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잘못
"불법 체류자인가요?"
경찰이 말했다. 시리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닙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감정을 억눌렀다. 요동치는 심장을 기필코 숨겼다.
"비자 보여주시겠어요?"
저 사람은 바보다. 나는 모든 짐을 잃어버리고 경찰서에 온 사람이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애초에 3개월 여행을 생각하고 왔습니다. 제 여권으론 무비자 상태로 유럽에 90일을 체류할 수 있어요. 귀국 티켓을 보여주면 되나요? 시리. 휴대폰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나는 시리의 계정을 로그아웃하고 대신 내 계정을 넣어 이메일을 확인했다. 경찰관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여줬다.
"제 입국과 귀국 티켓입니다."
"이게 당신 것이라는 증거 있습니까?"
소매치기 무리들은 내 짐과 여권, 휴대폰까지 훔친 것도 모자라 불법체류자에게 내 신상을 팔았다. 불법체류자는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걸린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덩달아 잡혀버렸다. 여권 주인이 잡혔으니 여권의 효력은 상실됐다. 벌써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간다. 시리는 다리를 절뚝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다 나 때문이다. 시리는 정소영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의 신상이 증명될 만한 서류들을 모으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진땀 빼는 시리를 보는 것도, 떨리는 목소리의 정소영도 마주할 힘도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온 몸에 힘을 빼고 벽에 기댔다.
딱딱하고 차가운 곳. 제대로 앉아있을 수도 그렇다고 서 있을 수도 없는 곳. 불은 켜져 있지만 삭막하리만큼 어두운 곳. 종종 고함 소리가 들리지만 적막한 곳. 인생 첫 유치장에 대한 감상평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동안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억지로 재수를 하고 삼수를 했던 그때로, 최고의 대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그때로, 용희와 헤어졌던 그때로, 해변가 그림을 봤던 그때로 돌아갔다. 치열했구나. 치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구나. 지금처럼 눈을 감고 뭔가를 진득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었을까.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생각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달리면서. 맨 뒤도 싫고 중간도 싫었다. 웬만하면 앞장서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처럼 안 됐다. 더뎌졌다. 자꾸만 멈추는 것 같은 나 자신이 정말 싫었다. 탈이 나면 소화제를 주고 아프면 메이크업으로 가렸다. 회복하고 기다리는 방법을 몰랐다. 가만히 있는 것도 못했다. 욕심으로 시간을 끌어오는 데 급급했던 나는 더 이상 가져올 수 없자 화가 난 것이다. 그간 들였던 노력이 원하는 보상을 주지 않아 지쳐버린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스페인에 왔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앞으로 나아가겠단 욕심도 버리지 않고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이. 자책만 늘어갔다. 나는 미동도 없이 천천히 눈을 떴다. 빛 때문에 눈이 시렸다.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던 걸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널브러진 두 다리다.
'불쌍한 다리네.'
그때 허벅지에 희미해진 토마토 축제의 흔적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연고를 못 발랐다. 나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치마를 짧게 걷어 다른 부위의 알레르기도 확인했다. 가까이에서 봐야 겨우 보일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배와 옆구리 쪽도 마찬가지였다. 알레르기는 사라져 있었다. 시리의 말이 떠올랐다. 시간이 빨리 흐르든 더디게 흐르든 없어질 건 없어진다는 것. 없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재밌으면 됐다는 것. 그걸로 내가 숨을 쉴 수 있었으면 된 거 아닌가. 아주 잠깐의 자유였지만 해방감이 들었다. 어떻게 되든 지금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앞으로 다른 어떤 두려움이 다가올 진 모른다. 그러나 손발이 묶인 채 이곳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것보단 낫다. 마침 시리가 경찰서로 들어왔다. 소매치기와 대적하던 그곳 근처에서 CCTV를 발견했단다. 경찰도 찾지 못한 걸 개개인이 하다니. 나도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우리는 항상 어찌어찌 알아서 잘 사니까.
"시리. 나 전화 한 통만 할 수 있을까."
