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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날 Dec 18. 2020

[독서일기] 시인 동주, 안소영

별 하나에 동주를 만나는 시간

흰 눈이 소복이 내린 어느 날, 시인 동주를 만나는 상상을 해 본다. 


추운 겨울이 오면 시인 동주를 불러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름에 사다 놓은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오며 가며 하염없이 책 표지만 바라보다가 이제서야 그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시인 동주’, 2년 전 독서일기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윤동주의 초판 시집,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청년 윤동주의 시, 나는 이제서야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나는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새벽은 먼저 소리로 밤을 깨웠다. 타타다다, 신문 배달하는 아이의 달음질 소리, 쿨룩쿨룩, 병든 노인의 오랜 기침 소리, 달그락달그락, 어느 집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 쏴아, 물장수가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이어 새벽은 희붐한 보자기로 세상을 휘휘 둘렀다. 차츰 옅은 보랏빛을 띠어 가는 세상은 때로는 푸른 기운이, 때로는 붉은 기운이 더 감돌았다. 그렇게 날마다 조금씩 다른 빛깔로 자그마한 여공의 옹송그린 어깨, 품 팔러 나선 가장의 무거운 걸음, 새벽 기도 가는 노부인의 종종걸음을 감싸 주었다. 귀와 눈 뿐 아니라 냄새와 촉각, 쌉싸래한 맛의 미각까지 모두 깨어나게 하는 이른 새벽이었다.”


안소영 작가 특유의 섬세한 표현에 나는 어느새 새벽의 소리로 가득한 그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지 말아야 할 동주의 모습을 만나러 가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벗이 되어 같은 길을 갔던 동주와 몽규를 추모하는 장면에서는 나 또한 그들의 벗이 되어 함께 추모하고 있었고, 장례를 치르고 옷을 정리하며 오열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는 어느새 나도 한 아이를 둔 평범한 엄마의 마음으로 돌아가 감히 알 수 없는 동주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한 시대의 모습과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문학이 가진 힘이 작가의 사실적인 이야기가 더해져 생생하게 다가왔다.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도서관의 책들을 보며 동주는, 양심적인 지성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며, 사람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보편적인 선함, 정의감, 인류애 등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끔찍하고도 삭막한 이 시대를 버텨갈 힘이 되기도 했다.”


단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를 살면서 그저 자신의 생각을 짧은 시로나마 쓰고 싶었을 평범한 청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삶을 살아내고 싶었을 동주와 몽규,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 시간을 버티고 견대내주어 감사했고,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지금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차가운 겨울 12월, 별 하나에 동주를 만나는 시간, 별 하나에 작은 안개꽃으로 덮인 <소년이 온다>의 동호가 떠오르고, 별 하나에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의 말이 떠오른다. 필요한 곳에 잘 쓰일 수 있도록 올바른 생각을 놓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가슴 먹먹한 12월,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있는가.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시간, 시인 동주의 시를 가만히 읊어본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2020.12.17. 어른이 되어가는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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