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도 쓰기 싫어서 늘 미뤄서 쓰던 내가 무슨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효도’를 주제로 하는 대회였다. 감이 오지 않는가? 효도의 봉우리. ‘효봉’이라는 내 이름이 빛을 발한 것인지 동시를 하나 써서 동상을 받았다. 처음엔 금상도 아니고 은상도 아닌 어감도 안 좋은 ‘똥상’을 받았다며 시큰둥해했지만 상금이 있다는 소리에 헤벌쭉해졌다. 시민회관인지 어린이회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슨 회관에서 상을 받고 집에 올 때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기가 많이 들어있는 간짜장이었다. 그 짜장면이 내 생애 첫 원고료였다. 글 잘 쓰면 짜장면도 먹을 수 있구나 하는 걸 체험했다.
그렇지만 내 꿈은 계속 ‘과학자’였다. 과학 따위엔 관심도 없으면서 누가 물어보면 늘 과학자라 그랬다. 다들 그러니까 그랬던 거 같다. 그러다 중학생 때 추리소설에서 셜록 홈즈라는 대단한 탐정을 만나고 루팡이라는 대단한 도둑을 만나면서 내 꿈은 달라졌다. 탐정 아니면 도둑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탐정이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엔 없단다. 도둑은 좀 그랬다.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도둑은 폼이 안 난다. 결국 이렇게 다시 과학자인가 하고 절망할 무렵 홈즈와 루팡을 만들어낸 코넌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 좀 멋지다. 도서관에서 온갖 추리소설들을 읽어댔다. 읽다 지치면 내가 직접 써보기도 했다. 물론 몇 장 쓰다 그만뒀지만. 그런데 그 당시 우리나라 추리소설들은 어둡고 침침하고 때론 끔찍하고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그 옆 코너인 무협소설의 세계는 대체로 밝고 멋있고 웃겼으며 결정적으로 야했다. 몇 달을 무협소설과 지내다보니 또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무협소설은 하나 같이 내용 전개가 비슷했고 주인공은 늘 초특급 고수였다. 이제 그 옆 코너에 줄 서 있는 판타지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판타지 소설은 정말 이름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오락실 게임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세계가 소설 속에 펼쳐지고 온갖 마법들이 폼 나게 등장한다. 특히 드래곤이나 몬스터들을 물리치는 영웅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난 이 소설 저 소설에 코를 박고 소설의 언저리를 서성거리며 사춘기를 보냈다.
고등학생이 되니 복병이 등장했다. 첫 번째 복병은 ‘스타크래프트’였다. 이 게임이 유행하면서 여기 저기 PC방이 생겼고 나와 내 친구들은 달렸다. 두 번째 복병은 ‘보충수업’이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었다. 보충수업은 땡땡이치라고 있는 거라지만 난 그럴 용기가 안 났다. 평범하고 싶었다. 학교와 집 그리고 가끔 PC방을 오가며 살았다. 이 당시 글쓰기란 논술시험 연습이었고 시키는 대로 규칙에 따라 써야만 좋은 소리를 들었다. 모든 시간은 ‘게임에서의 승리’와 ‘수능점수 향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수렴되었고 난 대학교로 떠내려갔다.
결전의 날. 수능시험을 쳤다. 내 성격처럼 우유부단한 인문사회 자율전공학과라는 과에 들어갔고 2학년이 되면서 난 국어국문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때 받았던 ‘똥상’과 고등학교 때 쳤던 여러 차례의 모의고사에서 언어영역이 우수했다는 이유로. 난 내가 글쓰기에 티끌만큼이라도 재능이 있고 나름 잘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품고 대학을 다녔다. 그렇지만 국어국문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국어 연구와 생각보다 심각한 글쓰기에 목숨을 걸면 뭔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니라면 그냥 취업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대학을 다니며 내가 가장 열심히 글을 쓴 곳은 싸이월드 일기장이었다. 얼마 전 혹시나 해서 그 일기장을 찾아보았더니 아직 남아 있었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글들을 읽으며 난 대학교 때 사춘기가 다시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봤다. 일기장이지만 누구 보란 듯이 공개된 일기장이었기에 지독스럽게도 암호화시켜 적어놓았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가 해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한 글들이다.
아는 선배들을 따라 아이들과 여행 다니는 일을 하게 되었다. 보충 수업 땡땡이도 치지 못하던 내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생각해보면 용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저 불안한 취업의 전쟁터로 나서느니 아는 사람들과 함께 시작하고 열심히 하면 뭔가 이뤄질 것 같아 좋은 선배들을 따라 나섰다.
내 일상에서 글쓰기는 실종되었다. 책이야 가끔 들여다봤지만 글을 쓴다는 건 직장인에겐 사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너무 지겨워 할 게 없다면 뭐 한번쯤 생각해보겠지만 난 바빴고 난 허둥댔다. 난 이 동네 저 동네를 싸돌아다녔고 아이들과 좌충우돌 했다. 힘들면 선배들을 찾고 그만둘 거라며 투덜댔다. 술 마시고 세상이 한 바퀴 돌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난 나를 속이고 주변 사람들을 속였다.
난데없는 연락이 당황스러웠다. 오랜만인데도 그 녀석은 당당했다. 글을 쓰라고 했다. 써야지 세상이 달라 보이고 써야지 내가 바뀐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읽었던 그 책은 나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난 내 일상이 나름 행복했지만 그 빛줄기로 인해 내 일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다시 만난 글쓰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글을 쓰고 싶었다. 뭐라도 써야 했다.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 아이들과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 이 모든 걸 짬뽕시키면서 글을 썼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글이 완성되고 나니 욕심이 난다. 이런 글도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운이 좋아 문이 열렸다. 조만간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게 끝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난 불안하다. 썼는데 왜? 책도 나온다며? 배가 불렀나? 돌아보니 난 쫓기며 글을 썼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앞, 뒤, 좌, 우, 위, 아래를 초조하게 살피며 다른 사람의 기대,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며 써 댔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다. 이제 나의 개인적인 글쓰기 역사를 정리하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려 한다. 소설가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로 글쓰기에 임해야 한다. ‘왜?’라고 끊임없이 묻거나 새 옷을 고를 때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신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정도로 수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 붓도록 해야 한다. ‘이건 글을 쓰기에 좋고, 저건 이야깃거리가 못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작가는 두려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써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어떤 글쓰기를 희망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직 역사는 진행 중이다. 나도 뼛속까지 내려가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