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세탁소 집 아들 누구. 오락실 집 아들 누구누구. 슈퍼 집 아들 누구누구누구.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같이 몰려다녔던 몇몇 친구들. 중학교 때 서로를 헐뜯으며 웃어댔던 망나니들. 고등학교를 다니며 함께 PC방을 점령했던 동지들. 그리고 기억의 역사를 넘어 지금도 만나고 있는 친구들. 이 모든 얼굴들은 저마다 제각각이고, 그 얼굴의 배경이 주는 느낌 또한 다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얼굴들의 공통점은 친근함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친근하다’를 검색하면 예문으로 최일남의 <꿈길과 말길>의 한 부분이 나온다.
구질구질한 인사치레라든가 돼먹지 않은 절차를 뛰어넘어 단번에 상대방과 친근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렇다. 친근하다는 건 이런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만나더라도 ‘구질구질한 인사치레’와 ‘돼먹지 않은 절차’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까움. 반갑다, 오랜만이다, 얼마만이냐 정도면 바로 예전의 ‘우리’가 될 수 있는 게 그 얼굴들이다. 물론 내가 너무 낭만적일 수도 있다. 현실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고, 시간은 ‘우리’를 비틀어놓았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우리’가 될 수 있는 아니 그랬으면 싶은 게 친구들이다.
그래서 또 검색을 해보았다. 친구의 어원은 서양과 동양이 다르다. 서양에서 친구라는 말의 어원들을 찾아보면 사랑과 연결되어 있다. Friend의 옛날 영어인 Freond, 라틴어 amicus, 불어 ami, 스페인어 amigo, 이탈리아어 amico, 그리스어 philos(φιλος). 모두 친구라는 의미지만 사랑하다는 뜻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동양은 한자문화권이니 한자를 살펴보자. 친구라는 말은 親舊. 그러니까 친할 친(親)에 옛 구(舊)를 써서 오랫동안 친하다는 뜻이다. <박대종의 어원이야기>라는 칼럼을 보면 친구라는 말은 진나라의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처음 등장한다고 하고, 그보다 앞서 사마천의 사기에 구(舊)가 동의어인 고(故)로 쓰인 親故(친고)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 가운데 친(親)은 ‘친척’, 고(故)는 ‘친구’를 뜻해 친구의 어원은 옛 고(故)라고 한다. 결국 동양에서 친구는 오랜 시간 친했던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여행하며 만난 서양 사람들은 나와 마음이 맞거나 뜻이 통하면 금방 나를 친구라고 불렀다. 어떤 때는 눈만 마주쳐도 오 마이 프렌드를 외친다. 첫 눈에 반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친구가 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서로 잠시 마음이 맞아도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없으면 금방 남이 되거나 어정쩡한 관계가 된다. 친구를 소개하며 10년 지기 친구, 20년 지기 친구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리라.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어디까지나 대체로 그렇다는 말. 이렇게 서양과 동양에서 말하는 친구의 의미가 다르지만, 구분에 관계없이 우린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오랜 시간 친했던 사람이든 본질적으로 친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그저 얼굴만 낯익은 친구도 있고, 꼴 보기 싫은 친구도 있고, 친구의 친구도 있고, 가족보다 친한 친구도 있다. 어느 정도 친하면 친구라고 불러야 할지 구체적으로 정해 둔 게 아니니 어쩌랴. 다만 우리의 마음은 그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똑같이 친구라고 불러도 거리와 깊이, 느낌이 다르고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구분해낸다. 그냥 다 친구지 뭐 하고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저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고운 놈, 미운 놈, 순진한 놈, 뻔뻔한 놈, 웃긴 놈, 못 말리는 놈까지. 이렇게 다양해서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져도 조금 지나면 다 같이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친해진 친구들과는 가끔 만나든 자주 만나든 마음이 편하고, 서로의 달라져가는 모습을 같이 느끼게 된다.
난 고등학교 친구들과 계모임을 하는데, 2달에 한 번쯤 만나는 계모임이다. 평소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수시로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물론 여전하구나 싶은 구석들이 곳곳에 존재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노련함이 각자에게 깃들어 있음을 감지한다. 그런 기운이 느껴질 때면 서툴렀던 우리의 과거가 이렇게 감처럼 익어 홍시가 되어가는구나 싶다.
지금 보는 친구만 친구겠는가? 지나간 그들 또한 친구였고 어딘가에 살고 있을 테다. 어두컴컴한 기억 속을 떠도는 그들.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과 같다. 얼마나 많은지 감도 안 잡히는 그 별들도 나름대로 모여서 산다. 별들이 모여 만든 나라를 은하라고 친다면 우리가 사는 태양계는 그 은하의 마을쯤 되지 않을까? 이 마을에는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같은 별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그 별들 사이로 수많은 소행성들이 떠돌고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소행성들은 끌리는 별이 있으면 그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떨어져나가기도 하고 어떤 별과 부딪혀 없어지기도 한다. 그 행보는 누군가를 닮았다. 소행성처럼 우리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함께 울고 웃고 나누고 부딪히는 친구들. 한 때는 전부였고 지금도 소중한 존재들이여. 나를 사람답게 하고 일깨워주는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별다른 말과 행동, 특별한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저 마음 편한 사람. 어리석었던 시절의 부끄러움을 함께 뚫고 달려온 내 인생의 목격자들. 나의 못난 삐뚤어짐과 모자란 요령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고, 어색해하지도 않는 따뜻한 위로. 이런 일 저런 일 어떤 일을 겪어도 쉽게 섭섭해지지 않는 우리. 우리라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웃음. 그 시간의 결과물.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어느 시간, 어느 공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든지 간에 마음이 통하여 시간의 퇴색쯤은 간단히 뛰어 넘을 정다운 무지개. 인생에 비가 내리고 나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기원한다. 내내 좋은 향기로 웃으며, 함께 늙어가길 잔잔히 욕심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