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논하는데돈얘기가 빠질 수 없다. 당장의 돈 걱정없는 부유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딱 ○○○○원만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돈으로 얼마든지 행복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혹시 돈이 모자란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면 '부의 ○○', '부자 ○○', 돈의 '○○' 등등 부, 돈, 투자, 금융 관련 책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부자 되는 책'에는 어김없이 '행복'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는데,'돈'하면 '행복', '행복'하면 '돈'이 떠오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행복 추구와 부의 추구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부자 되는 책의 유형
부(富)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본 결과, 흔한 재테크 관련 지식을 다량 접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돈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통찰을 접할 수 있었다.
부와 관련된 저서들은 대략 네 가지유형으로 분류되는듯한데, 하나의 저서가 복수의 유형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 유형은 부에 대한 태도, 마인드셋을 다루는 책으로심리학, 철학, 사회과학 등 인문학적 관점을 가지고 부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 돈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부에 대한 가치관 및 사고방식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책으로,현재의 체제까지 흘러온 역사적 배경및 돈이 생겨나고 움직이는 원리 등을 알려주는 유형이다. 물가 상승, 빈부격차 등 우리가 몸담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본주의라는 큰 틀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런 류의 책을 접할수록 자본주의를 모르고 부를 추구하는 것은 규칙도 모른 채 스포츠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이해했다면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등장할 차례다. 일해서 급여를 받는 것 말고 부자가 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사업과 투자다.
세 번째 종류는 사업 및 창업, 성공과 관련된 책으로 특히 자수성가한 유명인들의 실제 사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유형의 저서들은자기 계발서와 경계가 모호한듯하다.
마지막 유형은투자 및 자산관리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로 일명 재테크 관련 책이다. 종잣돈을 불려보고자 하는 이들이 아마도 제일 먼저 접하게 될 분야로 주식, 부동산, 채권, 펀드, 가상화폐 등 다양한 투자 수단에 대한 설명과 조언이 등장한다.
부자 되는 책 속의 행복키워드
그렇다면 저자들은 부와 행복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돈의 속성>에서 저자 김승호 회장은 자산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지킬것이 많아지므로부자가된다고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내비친다.그러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산다는 얘기는 판타지라고 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들의 음모>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용당하지 않기 위한 금융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과 생각을 통해 경제적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출판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는자본주의의 역사와 작동 원리를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은행을 매개로 통화량이 증가하는 과정,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이유, 열심히 살아도 왜 부자가 되기는 어려운지 등에 대한 세계적 석학들의 의견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특히 한국인의 행복에 대한 연구결과가등장하는데, 개인적측면이 아닌 구조적측면에서의 행복에 대해 다루는 동시에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논의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융자본주의의 부산물인양극화속에서 한국인은과연 행복한지에 대해 고찰한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가난에서 탈출했다.그러나 부가 늘어난 만큼 행복해지지는 않은 듯하다. 여러 통계자료를 통해 바라보면 한국인은 오히려 불행하다.
편집 팀은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정체된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통해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자본주의 체계 또한 끊임없이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모건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에서 리스크 관리, 장기투자 등 투자행위와 관련된 여러 조언과 함께 인간의 '자유'에 초점을 맞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일종의 '통제감'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인간은 시간적,공간적 자유를 느낄 때 행복하다는 점에서 바로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한 '부'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가의 물건을 소유하기 위한 돈은 중요하지 않으며, 남과의 비교가 불행의 시작이라는 통찰에 공감이 된다.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백만장자로, 책의 내용은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위한 여러 가지 조언들이 주를 이룬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저자는 특히나추월차선을 타기 위한인식 전환과,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부의 의미가 올바르게 정의되었을때만 부는 곧 행복이 될 수 있음을 덧붙인다. 이때의 부는 단순한물질적 부가 아니며,자유와 건강과관계를 지킬 수 있는 '수단'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저자들이 돈과 행복에 대해서는 비슷한 관점을 가지는 듯하다.
저자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페이지를 많이 할애하기도 하고 한두 번 행복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요컨대 행복하기 위해서 부를 추구한다는 밑바탕은대동소이하다.
부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조언
부유한 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다음과 같다.
1. 돈을 욕망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2. 부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요소 3. 가난하면 대체로 불행하다
4. 부자가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말 것 5. 부를 추구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6. 어느 정도 부를 쌓으면 부 자체가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7. 부를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싶은 것이 무엇인가?
8. 특히 인간관계를 중시할 것 9. 남과비교하지 말고 욕망, 기대치를 낮출것 10. 돈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된다
11. 쉽게 얻어지는 부는 없으니일확천금을 바라지 말 것 12. 돈은 버는 만큼 지키기도 힘들다 13. 남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돈이 온다
공감이 되는 메시지도 있고 아닌 메시지도 있지만 감히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수는 없다. 나는 그들이 소유한 만큼의 돈을 구경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꾸만 돈, 돈 거리는 것이 속물적, 세속적이라는 인식을 떨쳐버리기가 쉽지는 않다.
