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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모르는 사람 (1)

by 서효봉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는 건 겁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 겨울까지 이어져 병이 났다. 병든 나를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넣어뒀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다 생각이 나 그 옷장을 열어봤다. 자세히 뜯어보니 가여웠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10월 23일 월요일 아침, 눈을 떴다. 침대 옆에 있는 탁상시계를 보니 8시 55분이었다. 55분. 뭐라고? 지금 장난해? 꿈인가? 아니다. 진짜다. 벌떡 일어나 옆에서 자던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큰일 났어. 나 지각이야!”

아내는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더니 다시 누우며 말했다.

“저 시계 고장 났어.”

바지를 입고 와이셔츠 단추를 급히 잠그던 나는 갑자기 힘이 빠졌다.

“뭐? 놀랐잖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단추를 마저 잠근 뒤 휴대폰을 찾았다. 그럼, 몇 시? 9시 59분이다. 젠장.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가 차를 타고 마구 밟았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도로에 차는 많지 않았다. 그러면 뭐 하는가? 이미 늦은걸. 구청 입구를 지나 사무실로 뛰어갔다. 가면서 아는 사람을 셋이나 만나 인사했다. 익숙한 내 책상 앞에 겨우 도착했다.

“원진 씨!”

“네.”

팀장의 부름에 허둥지둥 그 앞으로 가 섰다.

“지금 온 거예요? 도대체 지금 몇 시예요?”

“죄송합니다. 아침에 착각을 좀 해서.”

“출근하는 게 장난이에요? 왜 그래요? 왜!”

“죄송합니다.”

거의 20분 넘게 시달렸다. 그동안 팀장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까지 깡그리 모아 혼났다. 겨우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더니 전화벨이 울렸다. 과장이었다.

“원진 씨, 당장 이리로 좀 와봐요!”

과장은 오늘 아침 회의 자료를 왜 빠뜨렸냐며 소리를 질렀다. 난 또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15분 정도 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부팅을 기다리는데 또 전화벨이 울렸다.

“담당자님, 왜 안 오시나요? 오늘 9시 반까지 오라고 하셔서 지금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요.”

지역아동센터 직원이었다. 이번 주에 진행할 행사 때문에 미팅을 잡았던 게 기억났다. 뭐, 달리 할 말이 있겠는가.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사정이 좀 있어서.”

옆자리에 앉아 있는 한병헌이 혀를 차며 말했다.

“한동안 안 늦더니 오늘은 거의 한 시간 반을 늦었네.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자다가 늦었지.”

“너 때문에 아침부터 팀장이 폭격해서 분위기 싸했다. 정말.”

“그랬겠지. 아, 아침부터 진짜 더럽게 재수 없네.”

오전은 그렇게 지나버렸다. 한병헌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조금 노닥거렸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책상 앞에 앉자, 속이 쓰렸다. 일금 삼만 삼천 원짜리 품의서를 썼다. 결재를 올리며 퇴사를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건 겨우 퇴근밖에 없었다.

오늘은 한잔해야겠다. 변기택에게 전화했다. 자주 보는 친구라고는 이놈밖에 없었다. 이놈은 술이라면 늘 오케이였다. 돌돌 말린 냉동 대패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렸다. 녹아내리듯 익어가는 그걸 보며 나는 변기택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요즘 어떠냐?”

“뭐가?”

“장사 잘되냐고.”

“뭘 물어. 요즘 같은 경기에 잘 되겠냐.”

변기택은 3년쯤 전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대학가 앞에 작은 파스타 가게를 열었다. 개업하고는 장사가 꽤 잘 됐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곳에 2호점을 낸다고 얼핏 들었는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까지 힘든 모양이다. 이번엔 변기택이 내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말했다.

“넌 관두지 마라. 공무원처럼 좋은 직장이 있는 줄 아냐.”

“좋긴, 너무 좋아서 매일 퇴사 생각한다. 인마.”

