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장래희망을 적어 내야 했다.
나는 장래희망이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나는 온전히 내가 누구인지, 오로지 나의 욕망으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던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체는 없지만 한 어린아이에게 느껴지던 장남의 책임이 나에게는
훨씬 더 직접적이었고, 중요해 보였다.
나의 웃음보단 가족의 웃음을 보는 것이 나에겐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노력과 최선을 내가 나에게 부여한 책임을 다하는 데에 할애했다.
(아니 그것이 나의 욕망이었을지도...)
'그래, 장래희망을 뭐로 써내지...'
어린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
장래희망란에 '작가', 이 두 글자를 써넣는다.
왜냐고?
음......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끝에 나의 꿈이 작가라면,
지금 잠깐의 힘듦도 한 때의 고난도,
나의 글감이 되어 결국은 나의 삶을 빛나게 해 줄 것만 같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라면, 그런 시간들을 이겨내고 비로소 더 성장하고
더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은 '그 느낌'을
그 어린아이가 어렴풋 짐작했다고나 할까.
그때 그 회색의 재생지에 적어낸 두 글자는 아직도 나의 장래희망으로 남아있다.
앞으로도 나의 시간들이 나의 삶을 설명해 주는 멋진 글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