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돌아보았다.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인생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보통의 사람들만큼 알맞게 벌어져왔다. 굵직한 일들은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가끔 내 말이나 행동으로 튀어나올 만큼 인이 박혀 있지만, 가늘고 희미한 일들은 애를 써야 겨우 가닥이 잡힌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얻은 수확물을 살펴보니 서울 강변역 옆에 있는 동서울터미널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들렸던 나는 대학생이었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터미널로 가는 횡단보도에 서 있다. 춥다.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덜덜 떨릴만한 추위다.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입에서 김이 나고 바쁘게 지나는 차들의 뒤꽁무니에도 하얀 연기가 피어난다. 빨간 신호등 앞에 서서 단체로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있다. 신호가 바뀌자 어느 영화의 전쟁 장면처럼 서로 건너편을 향해 우르르 몰려간다. 터미널스러운 이 풍경을 뚫고 안으로 입성했다.
서둘러 버스표를 샀지만 우등이 아닌 일반고속이라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뭘 해야 할까? 생각하며 허둥대고 있을 때 어떤 할아버지께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시간 있으면 우동이나 한 그릇하자고 하셨다.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할아버지는 그 말을 당당히 던지고 나를 어딘가로 인도했다. 할아버지가 사람을 착각하신 게 아닌가 싶었지만 나도 그 때는 괜히 능글맞고 싶었던 시절이라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와 포장마차에 나란히 앉아 우동을 먹는다. 본의 아니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나는 괜히 어색해질까봐 할아버지께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찬 인생사를 들려주셨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셨다. 나도 우동을 먹은 건지 그 이야기를 먹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이야기와 분위기에 취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할아버지께서는 품속에서 목욕탕 쿠폰을 두 장 꺼내셨다. 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그 목욕탕에서 반신욕을 하면 천하의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하시던 할아버지는 쿠폰 하나를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우동을 얻어먹은 것도 모자라 쿠폰까지 선물 받은 나는 황송했다. 할아버지는 벗어둔 갈색 중절모를 쓰시며 ‘좋은 시간이었네’라는 여운이 느껴지는 대사를 한 마디 남기시곤 먼저 떠나셨다. 터미널 의자에 앉아 목욕탕 쿠폰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때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다.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내가 그 포장마차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정도다. 지갑 찾으러 다시 간 포장마차의 아주머니가 그 할아버지를 손주 잃어버린 할아버지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좀 더 굵직한 기억을 떠올려보자. 중학교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다 중학교에 올라 간 나는 학교 가는 게 힘들었다.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먼 길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너무 힘들어 나중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교복 입은 아이들로 가득 찬 버스는 문을 못 닫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사춘기 중학생이 아침마다 돈 내고 버스 문에 매달리는 체험을 좋아할 리는 없다. 그리하여 다시 걸어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학교 가는 길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승용차에선 품위 있고 인상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렸는데 나에게 학교까지 데려다 주겠노라 했다. 난 괜찮다고 말하는 법을 까먹었는지 아무 대꾸도 못하다 얼떨결에 차에 탔다. 내가 탄 뒷좌석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곱슬머리의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은 묘했다. 얼굴 표정이 부자연스러웠던 그 녀석은 아주 약간의 지체장애가 있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지만 우린 금방 친해졌다. 왜냐면 그 날 이후로 날마다 그 고급 승용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녀석과 나는 같은 학교였다. 말을 어눌하게 하다 보니 친구가 없었던 그 녀석을 위해 녀석의 어머니는 날마다 나를 태워주셨다. 난 그렇게 실용적인 목적으로 녀석의 친구가 되었고 집에 초대까지 받았다. 예상대로 녀석은 부자였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용돈까지 받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뭔가 찝찝했다. 순서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그 녀석을 만났고 친해져서 친구가 되었다면 모를까 이건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다. 게다가 돈까지 받다니.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부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버스 문에 매달렸다. 걸어가면 그 고급 승용차를 피할 방법이 없었기에 만원 버스를 타야만 했다. 녀석을 만나 받은 용돈도 돌려줬다. 그렇게 1달쯤 지난 후 그 녀석의 소식을 들었는데 무슨 사건 때문에 전학 가버렸다고 했다. 무슨 사건인지 궁금했지만 그 땐 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3학년이 되면서 새로 사귄 친구를 통해 우연히 그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날마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교한다고 소문난 그 녀석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수시로 돈을 빼앗기다가 금액이 점점 커지자 녀석의 어머니에게 들통이 났고 선생님의 꾸중을 들은 아이들이 단체로 두들겨 팼다고 한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비겁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계속 친구가 되어줬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그 후로 지금까지 우연이라도 마주치거나 소식을 들을 적이 없다. 잘 살고 있을까?
