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문득 마흔 03화

YOLO라는 인생의 길 위에서

생(生)엔 균형이 필요해

by Snoopy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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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자 주위가 포근한 침묵으로 잠잠해지고 눈앞으로는 그간의 내 인생이 영화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죽음이란 이렇게 고요하고 매혹적이었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누군가 나의 손목을 잡아챘다. 일순 좀 전의 평화는 사라지고 이걸 놓치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필사적으로 그 손길을 잡으려고 허우적댔다. 나중에 나를 꺼내준 사람의 말에 따르면 내가 하도 잡아당겨서 자신도 같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고, 학교(그는 체대생이었다)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버둥거릴 경우 기절시킨 뒤에 목을 팔로 감아 구조하는 거라 배웠는데 막상 실제상황이 닥치니 그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경험을 하고 나니 인생이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내일, 아니 몇 시간 뒤에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라는 깨달음은 그때까지 제도권이 정해놓은 틀에 완벽하게 맞춰서 착실히 살아온 모범생의 인생을 뒤흔들어놓고 말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 한 번뿐인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남의 눈치 보며 시키는 일, 하기 싫은 일 꾸역꾸역 하면서 살지 않기로 말이다. 취업 후 안정적인 삶을 꾸리는 건 처음부터 목록에 없었다. 그저 마음껏 세상을 떠돌고 싶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그걸 발표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객사하는 것도 참 낭만적이겠다는 철 없는 생각까지.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며 돈이 모이면 즉시 여행을 떠나고,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떠돌다가 돌아오는 삶이 계속됐다. 남들은 사업 아이템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견해서 돌아와 성공신화를 쓰는데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일 뿐.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떠돌다가 실컷 술을 마시고 산책하는 것이 내 여행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르면 끄적여 소설로 만들어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정도. 10년 넘도록 당선됐다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기쁜 전화는 받아본 적이 없지만.


그나마 운이 좋아 책을 몇 권 내기는 했으나 초판을 소진하는 것도 힘든 세상 아닌가. 그렇게 20, 30대를 보내고 나니 다양한 후폭풍이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호텔 연회장 서버, 여행사 오퍼레이터, 자유 기고가, 포토그래퍼, 통역사, 번역가, 미술회사현지사무소 직원, 편집자 등 살면서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꽤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했는데 뭐 하나 오래도록 한 건 없었다. 뭘 하나 진득하게 하기 전에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어딘가를 떠돌았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강하게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서른다섯이 지날 즈음부터 살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긴 했지만 여전히 나는 예술가로 살고 싶었다. 글을 쓰고 발표하는 삶. 그래서 꼭 필요한 돈만 벌며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삶에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무주택자이니 집을 빌리는 돈이 필요했고, 각종 세금과 고지서, 식품,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대중교통비 등 숨 쉬며 인생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다 돈이었다. 내가 버티겠다고 마련하는 비용은 턱없이 부족했다. 효도도 하고 싶고 예쁜 조카 선물도 사고 싶은데 그런 것은 굉장한 사치였다. 그러니까 사회적 기준에서 봤을 때 나는 완벽한 무능력자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가장 아껴줘야 합당한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쳤음은 물론 마음마저 아프게 했다. 뒤늦게 그 동안 업종 변경을 위해 애써온 차, 음료 쪽으로 취업해봐야겠다고 나섰지만 그것도 녹록하지 않았다. 면접조차 보러 오라는 곳이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이 나이 정도면 직접 카페라도 차려서 누군가를 고용해야지 직원으로 들어가기엔 부담스러운 것인지도.


작년 말쯤 세 번째 책을 냈다. 천 부 찍었는데 여전히 많은 부수의 책들이 창고에 고이 잠들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출판 업계에 수년 동안 얼쩡거려온 내가 인세를 받아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정도로 황당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그 책과 이전 책으로 소규모 강의나 강연 같은 것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뭐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내 소원대로 소설가로 등단한다 한들 글로만 먹고 산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그랬는데, 우리나라에서 인세로만 먹고 사는 건 대통령 되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고. 그렇게 100살 넘도록 살지도 모르는 YOLO의 길 위에서 조금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참 일찍도) 찾아왔다.


누구나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앞날엔 짙은 안개가 껴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다. YOLO를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로 찰떡같이 믿고 이삼십 대를 보낸 덕분에 내 앞에 살짝 드러난 사십 대의 길은 벼랑 끝에 위태롭게 걸쳐진 가늘고 긴 널빤지다. 게다가 나에게는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도 있다. 너무나도 두렵고 떨린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는 없다. 필요하면 남의 눈치 보며 하기 싫은 일도 꾸역꾸역 해내야 한다. 그저 이 위태로운 길이 짧기만을 바라며 최대한 중심을 잡고 건너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이삼십 대에 욜로를 편향적으로만 해석해서 꿈 하나만 바라보는 삶을 선택한 결과다.


부디 중심을 잘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무탈히 나아갈 수 있기를.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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