“날마다 늘어나는 대출 이자에 목 졸리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도 좋아서 하는 거 아냐?”

“좋아했지. 근데 이제 아닌 것 같다. 그냥 관두고 다시 취직하려고.”

그 말을 끝으로 나와 변기택은 말없이 술만 마셨다. 정말 친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본연의 임무, 그러니까 술을 마시고 안주를 먹는 데만 집중했다. 소주 두 병을 다 마실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뭐, 굳이 해야 할 이야기도 없었으니까. 식당 직원이 곧 끝난다고 말해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옷에 기름 냄새만 잔뜩 배었다. 변기택은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사는 김에 편의점 맥주도 사라. 밖에 테이블에서 한 캔씩만 더 하고 가자.”

변기택은 거기서 맥주 다섯 캔을 마셨고, 나는 세 캔을 마셨다. 그는 얼굴이 벌게져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나도 알딸딸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할머니가 다가와 껌 한 통만 사달라며 도와달라고 고개를 숙였다. 변기택이 반쯤 풀린 눈으로 소리쳤다.

“할머니! 저리 가요! 나도 힘들어요. 누가 누굴 도와요, 지금. 얼른 가. 얼른.”

나는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할머니에게 드렸다. 받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변기택에게 말했다.

“야, 인마. 너는 어떻게 할머니한테 그럴 수가 있냐? 취했냐?”

“취하긴 누가? 누가 누굴 취하게 해. 지금. 얼른 마셔. 마셔!”

그 자리에서 우린 두 캔을 더 마셨다. 잠시 후, 두루마리 휴지가 열 개쯤 들어 있는 기다란 봉지를 손에 쥔 아저씨가 나타났다. 다리를 절며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내가 소리쳤다.

“아저씨! 저리 가요! 저 아까 할머니한테 돈 드렸어요. 어디 소문났어요? 왜 자꾸 와요?”

근데 이번엔 변기택이 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를 꺼내더니, 그 아저씨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이거 받고 얼른 가. 얼른. 저 인간 무서운 인간이야. 저거 공무원이다. 쓸개 빼고 출근해서 퇴근하면 넣는다는 공무원. 무서버, 저거.”

콜택시를 불렀다. 바닥에 드러누운 변기택을 실어서 보냈다. 나는 내 차가 주차된 곳으로 빙글빙글 걸어갔다.



눈을 떴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지? 홀로 안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내는 어딜 갔나 보다.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7시 45분.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구청으로 출근했다. 한병헌이 서랍에서 숙취해소제 한 병을 꺼내 건넸다.

“어제는 몇 시까지 마셨길래?”

“나도 모르겠다. 눈 뜨니까 집이야.”

“아이고, 필름까지 끊기셨다? 제수씨는 뭐래?”

“몰라. 아침에 없던데.”

“없어? 야, 넌 와이프가 집에 없는데 걱정도 안 되냐?”

“뭐, 어디 갔겠지. 있어 봐야 잔소리밖에 더 하겠냐.”

오늘도 바빴다. 업무 회의가 끝나고 청렴 교육을 받았다. 교육 부서에서 점심 도시락을 제공해 한병헌과 함께 먹었다. 오후엔 업체 미팅과 행사까지 있었다.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나마 일이 잘 풀려서 야근은 면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퇴근할 무렵 한병헌이 나무라듯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라. 어제처럼 술 먹고 개 되지 말고.”

“개는 무슨.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들어갔다니까.”

“고양이 같은 소리 하네. 근데 너 어제 차 타고 가지 않았나?”

“차?”

“대리는 불렀냐?”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버렸다.

“그럼, 당연하지. 대리비 비싸더라.”

