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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an 14. 2023

방글라데시, 아파야 실감이 난다.

방글라데시의 시골 마을 가이반다, 그리고 응급실

앞으로 봉사와 일을 하게 될 NGO 단체인 GUK의 본부가 있는 가이반다에 2박 3일 동안 방문하였다. 다카에서 비행기로 1시간을 이동하고 차로 3시간을 더 이동해야 한다. 그냥 버스만 타고 간다면 최소 7시간에서 최대 10시간까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그나마 빠른 비행기를 이용했다. 공항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예상치 못한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부실하게 보여 걱정이었는데 생각한 것과는 달리 편안했다. 공항에 도착 후 차로 이동하는 동안은 마치 게임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듯한 환경들이 내 눈앞에 똑같이 펼쳐졌다. 긴 도로 근처에 회색 벽과 판자 지붕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밭. 내가 상상하던 그 모습들이었다.


2박 3일 동안, GUK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 작은 항구, 병원, 공장 여러 곳을 방문했다. 모든 풍경이 내가 상상하던 개발도상국에서의 모습이었다. 갈색 빛깔의 건물, 크지 않은 학교, 학생 수에 비해 작은 교실, 전구가 없어 어두운 교실 안. 물론 이 정도면 좋은 학교였다. 좀 더 시내와 멀어지면 작은 집과 같은 곳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마치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지역에 외국인은 우리뿐이니 당연히 신기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노래를 준비해서 보여줬다. 큰 학교에서는 국가와 국민체조를 보여주었다. 반면 작은 학교에서는 우리를 둘러싸고 국민체조로 시작해 숫자 노래, 알파벳 노래를 율동과 함께 10분 이상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했지만 여러 학교를 이렇게 돌아다니니 점점 안쓰러워졌다. 특히 작은 학교는 과했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  하기 싫어했는데... 다른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아이들의 모습을 응원해 주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점은 아이들이 순수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누구를 응원했나고 물어보자 메시하고 네이마르를 좋아한다고 그 많은 아이들이 서로 소리치며 말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귀엽다.



이곳의 강은 마치 바다 같았다. 인도에서 시작된 이 강은 만 5km 정도로 매우 크다. 50개가 넘는 섬이 있다. 각 섬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배 타고 가까운 섬은 2시간, 먼 섬은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5월이 되면 홍수가 발생해 이 섬들이 다 잠긴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내린 비들이 급격하게 불어나 이 큰 강을 더 크게 만들어준다. 특히 인도에서 시작된 비는 예고 없이 갑자기 불어나 대피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기간만 되면 섬에 사는 사람들은 가이반다의 대피 시설에서 지낸다고 한다. 솔직히 5월이 걱정이 된다. '내가 과연 도움이 될까?'라는 근본적인 걱정부터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걱정까지 여러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3일 동안 카레만 먹었다. 이곳의 모든 음식은 카레가 베이스인 것 같다. 아침은 야채카레와 난, 점심과 저녁은 밥과 야채, 치킨, 국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요리는 약간 씩 은은하게 매웠다. 그리고 모든 요리에 카레가 들어갔다. 야채요리, 생선요리, 치킨, 국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카레를 많이 먹으면 황달에 걸릴 수도 있다.', '이러다가 미니언즈가 되겠다' 등 카레 요리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솔직히 음식들이 이렇게 빨리 질리 수 없었다. 이렇게 1년을 먹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벌써부터 라면이 생각난다.


과연 이 음식들이 문제였을까? 3일의 일정이 끝나고 다카에 돌아온 3시간 뒤, 열이 나기 시작했다. 38도를 넘었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30분 뒤 열이 떨어졌지만 3시간 뒤 열이 다시 38도를 넘었다. 이렇게 하루동안 반복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음 날에는 열이 떨어지면 설사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물에 타먹은 것 말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은 것이 없고 소화액들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녹변이 나왔다.


결국, 다음날 저녁에 다카 응급실로 향했다. Koica-SOS 서비스를 이용해 근처 병원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병원 시설은 깨끗했다. 물론 검사 비용이 15만 원 이상이기에 비쌌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검사 결과는 세균성 장염이라고 하였다. 장티푸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약은 무려 6가지를 처방받았다. 아마 가이반다에서 먹은 음식들의 문제였을 것이다.


Evercare Hospital Dhaka


가이반다를 가서도 내가 방글라데시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게임, 다큐멘터리 속에 있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2박 3일 동안 스케줄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만했기에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아프고 나니 실감이 났다. 내가 있는 곳은 방글라데시이고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타국에서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방글라데시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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