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지금껏 도시에서만 살아왔다. 물론 도시 안에서 지겹도록 이사를 다니긴 했다. 그래도 도시의 테두리를 벗어나진 않았고, 지금도 외곽이긴 하지만 도시에 산다. 아쉽게도 까다롭거나 차가운 성격이 아니라서 ‘까도남’이나 ‘차도남’ 계열에 속하진 않는다. 그러니 그냥 ‘도남’이라 해두자. 도남이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머지 시골 생활을 힘들어했다. 도남이가 처음으로 시골 생활을 경험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도남이와 그의 동생은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내게 됐는데 거의 한 달 넘게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겪었던 황당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단 화장실. 푸세식인건 이해한다. 근데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 대신 신문지를 네모반듯하게 잘라두었는데 그걸로 뒤처리를 하니 종일 엉덩이 사이가 화끈거렸다. 불이 난다. 때론 신문지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 안 난다. 진짜다. 다음은 벌레. 밤만 되면 온갖 날벌레들이 침공해왔고 우린 에프 킬라나 모기향 같은 무기가 없어 그저 손으로 적들을 잡아야만 했다. 적은 너무 많았고 끝이 없었다. 모기장이 우릴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구멍 송송 뚫린 모기장은 무기력했다. 마지막으로 TV. TV가 없다. 나와 내 동생은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집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녀도 온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뿐. 내 또래의 애들이 없다. 나와 내 동생은 심심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사방에 널린 게 곤충이라 곤충 채집에 열을 올렸고, 잡은 녀석들을 우유팩에 넣어 보관했다. 한 달 뒤 그 우유팩에선 구더기가 잔뜩 기어 나와 우릴 경악케 했다.
할아버지 댁에는 소를 한 마리 키웠는데 그 소가 새끼를 낳았다. 소 새끼 아니 송아지는 잘 자랐다. 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잘 자랐는데 어느 날 외양간을 탈출해 할아버지 댁 마당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마당을 다섯 바퀴쯤 질주한 망할 놈의 송아지는 집밖으로 뛰어나가 온 마을을 휘젓고 다녔다. 송아지 덕분에 마을은 비상이 걸렸고 송아지를 잡을 청년이 없어 젊은(?) 할아버지들이 총출동해 송아지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 어둑해질 때쯤 지친 송아지를 겨우 끌고 왔다.
모두 잠든 밤 난 오줌이 마려웠다. 화장실을 가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밤인데 밖이 좀 밝다. ‘왜 이렇게 밝지?’하면서 하늘을 쳐다봤더니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뻥을 좀 치면 별끼리 부대끼다 넘쳐흘러 쏟아질 것 같았다. 난 놀라서 입을 벌리고 그 별들을 한참동안 쳐다봤다. 집에서 보던 드문드문하고 흐릿한 별들이 아니라 촘촘히 박힌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거룩하고 엄숙한 별 감상은 긴급한 오줌 신호로 인해 잠시 중단 됐지만 복귀 후 다시 오랜 시간 하늘을 쳐다봤다. 오래 쳐다보니 목이 아파서 마당에 신문을 깔고 드러누워 봤다. 이렇게 좋을 수가! 진작 이럴 걸 하며 헤헤거렸다. 그러다 별이 멀어졌다. 점점 멀어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득해진다. 아득함이 의식의 스위치를 껐다. 난 잠 들었다. 새벽에 나온 할머니가 마당에 드러누운 나를 발견했다.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할아버지까지 나오셨고 난 더워서 밖에 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잠시 걱정하셨지만 이내 그러려니 하시며 소여물을 주러 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해가 안 된다. 손자가 마당에 쓰러져 잤는데 그러려니 하신 게 더 요상하다. 혹시 우리 아버지도 그랬나?
해가 지고 마당에 밤이 오는 냄새가 올라오면 그때부터 난 두근거렸다. 시골이라 9시만 되어도 다 잠드는 분위기였고, 난 방에서 1~2시간을 버틴 뒤 마당으로 출동했다. 어떤 날은 버티다 잠이 들기도 했는데 다음 날 성질이 나서 동네 개한테 소리를 질렀다가 물릴 뻔 했다. 별을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뭔가 대단한 생각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그저 별 쳐다보는 게 좋았다. 하루는 그 별들을 그려보겠다고 연습장과 샤프 그리고 손전등을 들고 마당에 나왔는데 그릴 수 없었다. 별이 많은 건 둘째 치고 연습장이 너무 하얗다. 밤하늘에 별을 연습장에 그리는 건 가혹한 노동이었다. 게다가 정밀한 작업이었다. 30분쯤 낑낑대다 샤프를 집어던졌다. 그 때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사진, 동영상 같은 걸 총동원 했을 텐데 아쉽다. 아무튼 그렇게 비밀스런 나의 별 보기 작전은 방학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무리 되었다.
나 홀로 뭔가 멋진 일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꿈처럼 간직했던 시간. 그 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도시로 돌아오고 어른이 되어 살면서 그때처럼 멋지게 설레는 시간이 사라졌다. 별은 흐릿해졌고 주변은 시끄럽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이 아우성치고 유혹의 불빛들이 춤을 춘다. 도시의 소음이 날 잠시도 가만두지 않고 마당 없는 콘크리트 집에서 난 매일 잠이 든다. 아직도 도시의 어딘가에 살고 도시의 규칙에 길들여져 있지만 난 매일 하늘에 별이 뜨는 걸 잊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그 별들은 지금도 하늘 어딘가에서 반짝이며 신문지 깔고 별 보다 잠든 도남이를 기다린다.
입 벌리고 감동할 순간들을 찾아다니자. 오줌 누는 걸 잊을 정도로 감탄하고 소똥 냄새나는 마당에서 잠들 정도로 빠져보자. 아무도 모르게 그 시간을 기다리고 나만의 그림을 그리자. 도시는 시끄럽고 냉혹하지만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시골은 여전히 신선하다. 세상의 전부를 돈 벌이와 인간관계에 저금하지 말고 조금 나눠 별을 기다리자. 멋진 순간이 당신을 기다린다.
어린 왕자처럼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별에서 온 그대처럼 누군가 날 만나러 오고 그와 내가 비밀을 간직하길 바랐다. 별은 그저 별일뿐이지만 어린왕자는 말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