이보다 더 뚜렷하게 남은 기억은 이상하게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기억이다. 그저 평범하게 별일 없이 순탄하던 내 인생이 달라진 건 5학년 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전체가 후유증을 앓았다. 원망과 갈등으로 한동안 우울한 공기만 들이마셨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했다. 가기 싫은 마음에 밤늦도록 TV를 보다 다음 날 조금 늦게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선생님도 뭔가를 설명하다 분필을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왠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가 앉으려는데 선생님이 내게 걸어오셨다. 난 혼이 날 것 같아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간다. 숨 막히는 진공 상태가 되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슬로우비디오처럼 다가오신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아득해진다. 1초 만에,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 눈물이 흘렀다. 내 울음소리에 교실 아이들도 덩달아 훌쩍거렸다. 꽤 오랫동안 울었다. 그 날 이후로 난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해에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할아버지 선생님이셨는데 뭐든지 부지런히 열심히 하셨다. 겨울이 다가와 몹시 추운 어느 날 우린 자습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난로에 석유를 채우고 계셨는데 석유통으로 난로의 불이 옮겨 붙었다. 순식간에 불이 번져 난로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선생님은 급히 우리들을 모두 교실 밖으로 내보냈고 혼자서 불을 끄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셨다. 그 와중에 선생님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달려온 다른 선생님들이 소화기로 급하게 불을 끄긴 했지만 이미 심하게 화상을 입으셨다. 그 선생님은 병원에 입원하셨고, 내가 졸업할 때까지도 뵐 수가 없었다. 그 땐 멀쩡했던 마음이 지금 아려온다.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쓰라리게 한다.
이런 저런 기억을 자꾸 떠올려보니, 내 기억 속에 참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함께 여행했던 수많은 아이들, 대학에서 같이 추억을 쌓았던 선후배, 동기들. 힘든 군대 생활마저도 즐겁게 만들어 준 몇몇 사람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과 친구들, 그보다 더 오랜 기억 속에 사람들. 물론 그들 모두가 다 좋았던 건 아니다. 그 중에는 생각하기 싫은 사람도 있고,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도 있다. 뭔지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느낌으로 남은 사람도 있으며, 안간힘을 써야 겨우 기억해낼 수 있을 만큼 희미해진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또한 내 기억 속에 알뜰히 자리 잡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며 나와 마주친 어떤 가능성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마주침과 그 안에의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을 읽고 나는 이 말을 떠올렸다. 그 후로 오랜 시간 이 문장을 짝사랑 해왔다. 품 안에 넣어 보기도 하고 어디에다 적어보기도 했다. 이것은 세상의 진리도 아니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깃들어 있지도 않다. 때가 되면 비가 내리고 그 비가 세상을 적신다는 말처럼 그냥 그렇다는 말일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말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마주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곧 모든 것임을 증명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사람들을 초대해 홀로 잠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눈다. 짧았든 길었든 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나타나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내가 놓친 가능성 때문에 후회되기도 하고 그들이 보여준 사랑 덕분에 살아 있어 꿈도 꾼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그 대단한 우연의 가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우연의 작품. 신비롭고 특별한 나만의 이야기, 우리만의 기억. 세상 한 구석의 역사와 한 인간의 눈물. 어리석지 말자. 나는 나와 마주친 누군가의 기억이고, 우린 그 기억의 교훈과 온기로 지금을 산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죽을 때 가져갈만한 기념품이라고는 오직, 기억 하나 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