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날아간 아이들의 소원

아이들과 함께 떠난 대만/상해 배낭여행 이야기 3

by 서효봉

오늘 아침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제 못 다한 일정까지 포함해 가야 할 일정이

가득한 관계로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들 방으로 모닝콜을 해 깨웠는데

남자 아이들은 씻은 건지 안 씻은 건지 의심스러운 모습으로

번개 같이 식당에 내려가 있었다.

역시 여자 아이들이 살짝 늦긴 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신속하게 내려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숙소 조식은 그냥 보통 수준이다.

먹을만한 게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 먹을만한 것도 아닌 딱 중간이다.

그래도 대만에서의 첫 아침이라 그런지 다들 별 말없이 잘 먹었다.


조식을 먹고 서둘러 출발했다.

지하철 역을 향해 진격하던 중 갑자기 호랑이가 외쳤다.


“선생님~ 이지카드를 숙소에 두고 왔어요!”

“헐~ 얼른 갔다와~ 지하철 역 가는 길에 있을께


아이들을 먼저 지하철 역으로 보내고 호랑이를 기다렸다.

얼마 후 호랑이가 달려왔다. 첫 대사가


“쌤~ 대만 날씨 왜 이렇게 더워요? 반팔 입어야겠어요~”

“안 달리면 괜찮은데 달리니까 많이 덥지~~”


사실 대만 날씨는 늘 10도 이상이니 겨울 치고는 온도가 높은 편이다.

게다가 옷도 두꺼우니 좀 달리면 땀이 절로 난다.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일을 치르고 지하철에서 아이들을 만나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은 말 그대로 타이베이 중앙역이다.

지하철인 MRT와 기차인 TRA, HSR을 탈 수 있는 역

그리고 버스터미널까지 연결된 곳이다.


오늘은 TRA라는 기차를 타고 스펀으로 가는 날이다.

그래서 TRA 타는 곳으로 가 아이들을 잠시 기다리게 했다.

스펀으로 가려면 루이팡이라는 곳을 먼저 들려야 한다.

그래서 루이팡 가는 기차 티켓을 사러 갔다.

사실 이지 카드를 이용하면 그냥 갈 수도 있지만

지하철처럼 생긴 열차를 타고 가야 하고 시간도 좀 더 걸리는 관계로

좌석이 있는 지광호 열차 티켓을 샀다.


아이들이 대만 열차를 한번 타 보는 것도 경험이니

갈 때는 이렇게 하고 올 때는 이지 카드를 이용하려 한다.

그렇게 티켓을 사서 아이들에게 돌아왔는데

호랑이가 이번엔 화장실을 갔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별로라 그랬는데

역시나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갔나 보다.

좌석을 배정해 준 다른 아이들은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출입구에서 호랑이를 기다렸다.

기차 출발 10분을 남겨두고 호랑이가 돌아와 플랫폼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기차에 탈 수 있었다.

아이들 자리가 따로 떨어져 고등학생과 중학생을

적절히 섞어서 다른 호차로 보냈고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원숭이와 다람쥐를 데리고 함께 탔다.

다람쥐는 피곤했던지 기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원숭이는 3줄 정도 떨어져 앉아 있는 나에게

심심하다는 표정의 메시지를 계속 보내왔다.


타이베이에서 루이팡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루이팡에서 다시 스펀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기차 밖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다른 풍경이 보인다.

루이팡 가는 길은 번화한 타이베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농촌 같은 풍경이다.

아니 그보다는 퇴락한 마을의 풍경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루이팡과 스펀은 예전에 잘 나갔던 탄광이었다.

석탄 산업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퇴락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 어디쯤 될 것이다.

그러다 탄광 마을을 연결해주는 선로인 핑시선을 관광용으로 개발하면서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루이팡 역에 내려 스펀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스펀 가는 기차는 1시간에 1대 정도 운영하는지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탄다.

사람이 너무 많아 출퇴근 지하철 같은 느낌을 준다.

동작 빠른 사람들은 쏜살같이 올라타 자리를

차지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굼벵이가 따로 없다.

앉을 자리는 없지만 기차 구석에 모여 서서 이야기 나누기 바쁘다.


그러다 단체로 여행 가는 대만 초등학생들이 기차에 우르르 올라탔다.

호랑이가 ‘스캇’이라고 하는 한 대만 초등학생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곤 곧 기린도 합세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머지 남자 아이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물론 대만 초등학생들도 우리 아이들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대만 아이들이 우리 남자 아이들에게

초콜릿 과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동시에 선생님을 찾길래 기차 안에서 함께 단체 사진도 찍어주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런 경험은 어디 좋은 여행지에 들려 잠시 느끼는

새로움보다 더 큰 인상을 남긴다.

처음 말을 걸었던 호랑이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다음에는 대만 사람들하고 더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게 더 재밌어요.”

