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단어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통하는 가장 심한 욕을 ‘패드립’이라고 한다. 패륜 + 드립을 의미하는데 흔히 부모나 가족들을 욕할 때 패드립 친다고 한다. 그렇다 가족을 욕하는 건 패륜이다. 가족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마 가족의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원수보다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개별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명쾌하게 이야기를 해도 명쾌해지지 않는 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부터 그 요상한 소재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 가족은 썰렁했다. 유머감각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고, 마주 앉아 이야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다. 패드립 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랬다는 거다. 난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 어릴 땐 엄마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갔고, 좀 커서는 내 동생이 취직을 해 다른 곳에 살았다. 난 결혼한 후 따로 살고 있다.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 자연스레 그게 당연해졌다. 이제 시간이 생겨도 대화가 별로 없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나와 내 동생 때문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또 그만큼 친한 사이였다. 같이 이불을 덮어쓰고 그 안에 들어가 건전지를 연결한 꼬마전구에 불 들어오는 걸 보며 신기해했다. 비밀스럽게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면서 키득거리기도 했다. 우린 늘 같이 놀았고 같이 다녔다. 둘이 놀다 지겨워지면 다른 친구들을 불러 같이 놀기도 했지만 일단 기본은 둘이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생활이 바뀌고 각자 학교생활에 집중하면서 놀 시간이 없어졌다. 그러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사소한 일로 한바탕 싸웠다. 사춘기를 맞이한 소심한 남자 둘이 싸우니 그 날부터 원수가 되었다. 거의 몇 개월을 아는 척도 안하며 살았다. 사실 난 싸우고 그 다음날 바로 풀릴 줄 알았다. 늘 그랬으니까. 허나 생각보다 동생의 저항은 완강했다. 어쩌면 나도 겉으론 그랬을지 모른다. 두 남자의 사춘기 자존심은 충돌했다. 엄마는 우리들의 냉전을 알았지만 살기 바빴기에 어찌할 수 없었다. 내 동생과 난 소 닭 보듯이 서로를 무시하며 살았다. 마치 남처럼.
시간이 흘러 철이 들면서 우린 어느 정도 서로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감은 있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그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명찰을 달고 나니 요령이 생겼다. 적당할 정도로 다가가고 적당히 이야기하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적당함이란 누가 정해준 게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레 적당함이 정해졌다. 필요한 이야기 정도만 하고 문제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같이 해결하려는 정도였다. 난 그런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편하기도 했다. 좋은 점은 서로 잔소리 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니 편하다는 것. 안 좋은 점은 가족다운 화기애애함이 없다는 것. 처음엔 좋은 점이 마음에 들었으나 나이가 들수록 안 좋은 점이 더 마음에 안 든다. 이걸 극복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보니 생각만 앞서고 행동은 굼뜨다. 해야지 하면서도 이런 저런 것들을 재며 팔짱만 끼고 있다. 지금, 나와 내 동생은 냉전 시대보다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어릴 적 친밀함을 회복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서로 그렇게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아빠는 아버지라 부르면서 엄마는 어머니라 부르지 않으니 이 무슨 불효인가 싶지만 엄마는 엄마다. 난 그냥 죽을 때까지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엄마는 엄마니까. 어머니라 부르는 순간 엄마는 사라질 것만 같은 어리광이 존재한다. 엄마와는 다툼도 없었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내가 문제였다. 힘들게 살아온 엄마의 삶을 난 답답해했다.
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엄마는 집에 있는 우리를 위해 밥과 반찬을 대량으로 해놓았다. 특히 카레나 짜장, 곰탕 같은 메뉴를 돌아가면서 한 솥 끓여 두었다. 한번 정한 메뉴를 5일 정도 연속으로 먹고 나면 질릴 정도가 되는데 그쯤이면 다른 메뉴가 한 솥 끓여져 있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살림능력 제로에 가까운 남자 아이 둘이서 밥을 챙겨 먹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엄마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의지할 데도 없이 아이 둘을 키워야 했으니까.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고된 일이다. 힘들게 버티면서 살다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이제 나와 내 동생이 커서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는 가끔씩 일을 하러 간다. 어른이 되고 보니 엄마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참 빨리도 깨닫는다. 일단 내가 한심해지고 그 다음은 엄마가 답답해진다. 노후 준비 같은 건 꿈꿔본 적도 없이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 부은 삶이 안타깝다. 이제부터는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안 되겠냐고 이야기해본다. 엄마는 등산도 다니고 여행도 다니면서 잠시 그런 삶을 즐기는 듯 보였으나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바쁘게 또 일을 나간다. 다 큰 아들의 잔소리에도 엄마는 돈 벌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돈이랑 원수를 진 것처럼.
가족은 태어나면서 운명적으로 만난다. 내가 선택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운명처럼 주어지는 환경이다. 우린 그 속에서 자라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랑을 간직한다. 사랑 때문에 우린 가족을 어찌하고 싶어 한다. 가까워지길 원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어른이 되면서 병이 된다. 가족 때문에 아파하고 가족 때문에 앓는다. 왜 사랑 때문에 우린 병들어야 하는가? 시모주 아키코가 쓴 <가족이라는 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가족도 각 개인의 집단이다. 부모와 형제의 집단이 아니다.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는가 하면 어리광을 부리게 된다. 가족 사이에는 산들산들 미풍이 불게 하는 것이 좋다. 들러붙어 상대가 보이지 않게 되거나 배타적이 되면 가족만큼 까다로운 것도 없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가족을 이해할 수 없다. 혼자임을 즐길 수 없으면 가족이 있어도 고독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어른이 되고 삶에 대한 맥락을 가지게 되면 부모가 안타깝고 형제가 아쉬우며 자식이 사랑스러워진다. 그런 이유로 우린 가족을 어찌해보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삶을 살고 맥락을 갖고 있다. 그들의 삶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이며, 내가 어찌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삶이 아니다. 가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걸 인정하기 위해서는 나 홀로 설 수 있어야 한다. 가족에게 기대거나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삶을 자연스럽게 꾸려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이 허용된다. 그 사랑으로 가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을 어찌해보고 싶다면 나부터 어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