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학을 싫어 하냐고 묻는다면 수학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성적 안 좋으면 그 과목이 싫다. 다들 나와 같지 아니 한가? 아니라면 미안하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점수를 올리기 위해 꽤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다. 공식을 달달 외우고 문제집도 사서 풀었다. 쉬운 문제는 꼭 맞혀야 된다고 생각해서 ‘2점짜리 문제집’이라는 쉬운 문제 전문 문제집을 사서 공략했다. 대놓고 나 수학 못해요 하고 광고하는 것 같았지만 도움은 됐다. 역시 쉬운 문제는 공식을 아니까 금방 해결됐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는 공식을 알아도 이 공식을 써야하는지 저 공식을 써야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우리 반 1등은 자꾸 풀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도인처럼 이야기했지만 난 그 말을 실천할 수 없었다. 답지를 보고 풀이 과정을 봐도 이해 안 되는 문제가 많았다. 난 문제에 공식을 적용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못하니까 싫어졌다. 지금도 수학은 싫다.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들을 보면 그 공식들이 쉽게 소개되어 있다. 글쓰기의 공식들이란 대체로 문장을 짧게 쓰라던가,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인상적으로 쓰라던가, 접속사를 쓰지 마라던가, 구체적으로 쓰라던가 하는 내용이다. 아니면 생생한 스토리텔링과 흥미로운 사례를 넣어 재미있게 쓰라는 내용이던가. 그 외에도 다양한 공식들이 글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눈을 잡아끈다. 나도 글 잘 쓰고 싶어 하는 1인이라 글쓰기 책도 이것 저것 사서 읽었다. 확실히 글쓰기 공식을 적용하니 글이 읽기 쉬워졌고 깔끔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샀던 ‘2점짜리 문제집’처럼 글쓰기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공식 덕분에 글이 읽기 편해졌지만 쓰기 편해진 건 아니었다. 공식을 알아갈수록 오히려 글은 더 쓰기 힘들어졌고 사례나 자료를 찾는다고 내 글은 거북이보다 더 느리게 나아갔다. 쓰는데 점점 더 시간이 걸리고 읽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서 글쓰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슬럼프가 오면 한동안 쓰지도 못하고 멍해지기만 했다. 의자에 앉아서 뭔가 쓴다는 게 괴로웠다. 쓰는 게 망설여지니 썼던 글들만 자꾸 쳐다보면서 고치고 또 고치고 제목을 다시 쓰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만 살폈다. 난 쓰는 게 아니라 공식에 따라 글을 생산 중이었고 재료가 떨어지면 망연자실해했다. ‘재료 급구’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산책을 나가도 쓸거리는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 구한 쓸거리도 생산 중에 폭파되었다. 억지로 갖다 붙이다 보니 내 정신까지 억지스러워지는 것 같았다. 글이 재미있어야 하고 깔끔해야 하고 읽기 편해야 하고 유익해야 한다는 공식적 철학 때문에 글 공장은 문을 닫게 생겼다. 이대로 파산인가?
어릴 땐 그렇게도 쓰기 싫었던 일기를 요즘은 잘도 쓴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검사 도장도 안 찍어주는데 우연히 새벽에 일어나면 미친 듯이 쓴다. 키보드에서 손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쓰고 있는 걸 알아차리면 ‘내가 왜 이러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누가 보지도 않고 나 혼자만 보는 글이라는 생각에 마구잡이로 글을 써대지만 그 순간만은 내가 공장장이라기보다는 작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래. 분명 작가들은 이런 식으로 미친 듯이 쓸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글을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잘 쓰냐? 난 미친 듯이 쓰면 마구잡이가 되는데 작가들은 작품이 된다니. 타고난 재능의 차이? 들인 노력의 차이? 작가들이 혹시 음흉하게 가장 중요한 공식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들을 해본다.
안다. 내가 요령부족이란 걸. 일단 미친 듯이 글을 쓰고 그 글을 공식에 따라 다듬고 고쳐서 세상에 내놓으면 될 것이다. 헌데 나는 왜 허우적대고 있었을까? 글쓰기의 내용 그러니까 알맹이가 없는 상태로 공식을 들이대고 미분, 적분 해대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쓰고 싶은 생각보다 공식으로 글 솜씨를 뽐내거나 몇 가지 정보나 사례로 빈 공간을 메꾸려고 하니 멍해진다. 스스로 깊은 물에 몸을 던진 꼴이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 186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의 흥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집필 작업이 ‘노동’처럼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죽음의 입맞춤과도 같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나도 냉정한 태도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싱싱할 때 얼른 써버리는 것이다.
난 글쓰기 전문가가 아니다. 초보다. 하지만 그동안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걸 기록으로 남기고 도움이 된다면 공유하고 싶다. 글을 쓸 때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이게 아닌데 싶다면 때론 공식을 파괴해 보자. 이렇게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누가 본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마음 가는대로 써보자. 그렇게 미친 듯이 쓰고 나면 마음이 편하다. 그 다음 공식에 따라 뚝딱거리든 달콤한 소스를 듬뿍 바르든 그건 그대 마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쓰고 싶은 생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나도 잘 못하는 일이지만 쓰고 다짐하고 맹세하는 중이다.
수학도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