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 평온해야 할 주말 아침이 소란스럽다. 깨어보니 엄마가 아빠를 흔들어댄다. 아빠는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떨고 있었다. 119에 전화했고 구급차가 왔다. 구급차는 엄마와 아빠를 실고 병원으로 가버렸다. 방안엔 우리 가족이 덮고 자던 이불과 어제 저녁을 먹고 치우지 않은 밥상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 방 안에 남겨졌다가 몇 시간 후 병원으로 갔다. 아빠 아니 이제는 아버지라 한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단다. 그렇게 평범하던 내 삶은 조금 달라졌다. 그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혹시 이게 꿈인가 싶었지만 꿈은 3일이 지나도 깨지 않았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친척들이 병원을 찾아오고 장례를 지냈다.
아버지와 내가 공유한 시간은 12년인데 정작 내가 기억하는 건 많지 않다. 한 번씩 가족끼리 계곡으로 놀러가 가재를 잡았던 기억, 아직 어둑한 새벽에 일 나가시던 모습, 술만 마시면 엄마와 다투었던 기억 정도가 남아 있다. 사실 그때 내가 아버지를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다. 아마도 그 당시엔 싫어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셨고, 서로 대화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엄마가 다투던 때는 정말이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난 아버지가 싫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그런 감정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과 시작하지만 여행을 한번만 다녀오면 금방 친해진다. 아이들과 내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어떤 아이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그런 끔찍한 말은 관두라고 손을 내저으면 어디선가 다른 아이들까지 좀비처럼 나타나 나를 향해 아빠를 외치며 다가온다. 장난으로 싫은 척 해봐도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앞에선 항복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10명의 아이들과 여행하는 임시 아빠가 된다. 비록 임시지만 아빠가 잠시 되어보니 아버지 생각이 났다. 희미해졌던 기억들이 조금 선명하게 되살아나면서 아버지가 힘들어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나와 내 동생 이렇게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일은 잘 안 풀리고 책임감에 짓눌렸던 아버지는 늘 담배와 술을 가까이 했다. 담배를 얼마나 피웠던지 담배 연기에 찌들어 냉장고 문이 누렇게 되었다. 주말이면 동네 슈퍼에 외상을 해서라도 막걸리를 받아오게 했다. 그 땐 그게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어디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는데 새벽마다 나가시고 저녁 늦게 돌아오셨다. 작업복은 늘 흙투성이다. 주말엔 집에서 안경테를 용접하는 부업도 하셨는데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 했던 일이다. 이 모든 고단함은 결국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고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하고 술, 담배만 하다 돌아가셨다.
난 왜 그동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조금만 뒤로 물러나면 왜 그랬는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생각할 때면 난 항상 과거의 기억에 갇혀버렸다. 내가 그 기억에 고립되고 그 감정에 빠져들면 미워했던 것, 상처받았던 것들만 편집해 머릿속으로 재방송했다. 난 애써 아버지를 싫어했고 애써 무시했다. 나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힘든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나를 적셔온 기억과 감정을 털어버리지 못했다면 아마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고 부모의 입장에서 인생을 살아가며 그들의 부모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본다. 윤용인이 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후, 나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시대를 잘못 만나 날개 한 번 펼치지 못한 한 남자의 불우한 삶에 소주를 올렸다. 내 관점에서만 아버지를 바라보던 그 오랜 습관을 버리자 아버지의 인생이 보였고, 그것이 가여워 나는 홀로 울었다.
좋았는데 좋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싫어졌다. 아버지에 대해 더 알기도 전에 내 곁을 떠나버려 슬퍼졌다. 슬픔의 원인을 미워하게 되었고,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어 싫어졌다. 그 모든 과정은 내 마음 속에서 조용히 진행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사실이 되었다. 난 그 사실에 저항하지 않았고 그냥 그 기억과 감정을 간직하고 살아왔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난 그렇게 살지 말자며 다짐하며 지냈다. 그 덕에 난 담배도 피지 않고 술도 즐기지 않으며 아내와도 잘 지낸다. 어느 순간 이것조차 아버지의 유산이라 여겨지는 걸 보면 난 아버지를 좋아했다. 좋아하지만 잘 모른다. 좋아하는 건 더 좋아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더 알 길은 없어 계속 잘 모를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존재가 되었다.
이 모순된 말의 의미를 위해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자. 그 깊숙한 곳에는 내가 위로해야 할 또 다른 내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원하는 부모를 두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로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미워하는 대신 그들을 좋아했던, 좋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자. 우린 지금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