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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Mar 05. 2023

귀신도 울고 갈 남과 북의 해학반도도1

최초의 액자형 해학반도도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는 바다(호수)와 두루미, 신령한 복숭아를 소재로 한 전통 왕실그림이다.

동아시아 그림의 원형인 [요지연도(瑤池宴圖)]를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

민본정치를 통해 태평성대의 구현이라는 유학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백성들은 장수와 풍요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수용한다.]    

 

“우연히 여행 유튜브 영상에서 러시아 조선식당에 걸린 [해학반도도]를 보았네. 조선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여성 접대원과 이야기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림이 먼저 보이더군.”     

[러시아 조선식당에 걸려있는 해학반도도. 화면을 갈무리한 것으로 화질이 좋지 않다. 이 작품은 원작을 바탕으로 재창작한 것이다. 똑같은 그림이 다량으로 창작하여 판매했을 것이다.]     


“이북의 주류미술은 조선화(朝鮮畵)라네. 전통그림도 조선화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창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네. 그런데 [해학반도도]를 그대로 걸었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일세.”     


“러시아 조선식당에 걸린 작품이 실제 물감으로 그린 것인지, 인쇄물인지는 확인이 되질 않네. 혹시나 하여 이북의 [해학반도도]에 관해 찾아보니 딱 하나가 검색되는군.

2008년 방북한 기자가 민예전람실에서 본 [해학반도도]와 거의 같군.”     


참고로, 평양국제문화회관은 평양시 중구역 영광거리에 있으며 북한의 대표적인 종합 문화시설이다.

1988년 준공된 이 문화회관(연면적 2만5천㎡)의 1층 민예전람실에는 고려청자와 목공예, 옻칠공예, 수예품, 민화, 전통악기 등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특이하네. [해학반도도]는 보통 8~10폭 병풍그림으로 창작한다네. 그런데 민예전람실에 전시되어 있는 [해학반도도]는 병풍그림도 아니고, 대략 가로 2m 이상의 액자형 그림으로 보이네. 5폭을 따로 그려서 이어붙인 흔적이 있는데, 태어나서 이런 형식의 그림은 처음 본다네.”         

[이북의 민예전람실에 있는 [해학반도도]. 5폭으로 나눈 흔적이 보인다. 그림 아래에는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보아주신 장생도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이북의 민예전람실은 조선시대 공예품이나 미술작품을 전시한 민속박물관으로 소개한다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원작이라는 말이군.”  

   

“놀라지 말게. 이북에 있는 [해학반도도] 원작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우리나라에 똑같은 작품이 있네. 바로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본인 [해학반도도]일세.”    

  

“남북에 똑같은 [해학반도도]가 존재한단 말인가?”  

    

“정확히 같은 작품은 아닐세. 채색이나 선묘, 세밀함 따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

이렇게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같은 초본을 사용했기 때문일세.

그러니까 남쪽의 소성박물관 [해학반도도]와 북쪽 민예전람실의 [해학반도도]는 한 몸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같은 그림이라는 말이지.”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본 [해학반도도]. 이북의 민예전람실에 있는 [해학반도도]와 일란성 쌍둥이 그림이다. 5폭으로 나누어 그렸지만 훼손되거나 유실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병풍이 아니라 액자형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음, 정말 그렇군. 자세히 보니, 경기대 소성박물관 소장본 [해학반도도]는 5폭 병풍그림처럼 보이네.”

     

“병풍그림은 좀처럼 홀수, 그러니까 5, 7, 9폭으로는 만들지 않는다네. 병풍을 접었을 때 그림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는 짝수가 되어야하기 때문이지.

이 때문에 소성박물관 소장본 [해학반도도]는 좌우로 3폭 정도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네.”  

   

“뭔가 이상하군. 남쪽에 있는 [해학반도도]가 3폭이 유실된 것이라면, 북쪽의 그림은 온전한 형태이거나 유실된 모습도 달라야 하지 아닌가?

그런데, 북쪽의 그림은 남쪽의 [해학반도도]와 똑같이 3폭이 유실되었고 남아있는 모습도 똑같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설마, 이북이 이남의 그림을 보고 베낀 것일까?”   

  

“대단한 눈썰미를 가졌군.

[해학반도도]와 같은 작품은 대부분 병풍으로 만들지. 그런데 이 [해학반도도]는 처음부터 병풍그림이 아닐 수 있다네.  

3폭이 유실된 것이 아니라 원본 자체가 액자 형태로 만들 수 있도록 창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지.”     


“어쩐지, 유실된 것과 관계없이 남아있는 5폭으로도 작품의 전모가 드러나고 감상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느꼈네.”   

  

“소성박물관 소장본에는 폭을 나눈 흔적이 보이네. 이를 근거로 5폭이라고 추정하고 짝수 원리에 따라 3폭이 유실되었다고 판단한 것이지.

만약 병풍으로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액자형식으로 만들 계획이었다면 짝수는 무의미하지.”   

  

“액자에는 한폭 그림을 넣는다고 알고 있네. 폭을 나누어 그렸다는 것은 병풍으로 제작하기 위함이 아닌가?”     


“[해학반도도], [십장생도], [오봉도]와 같은 대형 그림은 한 번에 그리지 못하네. 작은 폭으로 나누어 창작하는 것이 편하고 효율적이지.

작은 그림틀에 나누어 창작하고 나중에 붙이는 전통 방식 때문에 흔적이 남았을 것으로 추정하네.

이렇게 그림틀에 나누어 창작한 그림을 다시 하나로 붙였던 사례가 있다네.

바로 1920년에 제작한 창덕궁 부착벽화이지.

이 작품이 창작되었을 20세기 초반에는 일본이나 청나라로부터 액자형의 작품이 수용되었다네.     

아무튼, 병풍그림인 [해학반도도]가 액자형으로 제작된 최초의 사례일 가능성이 높네.”


“같은 초본을 사용해도 그리는 화가의 기량이나 기법, 재료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남북의 [해학반도도]는 너무 똑같지 않은가?”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본 [해학반도도]는 구입 경로나 원작자, 창작연도를 비롯한 작품제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네.

이건 조심스런 견해이네만, 이북에서 수입한 그림을 경매를 통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네.”     


“소성박물관 소장본이 이북에서 창작한 [해학반도도]라고 하더라도 뭐가 문젠가.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전통그림일 뿐인데.”  

   

“이북의 [해학반도도]에는 미묘한 정치적 문제가 걸려있다네.”     


“정치적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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