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아내는 처가에 가버렸다. 한병헌도, 변기택도 나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어서 죽어라 일만 했다. 구청 그룹웨어에 공지가 올라왔다. 건강검진 미검수자 안내였다.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책상 위의 달력을 봤다. 벌써, 12월 5일이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 건강을 나라에서 챙겨준다니 고맙긴 한데, 왜 이렇게 귀찮을까. 점심시간이 되어 동네 병원에 전화했다. 만 40세에는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고통 없이 검사받으려면? 수면내시경을 선택해야 했다. 수면내시경을 한다면? 하는 김에 대장내시경까지 받는 게 좋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럼, 그렇게 예약해 주세요.”
“잠시만요.”
잠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동네 병원 간호사님은 나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인지 다른 누군가와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쁜 모양이다. 바쁘겠지. 연말인데. 바쁠 거야. 바쁜데 어쩌겠어. 근데 나도 바쁘다고. 없는 시간 쪼개서 전화했더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여보세요?”
수화기를 내려둔 채 환자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환자분 여기 접수증 작성해 주시고….”
“여보세요?”
그 상태로 10분 넘게 기다렸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한꺼번에 밀려온 짜증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젠장. 기분만 잡쳤다. 10분 후, 그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언제로 예약해 줄지 물었다. 난 묻는다고 넙죽 대답해 주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또 잠시 기다리라 했다. 기다렸다.
“위내시경 하실 거면 다음 주 화요일, 목요일만 가능하세요.”
“대장내시경도 같이 하려고요.”
“그러면 이달 마지막 주 수요일만 되네요. 나머진 다 예약이 완료되었고요. 수요일로 하실래요?”
“잠시만요.”
이번엔 내가 잠시만을 외쳤다. 나는 죄 없는 사람을 기다리게 할 만한 깡다구가 없었다. 금방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다시 전화했을 때는 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건 알아두시고요.”
협박 비슷한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동네에 병원이 몇 개 있지만, 건강검진이 가능하고 내시경까지 할 수 있는 곳은 두 곳뿐이었다. 방금 통화한 곳과 다른 한 곳. 다른 한 곳에 전화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간호사님의 목소리. 불친절을 겪고 난 다음이라 그럴까? 유난히 그 병원이 마음에 들었다.
“예약하려고요.”
“잠시만요.”
“네, 얼마든지요.”
“죄송한데 올해 남아 있는 타임이 하나도 없네요. 다른 병원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그래. 친절한 병원이니 이미 예약이 다 끝났겠지. 이제 어쩌나? 동네 말고 다른 데서? 인터넷으로 수면내시경에 대해 알아봤다. 수면내시경을 받고 나면 운전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받는 게 좋았다. 다시 아까 그 병원으로 전화했다. 이번엔 전화를 받자마자.
“잠시만요.”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드디어 간호사가 나를 상대해 주기 시작했다.
“아까 그 날짜로 예약해 주세요.”
“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고요. 예약하시기 전에 꼭 알아두셔야 할 게 있어요.”
“네? 그렇게 일찍 하나요?”
“검사 때문에 일부러 일찍 출근하는데 취소하시면 저희 전부 바보 됩니다. 꼭 하실 거라면 예약해 주세요. 정말 하실 거예요?”
예약 취소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일까? 역시나 협박 비슷한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내지르고 말았다.
“이봐요. 예약한다고 했잖아요!”
“잠시만요.”
병원에서 건강검진의 하나로 인내심 테스트를 도입한 모양이다. 전화를 끊었다. 약 올리는 듯한 간호사의 태도에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랐다. 뭐 이런 병원이 다 있어? 돌겠네, 정말. 속이 쓰렸다. 체한 듯 명치가 아팠다. 위장님과 대장님께서 촬영 거부 의사를 내비쳐 난감해졌다. 섭외가 어려워졌다.
퇴근 후 변기택에게 전화했다. 역시 받지 않았다. 하긴 전화를 받아도 문제다. 돈 안 빌려준다고 삐친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오니 변기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했네?”
“그래, 한 달 넘게 연락이 없길래 살아 있나 싶어서.”
“죽다 살아났다.”
“뭐?”
“대장암 수술 받았다.”
“대장암?”
