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따라서 느닷없이 찾아오는 훼방꾼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행복의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쫓아다니는 이 훼방꾼의 이름은 '불행'이며,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이번 장에서는 불행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불행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불행'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실패, 가난, 질병, 사고, 재해, 죽음 등의 생각만으로도 괴로운 상황과 분노, 슬픔, 좌절, 불안, 질투, 우울 등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떠오른다.
언뜻 보기에 행복과 불행은 별도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이라는 개념이 있어야만 행복의 개념이 성립됨을 알 수 있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질병을 앓아본 사람만이 비로소 건강한 몸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그것이 행복임을 정말 알 수 있을까?
이렇듯 행복을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불행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글을 이어가기에 앞서, 다소 추상적인 '불행' 대신 조금 더 구체적인 '고통'을 생각할 거리로 삼고자 한다. 불행한 상황에는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고 고통이라는 개념이 다루기에는 그나마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반대편에 놓여있는 고통을 제거하고 불행에서 벗어나면 끝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고통 제거 = 행복'의 간단한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서는 고통이 없는 상태와는 별개로 무엇인가가 더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은 슬기롭게 다룰 필요가 있다.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행복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불교의 고찰을 살펴보자.
불교에서 고통은 삶의 본질적인 요소로, 불교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이다.
고통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불가피한 현실로,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첫걸음으로 여겨진다.
궁극적으로는 팔정도를 통해 고통의 소멸을 추구하며, 완전한 깨달음과 자유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팔정도(八正道)는 올바른 견해, 생각, 말, 행동, 생활, 노력, 마음 챙김, 집중을 통해 삶을 수행하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의미한다.
고통은 어쩌면 삶의 기본값인 듯하다.
이를 인정하고 불행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보이지 않을 뿐 누구나 묵직하게 이고 가는 짐이 있다. 짐은 번거롭고 무겁지만 꼭 필요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불행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고, 질병, 가까운 이의 죽음, 재난 등 느닷없이 처해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러한 불행은 누구의 잘못이나 의도도 아니며 삶을 이루는 일종의 구성 요소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며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세상을 원망하거나 불행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면서 고통 그 자체에 매몰되어 쉽사리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말했듯이 인간은 던져진 존재다.
하이데거의 철학적 주장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지 않더라도 이미 특정한 상황과 조건 속에 '던져져'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출생, 문화, 역사적 배경, 그리고 생물학적 조건과 같은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요소들에 의해 세상에 던져졌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렇듯 세상에 그저 던져진 존재일 뿐인 우리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려 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 '던져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 실존의 불확실성과 자유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분노, 좌절, 불안, 질투 등 내부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살펴보자. 이러한 고통은 모종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유발되는 감정이지만, 생존에 위협을 받는 급박한 상황이 아닌 이상 개개인은 동일한 상황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는 타인을 질투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누군가는 좌절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실패를 성공에 이르기 위한 과정쯤으로 여긴다.
또한 우리는 중립적인 상황에 불행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면서 굳이 고통을 '선택'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불행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며 고통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면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상황의 좋은 면을 바라보거나, 스스로 고통 속으로 기어들어 가거나.
선택은 개인의 자유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독재 하에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데,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말로 형언할 수도 없는 극한의 고통을 겪었을 사람이 전해주는 삶의 태도에 대한 통찰은 무엇일까?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 갈 수 없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만큼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
모든 일은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어쩌면 흔한 말이 떠오르지만 다짜고짜 상황을 즐겨보라는 뜻은 아니다.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그 나름의 의미나 좋은 구석을 찾아내려 애쓰고, 개인이 지닌 태도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쪽으로 바꿔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불행의 모래사장에 파묻히면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 틈 같은 것은 없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각도를 조금만 틀어서 밝은 쪽을 바라보며 나아가면 적어도 어두운 쪽으로 곤두박질치지는 않을 것이다.
암 연구의 최전선으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 대학교 엠디 엔더슨 암 센터에서 교수로 재직한 김의신 박사는 암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미국인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면서 질병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꿀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미국인들은 암을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맥락의 만성 질병으로 여기는 반면, 한국인들은 유독 비관적인 태도로 암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종류를 불문하고 암의 발병이란 분명히 절망적인 사건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불치병, 죽을 병과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물며 현장에서 오래 연구한 권위자가 실제로 미국인이 한국인보다 암을 더 잘 이겨내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새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된다.
다시금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질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며, 세상에는 다양한 태도가 있음을 인지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마음가짐을 정비해서 나쁠 것이 하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원영적 사고(걸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인터넷 밈이자 유행어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는 확고한 낙관주의를 기반으로 함)를 하고 '오히려 좋아!'를 외치는 사람들은 현실을 왜곡하는 바보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불행은 행복과 결국 한 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불행을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기기만이 아닌 태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 정말 쉽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각도를 틀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