구청에서 나와 차에 올랐다. 한병헌의 말이 마음에 걸려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려 애썼지만, 역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파트 지하에 주차하고 블랙박스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혹시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질렀다면 확인해야 했다. 어제 통화목록에 대리기사 번호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 어디 나간 줄 알았는데 종일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꺼져 있었다. 불안감이 한 발짝 더 다가왔다. 별일 없을 것이다. 괜찮을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노트북에 메모리 카드를 넣어 어젯밤 상황을 확인했다. 편의점에 갔을 때가 오후 10시 반쯤이었다. 그 뒤부터 영상을 확인해 보니 새벽 2시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망했다. 차는 미친 듯이 달렸다. 빨간 불에도 그냥 지나고 어떤 택시와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영상을 봤다. 혹시 사람을 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경찰에 걸리지도 않았다. 비틀거리던 차는 아파트 근처쯤에서 계속 유턴했다. 마침내 차를 갓길에 세웠다. 소리를 들어보니 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였다. 운전석에서 잠든 나를 깨우는 것 같았다. 내가 뭐라고 중얼거렸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랐다. 아내는 운전 면허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선 차는 빈자리에 정확히 주차되었다. 어떤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마도 그가 나를 업고 집에 데려다 놓은 모양이었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영상의 마지막 부분을 돌려봤다. 세 번이나 돌려보면서,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상했다. 그 목소리는 매일 듣던 목소리였다. 한병헌. 그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나는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텅 빈 거실에 앉아 TV를 봤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예능 프로그램을 30분쯤 보다가 껐다. 변기택에게 전화했다. 예상대로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난 거실을 뱅뱅 돌며 물었다.

“어젠 잘 들어갔냐?”

“아, 어. 기억도 안 난다. 편의점에서 무슨 일 있었냐?”

“무슨 일은. 나도 잘 기억 안 나지만 별일은 없었던 거 같다.”

변기택은 다행이라는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아, 그래? 근데 혹시 내가 어제 그 이야기했나?”

“무슨 이야기?”

나는 변기택이 뜸 들이며 말할 때면 항상 불안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늘 적중했다.

“돈 좀 빌려달라고. 한 이천만.”

“나도 돈 없다. 답답하다.”

“그래. 그렇지 뭐. 근데 어떻게 안 되겠냐?”

“야, 인마. 내가. 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없다니까.”

“그래, 아니다. 아무튼 어제 택시 태워줘서 고마웠다. 다음에 보자.”

변기택은 낙심한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TV를 끄고 눈을 감았다. 윗집 애가 쿵쾅대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속이 쓰렸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다 문득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야, 넌 와이프가 집에 없는데 걱정도 안 되냐?’

나는 바로 한병헌에게 전화했다.

“밤늦게 웬일로?”

“물어볼 게 있어서.”

“내일 이야기하지?”

“아니, 지금 해야겠다. 혹시 어제 우리 집에 왔었냐?”

“내가?”

“그래, 인마, 너.”

“뭐? 인마?”

“내가 지금 간다. 딱 기다려.”

“갑자기 뭐라는 거야?”

“몰라서 묻냐?”

나는 전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차를 타고 지하 주차장을 나오는데 아파트 바로 앞 정류장에 버스가 섰다. 아내가 내리는 게 보였다. 차를 세우고 경적을 울렸다. 아내가 뒤돌아봤다.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며 소리쳤다.

“어디 갔다 왔어?”

“뭐?”

“어디 갔다 왔냐고!”

“아니, 왜 이래?”

“빨리 말하라고! 어디 가서 뭐 했냐고!”

“어디 가긴, 부산, 엄마 집에 갔다 온다고 말했었잖아.”

“뭐?”

“왜 이래, 당신?”

“무슨 소리야? 어제 내 차 운전해서….”

“운전? 어제는 부산에 있었다니까, 이 양반아!”

나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난주에 새로 왔다는 경비 아저씨가 뛰어왔다. 무슨 일인지 묻는 그의 목소리는 한병헌의 목소리였다. 아니, 영상 속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집으로 돌아와, 블랙박스 영상을 다시 돌려보았다. 어제 입고 침대에 던져두었던 캐시미어 코트를 뒤졌다. 지갑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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