변기택은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아직 1기라서 수술만 하면 괜찮다는 의사의 말에 서둘러 수술했다. 빌려 달라던 돈은 수술비였다. 가족들 몰래 수술하고 싶었다나. 미친놈. 수술비 빌리려고 술을 그만큼 마시다니. 대장암까지 걸린 놈이. 난 변기택에게 미친놈이라는 말을 열 번쯤 하고는 마지막에 겨우 미안하다고 말했다. 변기택은 괜찮다며 나도 조심하라고 했다. 사람은 크게 한 번 아프고 나면 착해지는 모양이다.
건강검진 빈자리를 찾아 헤매던 나는 결국 동네 병원을 포기했다. 집에서 멀긴 하지만 동네 병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소화할 수 있는 건강검진센터에 전화했다. 간호사가 아니라 상담사가 전화를 받았다. 친절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빈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3일 뒤 오전 11시에 빈자리가 하나 있는데 예약해 드릴까요?”
“아, 네. 예약 부탁드립니다.”
“네, 예약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다른데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가요?”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요.”
“40대부터는 복부 초음파 검사를 권해드리는데요….”
상담사는 나에게 검진 패키지를 추천했다.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에 복부 초음파까지 받으면 뱃속은 완벽 커버가 가능하단다. 이왕 하는 김에 다 해버릴까? 근데 이게 왜 쇼핑하는 느낌일까?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잘 생각하셨어요. 내일 오셔서 대장내시경 약 받아 가시고요. 3일 뒤에 방문하셔서 신분증 보여주시면 되세요.”
“약이요?”
내시경 검사를 하려면 속을 비워야 했다. 속을 말끔히 비우기 위해 일단 금식하고, 대장의 경우 장을 청소하는 약까지 먹었다. 다음 날, 반차를 내고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갔다. 접수를 끝내니 ‘대장내시경 하제’라고 써진 접수증을 주었다. 번호표를 받고 잠시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갔다.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복부 초음파 다 받으시네요?”
“네. 이번에 다 받으려고요.”
창구 담당자는 나에게 종이 두 장을 내밀었다.
“여기 금식 관련 안내 사항이 적혀 있으니 읽어보시고요. 꼭 지켜주시면 되세요. 그리고….”
“그리고?”
“대장내시경 하제 약이 두 종류가 있는데 알약, 가루약 중에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차이가 뭔가요?”
“알약은 이만 사천 원, 가루약은 구천 원인데요. 가루약을 추천해요. 물을 많이 마셔야 하지만, 효과는 더 좋거든요.”
난 그의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싸고 효과가 좋다는 가루약을 택했다. 그는 물통 하나와 낱개 포장된 가루약이 잔뜩 들어 있는 종이 상자 하나를 내어주었다.
“여기 설명서에 적혀 있는 시간에 이만큼 드시면 되고요. 당일 늦지 않게 오시면 됩니다.”
설명서를 들고 병원을 나오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대장내시경을 받았던 한병헌의 말이 떠올라서.
‘대장내시경, 수면으로 받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물 마시는 게 제일 힘들더라. 진짜 장난 아냐.’
설명서에는 병원에 오기 4시간 전부터 30분 간격으로 물을 계속 마셔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으로 하제 약을 만들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물통에 가루약을 붓고 물을 500밀리리터씩 받아 네 번을 마시고 나니 창구 담당자를 찾아가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배가 너무 불렀다. 대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몸 안에 모든 게 빠져나가는 듯했다. 물 2리터를 꾸역꾸역 더 마셨다. 화장실에 세 번을 더 갔다. 속이 완전히 비워졌다. 예상보다 허전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동안 지은 죄의 찌꺼기까지 싹 다 빠져나간 것 같아서.
휴대폰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가는 동안은 괜찮았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마치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다시 내장이 꿈틀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힘없이 걸어 나와 병원 의자에 주저앉았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12월 8일 오전 11시, 검진센터 지하에 있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소 민망하게 디자인된 검사복을 입고 기본 건강검진 코스를 순회했다. 그렇지만 나의 관심은 온통 내시경에 가 있었다. 기본 코스를 끝내고 내시경 검사를 하는 층으로 갔다. 검진표를 내고 차례를 기다렸다. 검사실에서 일반 내시경 받는 사람의 앓는 소리와 의사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 환자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네. 좋아요. 금방 끝납니다. 아, 아, 그러시면 안 돼요. 아, 잠깐만요. 좀 쉬었다가 할게요.”
