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득 마흔 02화

아직 진짜 마흔은 아니라구!

결국은 만으로도 마흔이 되겠지만

by Snoopyholic
IMG_4665.jpg


우리나라의 나이 시스템은 참 독특하다. 다른 나라에서 거의 대부분 생일을 기준으로 0으로 출발해서 다음 생일이 돌아오면 한 살씩 먹어가는 체계인데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고, 생일과 관계 없이 해가 바뀌면 나이를 먹는다. 그러니까 12월 31일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1월 1일이 되면 두 살이 되는 것. 이를 ‘세는 나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방식이 이뤄지다가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일본은 1902년에 법을 제정해서 1950년대 이후 완전히,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시대를 거치며 사라졌지만 유독 우리나라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의료보험 같은 법적인 부분에는 만 나이가 적용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세는 나이’가 통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이런 체계를 가리키며 사람 빨리 늙게 한다며 놀리곤 했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갈 때는 덜하지만 이십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갈 때부터는 마음속으로부터 뭔가 저릿한 느낌이 시작되지 않던가! 그래서 나 또한 그러한 시스템이 딱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비웃는 뉘앙스는 거슬렸기에 이렇게 쏘아주곤 했다.


“너희는 태중에 있는 태아를 무시해서 그렇게 시스템을 적용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뱃속에서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태아로 자라나는 시간을 존중하기 때문에 태어난 순간 한 살이 되는 거야. 그리고 지금 통용되는 양력 시스템을 따르자면 1월 1일이 되면서 해가 넘어가는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 단 하루를 살았더라도 그 사람은 한 해에서 다음해로 넘어가는 걸 경험한 거야. 그러니까 나이를 먹을 자격이 있는 거라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말인지 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술자리에서는 다들 정신이 몽롱하니까 통하고, 맨정신이라면 1월 1일에 나이를 먹는 것까지는 몰라도 ‘태아 기간 존중설’은 다들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올해 들어서 손윗사람들이 “네가 올해 몇이지?” 하고 물으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마흔이에요”라고 고분고분 대답할 수밖에 없어졌다. 그들이 의도했던 안 했던 즉시 덧붙이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다. “히야, 너도 이제 많이 먹었구나.”


조금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잘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 마흔 살이면 중년에 접어든다고 생각했던 것이 생생하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많이 먹었다니!


‘내 비록 지금 마흔이라고 말하고는 있으나 사실은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만으로 따지자면 나의 나이는 아직 서른여덟이란 말이오! 나의 마흔은 아직 1년도 넘도록 남아 있단 말이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많이 먹었다고 말하지 마시오. 그러는 당신은 나보다 더 많이 먹었으면서. 흥, 피, 치!’


이런 이야기를 하니 한 친구는 구차한 발악 같은 것 하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자며 초월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아직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흔일 자신이 없다. 여전히 지나가는 한 줌의 미풍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바람에 실려온 속삭임에 귀가 팔랑거린다. 그러니까 내가 끝내 어쩔 수 없이 진짜 만으로도 마흔이 되기 전까지 나 스스로는 끝까지 발악하며 삼십대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것만이 내가 덜 구차하게 진짜 마흔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keyword
이전 01화마흔에 즈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