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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고 Aug 05. 2016

종말론, 04

소고 단편선

[3편]에서 이어짐. 

[첫화] 보기.




다시 여기는 스타벅스 안.


"아지야 미안해……. 내가 좀 흥분했었던 것 같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나선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재미로 보는 거라 생각했던 것에 오히려 아지보다 내가 열을 더 낸 것 같았다. 민망했다. 나는 너스레로 이 상황을 무마하기로 했다.


"헤헤, 아까 술사가 말한 위기가 이런 건가 봐. 미안해 아지야, 한 번만 봐줘. 응?" 

나는 팔짱을 낀 그녀의 손을 풀어주고는 그녀의 푹 꺼진 고개를 올려보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미안해. 나는 사실, 오늘 그 술사란 사람에게서 우리 둘 사이를 재미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런데 그 술사란 작자가 예쁜 말은 하지도 않고,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난 거야. 그래서 나도 이상한 말로서 그 사람을 곤란하게 해주고 싶었어. 그뿐이야."


"그래?" 

아지는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그러나 그녀도 화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아서, 이제는 외면하던 몸을 돌려 창밖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2층 창문 아래로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자동차의 행렬이 이어졌다.


아지는 가방을 열더니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냈다.

"자, 여기." 아지가 말했다. 

"우리 백일 선물이야 오빠. 지금 분위기랑은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아지는 테이블에 상자를 올려놓는다.


"내가 먼저 주고 싶었는데." 내가 말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아침에 샀던 목걸이를 꺼냈다. 

"내가 걸어줄게." 나는 목걸이의 버튼을 풀어 그녀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서 묘한 향기가 올라온다. 쁘띠마망인가? 좋은 향기다. 그녀의 향수 냄새를 뒤로 나는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목걸이를 채우고 손을 풀었다. 아지는 이제 목걸이 알맹이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오묘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눈가가 따뜻해졌다.


"오빠 선물도 풀어봐."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알겠다는 눈인사 후에 선물을 풀었다. 잘 포장된 선물상자 안에 시계가 하나 들어있다. 지샥이다. 검고 둥근 테두리의 베젤이 카페 조명을 아래 반짝거린다.


"오빠 시계 안차고 다니잖아. 그런데 이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기쁜 표정으로 그녀를 한 번 바라본 뒤, 시계를 손목에 둘렀다. 택이나 보호필름 같은 것들은 이미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포장하면서 미리 떼어놓은 것 같다. 그녀의 세심한 배려일 것이다. 털털하면서도 섬세한 모습이 공존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고마워.” 나의 말에 그녀가 빙긋 웃는다.

나는 시계를 내려다본다. 그녀가 사준 시계는 오후 6시를 표시하고 있다.


"저녁 먹으러 갈래?"

오늘은 왠지 그녀를 집에 보내기 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이고, 머릿속 바람일 뿐이다.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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