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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Apr 18. 2016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나도 나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리는 가끔 스포트라이트를 부러워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호감을 사는 사람, 남들보다 쉽게 무언가를 얻어가는 사람을 질투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의 가장 달고 부드러운 부분에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사랑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고, 새로운 사람을 금세 만나서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가끔은 생각 없어 뵈는 그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유투브 'Tirtle Shark'님의 <난 그런 여자가 아니야 Buzzfeed Irl (버즈피드) - I Am Not That Girl>, 버즈피드 번역버전


어느 날.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 필자에게 말했다.

"오빠는 죽고 못 사는 연애, 다시 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오빠 다운 거니까요"

라고.


이 말 이후로 나는 '관성(나 다운 것)'에 대해 3개월이 넘도록 생각해야 했다. 나 다운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래의 나로 돌아가겠다는데. 대체 뭐가 잘못됐는가? 이런 질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디 나의 모습에 염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염증을 느끼는 자신 조차 나 다운 모습이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결국 필자는 지금까지도 죽고 못 사는 연애를 못하는 중이다. 그녀의 말 한 마디가 내게 준 영향이 친구들의 조언보다 영향력이 컸다.

관성이란 녀석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길래 자신의 인생을 들춰보는 수고를 하게 되고, 이렇게까지 불쾌한 기분을 선사하는 걸까.



Grigia Bot, Karel Teige (1941), Collage


나는 나고, 내가 우주의 중심인 듯 살아가라는 노랫말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싫증 날 때가 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모순적인 언행과 행동에 염증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낸다. 자신의 한계가 보이는 듯하고, 그 경계선에서 넌더리가 난다. 가슴이 조각조각 찢어진다.



Hugo Barros (2012), Collage


'나의 관성'은 마치 콜라주 같다. 나는 이것저것 레디메이드(ready-made) 되어 있는 것들을 가져와서 나를 구성하는데, 가져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지치고, 힘 빠지고, 축축하며 불쾌하다. 이 순간에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에 빠지지도 않으며,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것도 아닌, 자기 비하. 그 자체에 푹 빠져 취해 버린다.



세상 모든 것들을 참고한 뒤, 가장 힘빠지는 것들을 모아놓으면 그것이 나의 콜라주일 것이다 / Hugo Barros의 개인 작업실


얼마 전 친구와 이런 말을 나눴다.

S:
자기 자신을 안다는 건, 좋으면서도 가끔은 참. 슬픈 거야.

H: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S: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됨과 동시에 '나는 어차피 이런 놈이니까' 하며 선을 그을 수 있게 되는 거지.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숨이 덕에 찰 때, 죽어라 달리지 않고 허무하게 돌아나와 버리게 돼. 그게 내 한계니까.


나란 녀석과 그 경계선은 참 별로야.

H: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착잡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 다운 모습'에는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받아들여야 하는 내가 들어 있다.

결정을 하든, 심지어 결정을 하지 않는 모습도 나 다운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이 나 다운 것으로 귀결된다. 타인이 말하는 나 다움은 틀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틀린 질문을 자신의 문제로 끌어와서 '나다운 것이 뭐지?'하고 고민하는 순간, 내가 결정하는 모든 답은 나-다운-것이 된다.


Hugo Barros (2012), Collage


내가 오랫동안 속상해할 일이 있다면, 네 생각 때문이 아니라 네 한 마디를 타고 걸어 들어간 내 마음의 협소함 때문일 것이다. 나 다운 것은 때때로 이렇게 비참하기 그지없다.


Fin.


이 글을 휘갈긴 후 한참이 지난 후에, <나답다는 말은 결국 모순이다>라는 글이 탄생합니다.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나답다는 것은 무엇인지' 때문에요. 눈물도 조금 흘렸습니다. 덕분에 이 글과 <나 답다는 말은 결국 모순이다>라는 글은 시간이 조금 지나, 그때를 다시금 회상하는 순간에도 약간의 쓰라림과, 글을 적던 날의 향수, 그리고 살짝 베어 나오는 청춘에 대한 달콤함이 뒤섞여 묘한 향취를 풍깁니다. 마치 타이어 냄새, 모기약 냄새, 그리고 타르 냄새에 대한 묘한 끌림처럼요. 저는 아름답고, 귀하며 또 불쌍한 사람인가 봅니다. 저는 제가 많이 좋아하던 그 사람만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저도 그 사람과 똑같은 처지의 청춘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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