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절로 인다. 다행히, 저녁 식사는 안 하고 아침만 먹기로 했으니까 그나마 미안한 마음은 조금 가시긴 했다. 그래도 사람을 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냥 사무적으로 대하는 비즈네스 호텔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 힘든 것을 안다.
숙소 내부가 너무도 정갈하다. 세탁할 옷들도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해 주신다고 해서, 세탁할 물건을 전해드린다. 미안하다. 저녁 식사 제공이 어렵다 해서, 아까 가게에서 산 돈코스 컵라면과 오늘 아침 오츠루료칸에서 주닌 오니기리로 저녁 배를 채운다. 넓은 이 공간에서 마음껏, 그러면서 정갈하게 저녁을 채운다.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을 하긴 했는데, 다행스럽게 숙소에 도착한 이후 비가 내린다. 침대에 누워서 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니까 너무 좋다. 숙소에 딱 한 사람이 머물러 밤새 내리는 빗소리에 잠못 들어 이리저리 뒤척인다. 오늘밤이 가는 게 너무 아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 내일까지 비가 내려
나를 여기 묶어두려나.
숙소 – 20번 가쿠린지(鶴林寺) / 총 걸은거리 29.6km
숙소 - (10k) - 18.온잔지 -(4.0k)- 19.다쓰에지 - (13.1k) - 20번 가쿠린지(해발500m) - (2.5k) - 水井橋. * 21. 다이류지(해발520m)
아오이(碧) 픽업 - 21번절 오르기 직전 스이바시(水井校)에서 픽업해서 숙소 도착
컵라면 260엔, 전화비 100엔
노쿄비 900엔
숙박비 6,000엔(아침만)
소계 7,260엔
다음날.
아,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오는구나.
송영해주는 차안에서 어제보다 더 많은 말을 쏟아내는 나,
그 많은 말을 다 받아주시는 에미 상.
아오이에서 떠나는 게 아쉬워 계속 뒤돌아본다.
몇 번을 뒤돌아봐도 그 자리에 계셔서
'감기가 더 도지면 안 되시니까, 안 돌아봐야지.'
그 자리에 10여 분은 서 계시면서 배웅을 해주시는 에미 상.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