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자상하지만 고집 있는 분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희끗한 머리, 금테 안경을 쓴 할아버지는 외출할 땐 늘 중절모와 지팡이를 챙기셨다. 멋쟁이 신사였던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내가 하는 질문엔 늘 자상하게 답해주셨다. 나와 내 동생이 방학을 맞이해 시골로 내려갔을 때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족보를 꺼내와 보여 주셨다. 사람은 모름지기 뿌리를 알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뿌리 이야기가 끝나면 그 다음은 예의였다. 사람은 늘 예의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셨다. 예의를 지킬 줄 모르면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사람도리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셨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혼이 났고 벌도 서야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만날 때면 늘 예의를 지키기 위해 긴장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괴로웠던 건 아니다. 할아버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고 난 그이야기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 난 그 때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 순 없었지만 그 이야기들이 좋은 이야기라는 건 느껴졌다. 예의를 지키는 가운데 배운다는 건 엄숙한 일이었고 배우는 자세를 몸에 익히는데 도움이 됐다.
‘예의’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나와 있다. 언뜻 보면 예의를 지킨다는 일이 답답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맞춰줘야만 할 것 같은 억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상대방이 예의를 지킬만한 어른이고 어른답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앞에선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개념 아니라 ‘예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절로 그런 마음이 들 것 같다. 예의를 지킨다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좋은 사람, 존경스런 사람에겐 나도 모르고 고개가 숙여지고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진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고 싶다.
멋진 예술 작품을 앞에 두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예의를 지키고 싶어진다. 그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거나 떠들고 싶지 않다. 약속이라서 규칙이라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지키는 예의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지키고 싶은 예의가 된다. 내 마음을 흔들고 벅찬 감동을 주는 그 무언가 있다면 그 앞에서 난 예의를 지키리라.
그건 바로 글을 쓰고 나서 자꾸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확인 받고 싶고 반응을 알고 싶다. 그래서 온라인에 글을 올리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준다. 그리곤 그 반응에 너무 매달린다. 어느 날 여행과 관련된 글을 한편 써서 브런치에 올린 적이 있다. 그 날은 시간도 많아서 종일 빈둥거렸는데 자꾸 브런치에 들어가 조회 수를 확인했다. 반응이 생각보다 저조하니 힘이 빠졌다. 내가 쓴 글이 못나 보이고 뭔가 자꾸 고치고 싶었다. 고치다 안 되면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하고 글을 썼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아내에게 한번 보여줬는데 아내는 그 글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글 실력이 늘었다며 칭찬까지 한다. 뜻밖의 반응에 자신감이 생겼고 정말 그런가 싶어 읽고 또 읽어댔다.
같은 글인데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른 글이 되는 걸 뒤늦게 깨닫는 순간 허탈했다. 난 왜 글을 쓰는 걸까? 사람들에게 내보여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글을 이용해서 내 자신이 돋보이려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건 내가 쓴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꼈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다. 글을 내보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내보여 눈치를 살피고 반응에 매달리느라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쓴 글이 흐려졌다 맑아졌다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나 스스로 내가 쓴 글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는 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물론 내가 엉터리 글을 썼을 수도 있고, 말도 안 되는 글로 야유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내가 쓴 글이라는 사실이다. 글을 쓴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고 얼마나 정성을 다 했는지. 얼마나 진실했고 얼마나 정직했는지. 얼마나 즐거웠고 재미있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글을 쓴 내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부끄러움이 없다면 내 글에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내 글에 존경의 뜻을 표해야 한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예의를 지켜야 쓰고 싶은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김병완이 쓴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글쓰기>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세상과 전문가의 당신에 대한 평가에 너무 귀를 기울이면 그것에 휘둘리며 살게 된다. 세상에 자신을 당당히 내 보여야 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다. (중략) 결국 글이란 당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또 다른 당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당신 자신에 대해 당신은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강한 의식이 굳건히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남겨진 글을 갈고 닦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이용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누군가의 의견이 내 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허나 의견은 밑거름이 될 뿐 그것이 내 글의 가치를 정하는 건 아니다. 내가 쓴 글에는 내 생각이 담겨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발견한 내 의식을 글로 표현하고 남긴다. 남겨진 글은 또 하나의 내가 된다. 관심 받는 글이든 그렇지 않은 글이든 내가 낳은 글에 대한 예의를 지키자.
예의를 지키는 그 엄숙함이 나에 대한 믿음으로, 글에 대한 사랑으로, 쓰고 싶은 글쓰기에 대한 욕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