“그럼~ 먼저 말을 걸어보면 누구라도 잘 이야기 해줄껄~”

“그런데 아까 이야기해보니까 중국어를 좀 섞어서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요.”


하더니 중국어 회화가 적힌 종이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여자 아이들은 함께 기차를 탔던 대만 아저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몰라도 다 같이

알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기차가 복잡해 힘들기만 할 것 같았지만

뜻밖의 대화 상대 덕분에 지루함을 덜면서 드디어 스펀에 도착했다.


스펀 역에서 내리면 철로를 하나 건너 역 밖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그 철로를 지날 수밖에 없는데,

그 길목에서 표 검사를 하던 직원이 앞서 가던 우리 아이들을 붙잡았다.

아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표를 보여달라는 직원의 다그침에

타이베이에서 루이팡까지 올 때 이용했던 표를 보여줬다.

그러니 직원 표정이 바뀌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직원이 뭔가 오해한 것 같아 따라가 봤는데

역시나 아이들이 무임승차 한 걸로 오해하고 벌금을 내라고 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우리는 루이팡에서 여기까지

이지카드로 왔다고 다시 강조해 이야기했더니

다른 직원이 와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보내줬다.


그렇게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역을 나와 스펀 탄광 마을로 갔다.

스펀의 하이라이트인 천등 날리기를 하러 천등 파는 가게로 직행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천등 가게에도 사람이 북적댄다.

아이들은 밖에 대기시켜두고 내가 안으로 뚫고 들어가 예전에 안면을 익혀둔

가게 주인분과 이야기 해 20분 뒤에 오겠다고 예약해뒀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징안차오 흔들다리로 이동했다.

이 흔들다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흔들다리보다 폭도 크고 높이도 높다.

그 때문인지 흔들림이 덜한 편이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은 좀 시시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거 흔들다리 맞아?' 할 정도니까. 뭐.

여자 아이들도 처음엔 시시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다리 중간쯤 가서는 좀 조심스러워했다.

높이도 높고 흔들리긴 흔들리니까.

그래도 흔들림이 적으니 사진 찍기에는 적당했다.

남자 아이들끼리 모여 한번 찍었고 여자 아이들도 모아 한번 더 찍었다.

그리고 나서는 아이들끼리 서로 서로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약속한 20분이 지나 다시 천등 가게로 가자 아까보다 훨씬 사람이 줄었다.

아이들에게 천등에 적을 소원을 미리 생각해두라고 했다.

한참을 뜸 들여 쓴 소원들을 살펴보니 역시 미리 생각했다기보다는

적으면서 생각한 듯했다.

천등에 적은 소원들을 좀 공개하자면

거북이는 복 많이 받게 해 달라고 적었다.

사슴은 가족의 건강을 비는 내용을 소원으로 적었다.

오리는 당당히 전교 일등을 적었고, 비둘기는 전부 다 아프지 말길 비는 내용을 적었다.

두루미는 노력한 만큼 거두게 해 달라고 적고 있다.


그럼 남자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겠다.

암호 해독이 필요한 지경이다.

역시 남자 아이들에게 글씨 쓰기는 어려운 과제인가 보다.


아이들에게 소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남들 보기 좋은 것을 이루는 것?

그게 무엇이든 어떤 의도이든 나름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생각의 기회만큼 자란다고 본다.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많이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다면 좋겠다.


천등에 소원을 적고 먹물이 마르기까지 기다렸다가

이제 드디어 천등을 날리러 간다.

스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차선로에 서서 천등을 날렸다.

여자 아이들이 먼저 날리고 그 뒤에 남자 아이들이 날렸다.

생각보다 높이 올라가는 천등에 다들 감탄하는 것 같았다.

어떤 아이는 천등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천등 날리기를 끝낸 뒤 기념으로 기차선로에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천등 가게의 직원분이 도와줘서 이 단체 사진에는 나도 나오게 되었다.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나와 아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될 듯하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스펀 마을도 돌아보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간다.

스펀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먹을만한 식당이 잘 없다.

그래서 간단히 간식 정도를 사 먹고 타이베이에 가서 먹기로 했다.

스펀의 이름난 간식으로는 닭날개 볶음밥이라는 게 있는데

닭날개 잘라 그 안에 볶음밥을 넣어서 구워주는 게 특징이다.

기름기도 없고 담백한 게 맛이 괜찮다. 다만 먹기가 좀 불편한 게 흠이다.

그렇게 스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루이팡을 거쳐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 다음 편에 계속 -


* 이 이야기는 2015년 1월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대만/상해 배낭여행 이야기입니다. 아이들 실명을 쓸 수 없어 동물별명으로 대신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배낭여행에 참여한 남자 아이는 호랑이, 참새, 기린, 원숭이, 다람쥐로 여자아이는 오리, 비둘기, 두루미, 사슴, 거북이로 표기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