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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Sep 07. 2022

망해버린 수능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

목표라는 말이 두려운 이유


수능을 망했다.

내 인생에는 있을 줄 몰랐던 일이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친구들은 으레 나를 찾았다.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나는 소위 말하는 전교 1등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녔던 3년 내내 나는 내가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짧게는 고등학교 3년,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의 시간을 쏟아부은 수능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점수와 등급을 받았다.


나름대로 노력해왔던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 최악의 성적표가 곧 내가 된 기분이었다. 원래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고 이제 와서 그 사실이 들통 나 버린 느낌이었다.


당연히 재수를 준비했다. 그런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재수 없는 소리지만 나는 공부를 별로 싫어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수험생활로 돌아가는 게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시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때 마주하게 될 절망이 두려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모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에 앉아 있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어 보니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꽤 있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치솟아 있던 콧대가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나의 초라함과 마주하기 시작한 때는 이 시기부터였던 것 같다.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대신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대학생활이었지만 휴학 1년을 포함한 대학생활 총 5년 동안 나는 놀랍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삶에 마지막 남은 의지를 짜내어 다녀온 어학연수에서조차 나는 내가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너무 이상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일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던 나였는데, 기억이 조작되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도약'을 위한 준비조차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냥 이만큼의 사람인 건 아닐까?


스스로 정해놓은 선 안에서 타협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데에는 그리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하고, 또 좌절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회비용을 절약하는 것이야 말로 지혜라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 되기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망해버린 수능 이후 정말 처음으로 '목표'라는 걸 세우고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 되기 프로젝트>를  글로 남기기로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음에도 정작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정말 도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비웃을 사람도 없고 그럴만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은 더욱이 없는데 나는 여전히 실패가 두렵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 순간이 마치 발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 되기 프로젝트>를 멈출 생각이 없다.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이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강력한 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지난 10년 간 나를 가두고 있었던 '목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상 다시 '도전'이라는 '도마' 위에 오르고 나니 애써 외면해왔던 진심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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