나는 최대한 또박또박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과 시리가 나를 돌아봤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전화를 하려고 하죠?"
경찰이 비아냥대며 말했다.
"제 신분 증명하라면서요."
시리가 휴대폰을 주며 속삭였다.
"은. 무슨 방법이라도 생긴 거야?"
"아빠가 외교관인데, 전화해보려고."
현재 시각 새벽 4시 24분. 한국 시간으론 낮 12시 24분. 아빠라면 벌써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모든 거짓말을 털어놓기엔 밥 먹은 직후가 딱이지. 신호음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저 은이에요"
"무슨 일이니? 네 번호도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있는 이곳만큼이나 차갑고 딱딱한 말투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나는 차분하게 거짓말을 털어놨다. 감정을 배제하기엔 한국말만큼 좋은 언어가 없다. 질문이 아닌 이상 한국말엔 높낮이가 없으니까. 물론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말은 대체로 침착하다. 정해진 악센트가 없어 요동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화자와 청자가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소리가 없다면 알 수 없으니까. 전화기 너머에서 아빠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빠가 내게 침묵하는 이유는 대충 두 가지다. 첫째, 내가 아빠의 의도대로 행동했을 때. 둘째, 내가 아빠의 의도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그래서. 지금 어디라고?"
아빠는 필시 뭔가를 억누르고 있다.
"유치장이요."
나 역시도.
"그건, 거짓말이 아니고?"
스스로 거짓말을 고백할 땐 또 다른 거짓말이 추가되면 안 된다. 고백을 결심한 데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끝내기 위해 고백하는 자리에서 또 다른 거짓말이 만들어진다면 그 결심은 가짜다. 난 가짜와의 싸움을 끝낼 것이다.
"네."
"행동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니?"
드디어 나온 아빠의 첫 질문. 괜찮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는데. 결국 눈물이 나왔다. 그간 참았던 모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어떻게든 말을 이어나갈 것이다.
"아빠. 아빠한테 거짓말을 한 건 제 잘못이 맞아요. 그건 인정하고 사과드릴게요. 그런데 저는요, 잘못된 행동을 하진 않았어요. 그저 여행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뿐이에요. 제가 누군가에게 여권을 준 게 아니에요. 주려던 생각도 없었고요. 어쩌다 보니까 도둑맞았어요. 그럼 그 도둑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게 아닌가요?"
끅끅 대면서도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아빠한테 전화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내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에게 연락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아세요? 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한테 먼저 연락한 적 없어요. 충분히 알고 있는 제 잘못을 굳이 확대해서 보고 싶진 않았거든요. 잘못 먼저 지적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싫었어요. 아빠랑 대화만 하면 숨이 막혀서 죽어버릴 것 같았어요."
한 번 터진 반항은 눈물처럼 멈출 줄 몰랐다. 아빠는 기다리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시 차가운 바닥에 홀로 남았다.
경찰서에서 나온 나와 시리는 내리쬐는 스페인의 태양 앞에 멈춰 섰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지저귀는 새들, 까르르 웃는 아이들 모두 그대로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거울을 봤다. 가관이다. 며칠 째 잠을 못 자 퀭한 두 눈은 눈물 껍데기로 뒤덮여 퉁퉁 부어있다. 찢어진 치맛자락에 물기를 닦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시리가 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우리는 그 길로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임시여권을 받기 위해서다.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내 신상이 확인되었다고. 아빠의 힘을 빌린 덕분이기도 하지만 시리가 찾은 CCTV 자료와 정소영이 한국에서 보내준 서류들도 각자 제 효력을 발휘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종이 한 장만 덜렁 든 채로 시리의 집에 도착했다. 발렌시아로 떠날 땐 짐이 많았는데. 참으로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 집만큼은 그대로다. 내 집도 아니고 내 방도 아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 처음으로 찾은 내 안식처.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얼굴엔 열이 올랐고 눈 주변은 따끔했다. 시리는 그런 나를 지켜봤다. 같이 울어줬다. 울지 말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고, 버텨낸 게 대단한 거라고,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다고, 후회할 일은 없을 거란 말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