돈이 과연 행복을 보장하는가?
복권에 당첨되고 패가망신하는 사례, 부유한 셀러브리티의 자살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부자들은 공부하고,생각을 바꾸고,행동하라고 외치는데 그게 과연 노력으로 되는 일인가?
여러 가지 의문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래서 더더욱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으며 그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한들 벗어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자본주의 세계관 안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그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으며, 나와 주변인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부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냥 열심히 돈을 벌면 되는 것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굴러가는 원리를 알고 열심히 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혹자는 만족을 위해서 분모에 해당하는 '기대치', 혹은 '욕망'을 낮추라고도 한다. 분자에 해당하는 부의 규모를 늘릴 수 없다면 바라기를 적게 바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본주의 세계에서 개인의 의지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자본주의시스템은빚을 지고, 소비를 해야 돌아간다.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기에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대출을 받고,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고,또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나간다.
문제는 욕망이 계속 부추겨진다는 점이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소비를 조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아무리 소비를 줄이고 절약하려고 해도 온갖 광고와 마케팅 수단에둘러 쌓여있는 이상 소비를 욕망하지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시스템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고 당하느냐, 모르고 당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봐서는 사고 또 사도 계속 부족할 것이고, 일하고 또 일해도 돈은 모이지 않을 것이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대부분의 인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정착한 상태다.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없듯이 자본주의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또한 자본주의는인류의 부를 현저하게 증대했으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와 관련된 내용에이렇듯분량을 많이 할애한 이유는어쨌든최소한의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측면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 생각, 심리등을 이해하고, 시스템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부유한 저자들의 돈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엿보고 나니 특정 분야에 매몰되기보다는 다양한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 부를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행복하기 위해서는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부의 추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공통적인듯하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도 어찌어찌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돈이 없이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특히나 자유를 원하는 이들은 자본주의와 부에 대한 깊은 이해, 부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 정립이 필수라는 결론에 이른다.
4장의 주제가 행복과 돈인만큼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는 '투자'와 행복을 연결 지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행복추구와 투자는 비슷한 점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행복도 한편으로는 투자의 대상이며부와 행복에는 일종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점이 그러하다.
행복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자.
행복은 짧고, 고통은 길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라는 감정의 속성 중 하나는 바로 ‘비지속성’이다.
태생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은 매일매일이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순간은 훗날드라마의 명장면처럼 비록 강렬하게 기억될지는 몰라도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취업, 합격 등 오래도록 바라왔던 무언가를 마침내 이루었을 때를 떠올려보자. 내 눈으로 직접 성취의 징표를 확인한, 너무나도 행복한 그 순간을 위해서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고, 때로는 좌절하면서 크고 작은 고통을 겪어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행복감도 잠시, 자연스럽게 다음 할 일이나 또 다른 도전과제를 떠올리지는 않았던가?
물론 한동안은 행복한 느낌이 주를 이루는 나날을 보냈겠지만 그전까지 견뎌왔던 고통의 시간에 비해서는 초라할 정도로 그 지속시간이 짧았을 것이다.
피곤한 아침, 만원 버스에서 자리가 났을 때 털썩 앉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없다.그러나 곧 아픈 다리가 괜찮아지고, 앉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온데간데없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이제 투자 이야기를 해보자. 투자자가 아니더라도빨간색과 파란색의 어지러운 주식 차트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상승과 길고 지루한 하락 내지는 횡보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주식차트와, 인생에서 우리가 느끼는 행복-고통의 사이클이 미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비교적 귀찮은 것, 싫은 것, 고통스러운 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와중에 안락한 것, 좋은 것, 기쁜 일들은 생각보다 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직장인에게 영업일은 길지만 황금 같은 휴일은 너무도 짧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은 길지만 쉬는 시간은 길어야 15분 남짓이다. 만성적으로 두통을 앓는 사람이 웬일로 머리가 아프지 않은 날이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을까?
인생에서 크든 작든 고통이 기본값임에 비해 행복의 지속시간은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진다는 점이 어찌 보면 서글프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제 사이클이나 주식시장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우상향의 곡선을 그리듯, 우리의 인생도 멀리서 봤을 때는 행복의 총량이 점점 더 커지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걸어야 하는 오르막 내지는 필연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르막길 없는 정상과 수수료 없는 수익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삶의 이정표와도 같이 어딘가 콕콕 박혀있을행복의 시간들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항상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떨까 한다.
장기 투자의 여정 중 어쩌면 길다고 느껴질 수 있는 조정의 구간에서도 짧은 반등의 구간이 있듯이
일상 속에서도 저마다의 소소한 행복들을 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작은 행복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그저 인내만 하는 삶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