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Apr 13. 2022

임신 공포증에 대하여

아주 공적이고 사적인 이야기.

  오늘은 아주 솔직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임신이 두렵다. 모든 여성들이 임신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 더 심한 수준인 거 같다. 어느 정도냐면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한다고 해도 임신이 두려워서 관계를 못할 거 같다고 생각할 정도다. 어떤 피임이든 100%는 없으니까. 이쯤 되면 왜 그렇게 임신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출산하는데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母)가 동생을 출산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는데, 정말 기괴하고 끔찍했다. 출산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나는 그걸 겪어낼 자신이 없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어머니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 일뿐 존경스러운 사람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임신 중절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 임신을 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출산을 하거나 임신 중절 수술을 받거나. 출산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니 임신을 하면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아야 할 텐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출산만큼이나 몸에 무리가 간다고 한다. 그런 경험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생물학적으로도 임신은 여성이 책임져야 할 몫이 매우 크다. 그런 책임과 몸이 망가지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걱정 안 하고 자유로운 내 몸으로 살고 싶다. 세 번째 이유는 아기를 잘 키울 자신이 없다.(이건 출산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이긴 하다.) 어쨌든 아기를 낳았으면 책임지고 양육을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나 하나 챙기기도 버겁고 힘들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타인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볼 수 있겠는가. 아기를 잘 키울 자신도 없는데 낳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본다. 게다가 난 아동학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과연 내 아기에게 한 톨의 영향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아동학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들도 자신의 자녀를 낳아서 기를 권리가 당연히 있다. 하지만 내겐 없다. 학대하지 않고 건강하게 양육할 거라고 호언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이것 또한 출산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다.) 탄생을 축복이라고 여기지 않아서다. 지금까지 살면서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인생의 쓴맛, 단맛, 짠맛 다 맛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생의 가치를 잘 모르겠다. 상류층이 아닌 이상 돈 벌려고 내내 허덕이다가, 죽어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신을 믿지 않았을 경우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진다.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기본적으로 우리는 선택권 없이 태어난다. 태어날지 말지도 정할 수 없고,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랄지 선택할 수도 없다. 그저 도박 같은 미래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세계에 내 아기를 내몰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될까 봐 무척이나 겁난다.

 이것들이 내가 임신에 대한 거의 병적인 공포를 가지게 된 이유다.(성차별적인 사회에서 아기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서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첨언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 부디 기술이 발전해서 100% 피임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임신으로부터 너무 안전하지 않은 사회인 거 같다. 나라에서 저출생 문제 때문에 이를 방치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간혹 가다가 여성들이 요즘 비출산을 지향하는 것에 대해서 이기적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아기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더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말씀드리고 싶다. 본인들이 낳으실 거 아니면 입을 다무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남겨본다.


 소제목에서 밝혔듯 이 글은 아주 공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공포이기 때문에 공적이고, 내 개인의 문제로 인해 파생된 이유들 때문에 지극히 사적이다. 그래서 나의 글이 넓고도 깊게 읽히길 바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가감 없이 썼으므로.

 

 

이전 09화 의지는 약하지만 내 몸과 잘 지내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