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난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TV는 아직 켜져 있었고 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악몽을 꿨다. 꿈에선 사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모두 광장에 모였다. 하늘엔 무언가 새카만 것들이 떼를 지어 날아온다.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알 수 없는 적들이 쳐들어와 사람들을 죽였고 피 냄새가 났다.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따라 난 도망쳤다. 살아보려고 달리고 달렸다.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도망치다 넘어졌고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넘어진다. 땅이 사라지고 난 추락한다. 쿵하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우리 집이다. 구겨진 이불이 옆에 누워 있다. 땀을 식히러 베란다로 나갔다. 문을 열고 밖을 바라본다. 하늘에 흐릿한 별이 몇 개 보인다. 크게 한숨을 쉰다. 오늘 난 혼자다.
황당하시죠? 저도 그 꿈을 꾸고 황당했습니다. 어디 아픈데도 없는데 갑자기 웬 악몽? 죽다 살아나 새벽 3시에 잠이 깼고 ‘별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페이지쯤 쓰다 잠이 들었고 한동안 그 글은 잊혀졌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바쁘게 지내다 보니 글의 존재조차 잊었습니다. 그러다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난 글들을 뒤적이던 중 그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삶의 구체성’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좀 추상적인 이야기지만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독자들이 알게 될 거라 여기고 되는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생뚱맞은 글이 되어버렸네요. 뭔가 설명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 글은 ‘별을 기다리며’라는 매거진의 글이 어떤 이유로 써진 글인지 설명하는 글입니다. 8화까지 쓰고 나서 예고편이라니 앞뒤가 안 맞긴 하지만 앞으로 쓸 글들에 대한 예고편이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록 꿈이지만 잠시 죽음을 겪고 나니 ‘난 정말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통해 배우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톨스토이의 유명한 말처럼 악몽은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살고 있는지 질문해왔습니다. 새벽 3시에 차가운 베란다에 주저앉아 잠시 있어보니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뭔가 공허합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솔직히 대충 살아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뭔가 해 본 것도 아니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별로 없습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왔고 먹고 자고 이야기하고 웃었습니다. 인생이 별거냐? 이런 게 인생이지 하며 대충 느낌대로 살았습니다. 어느 유명한 사람이 ‘인생이란 이런 거다’라고 말하면 그런 줄 알고 살았고 누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하면 그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진지함은 피곤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하고 따져야 하고 솔직해야 했습니다. 진지함을 포기하고 사니 편했습니다. 뭔가 한 구석이 불안하긴 했지만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 기분 좋은 것들로 구멍을 메꾸며 살았습니다. 먹고 살만큼 돈을 벌고 욕먹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허우적댔습니다. 사춘기의 진지한 눈빛을 잃어버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어른의 덕목을 흉내 내다보니 지금 여기에 불시착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위로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 봐도 못 말리는 불안감은 고개를 듭니다. 결국 전 정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 없는 삶의 청구서를 들여다보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제 삶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그 장면들이 내게 남긴 건 무엇인지 그 가치는 내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글로 남기고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건지, 가족을 위해 사는 건지, 돈을 위해 사는 건지, 명예를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리시나요? 삶의 좌표가 어지럽혀지고 몸과 영혼이 늙어간다는 생각이 그대 마음을 공허하게 만드나요? 만약 그렇다면 저와 함께 별을 기다립시다. 지금보다 좀 더 진지한 눈빛으로 우리 삶의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려 봤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만 지나온 삶의 내용을 기록하고 질문하고 무언가 남길 때 삶의 구체성은 회복됩니다. 죽어 없어질 때 우리에게 남는 건 돈도 명예도 가족도 아닙니다. 그것 또는 그들은 그저 거기 존재할 뿐입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 그 길의 끝자락에는 운이 좋다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인생의 기억이 하나 남을 뿐이지요. 그 무렵 그 기억이 뿌옇고 안개처럼 흐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는다면 얼마나 공허할까요. 별을 기다립시다. 별을 기다린다는 건 삶의 구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고 내게 남겨질 삶의 기억을 뚜렷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고 후회 없을 만큼 실컷 내 삶을 고민해보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