조금 있다, 다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남 일 같지 않은 그 소리를 들으며 ‘난 수면이니까 괜찮아’를 되뇌었다. 검사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침을 질질 흘리며 나왔다. 간호사를 따라 어딘가로 가버렸다. 뒤이어 내가 그 검사실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검사대 위에 오르니 옆으로 누우라고 했다. 간호사가 와서 입에 관처럼 생긴 걸 물렸다. 나는 부검을 기다리는 시체처럼 처량하게 검사대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또 다른 간호사가 와서 팔에 수면 마취제를 주사했다.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등장하고는 의식이 멀어졌다.
눈을 뜨니 검사대 위였다. 나를 깨워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아직 잠도 덜 깬 나를 붙잡고 위장과 대장의 내부를 보여줬다. 정신이 몽롱해서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의사는 나의 대장이 매우 깨끗하다며 칭찬했다. 대장님이 자랑스러웠다. 수고했다. 근데 위궤양이 있다고 했다. 그 원인은 헬리코박터균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 균을 제거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진료실을 나왔다.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검진센터 아래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받아 나왔더니 한겨울의 추위가 온몸을 감쌌다. 난 얼른 택시를 불러 세웠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약이 든 비닐봉지를 들여다보았다. 2주 동안 먹을 약이었다. 두툼한 약 봉투 말고도 위장을 보호한다는 짜 먹는 약이 두 박스나 있었다. 휴대폰으로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대중적으로 감염되는 균이었다. 내가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음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최근에는 위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위암이라니?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에는 양배추가 좋대. 양배추 많이 먹자. 아내가 보고 싶었다. 양배추 대신 위장약을 받아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이메일로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본인 인증을 마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니 가관이었다. 고지혈증에 고혈압 그리고 위축성 위궤양이 있단다. 더불어 복부 초음파 검사 결과, 간 결절이 확인되니 추가 검사를 받으라는 소견이 나왔다. 간 결절이라니. 이건 또 뭔가? 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면 복부 CT를 찍어야 한단다. 그럼, 처음부터 그걸 찍지 왜 초음파를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메일로 날아온 검사 결과에 무슨 말을 더하랴.
당신의 어떤 부분이 지금 병들었어요. 아픈 상황이니 치료가 필요해요. 라고 누가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 부분이 아픈가 보다. 난 간이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배를 만지며 간이 아프다고 생각했다. 술을 너무 먹었나? 변기택이 생각났다. 그 인간 때문이다. 술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그놈 간도 멀쩡하진 않으리라. 검사 결과지에는 ‘간우엽 저에코 결절 11mm’라고 적혀 있었고 뒤이어 ‘간 dynamic CT 권함’이라 나와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소견이 나와 추가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근데 그들 모두 죽어버린 것인지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자기 간을 걱정했던 고뇌의 심정들은 자세하게 남아 있었다. 불안해진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상담사가 받았다.
“고객님, 검사 결과 읽어보셨나요?”
“네, 확인했습니다.”
“몇 가지 유소견이 나와서 추가 검사를 해 봐야 하는데요. 일단 위궤양과 역류성 식도염이 있으시니, 약 드시고 두 달 뒤 추가 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네. 그럴게요.”
“간 같은 경우에도 종양 표지자 검사에서 기준보다 높게 나와서 CT 검사를 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종양이요?”
“아직 종양이라는 건 아니고요, 혹시 모르니 검사해 보는 겁니다.”
종양이라는 단어를 듣자, 마음속에 끈이 뚝 끊기는 느낌이었다.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네? 아니요. 잘못하신 게 아니라 혹시 모르니 검사를….”
“제가 뭘 모른다는 건가요?”
“고객님, 그런 게 아니고요.”
“아무튼, 알겠습니다. 예약해 주세요.”
“네, 고객님. 예약 진행해 드렸습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마지막 말을 들으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3일 뒤에 복부 CT를 받기로 했다. 그 날짜에 연차 휴가를 냈다. 이왕 하는 거 빨리 끝내버리기 위해. 근데 막상 3일이 지나자, 병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귀찮았다. 종양? 간 결절? 에라이. 당장 귀찮은데 그게 뭐? 죽을병이면 죽지 뭐. 건방진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병원에 전화해 검사 날을 한 달 뒤로 미뤄달라고 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10분 정도 멍하니 그렇게 있었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구청이었다. 쉬는 날에도 아무 때나 걸려 오는 전화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들어 전원을 끈 다음 방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이 꿈틀대고, 위가 쓰렸다. 간이 잘려 나간 듯 아팠다. 베개가 축축해졌다.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