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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Aug 16. 2021

2.진짜 세계는 무엇일까?

이데아_플라톤 편




[게임 속으로]


동하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게임을 합니다. 엄마 아빠와 수요일 저녁과 토요일에만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로블록스 프리즌 라이프에서 죄수 역할로 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스와트가 밀어닥쳤어요. 유료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인 스와트를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어요. 시간이 다 됐다는 엄마 말씀에 이번 게임만 마치고 그만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화가 난 동하는 게임을 끄면서 중얼거렸어요.


내가 직접 게임 안에 들어가서 싸우는 게 낫겠다!


그때 휴대폰에 매달린 문어 고리가 번쩍하더니 갑자기 컴퓨터 바탕화면에 못 보던 게임 아이콘이 생겼어요. '이런 게임은 깔아 둔 적이 없는데...' 동하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엄마, 잠깐만요.'라고 하고는 마우스로 클릭을 했어요. 경고 표시가 붉은 글씨로 떠올랐어요.


[경고 : 이 게임 속 누군가가 당신을 영웅으로 선택했습니다. 위험한 게임이니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동하는 풋! 하고 웃음이 났어요. '겁을 주는 시작이라니 신선하네! 이 게임 천재님을 뭘로 보고 말이야!' 망설임 없이 스타트 버튼을 클릭했어요. 갑자기 온 방안의 불이 꺼졌어요. 캄캄해져서는 바로 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어요. 겁이 덜컥 난 동하는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려는데 발이 공중에 떠서 버둥거리기만 하는 거예요. 놀란 동하는 '으악!' 하는 소리를 내며 발을 동동 굴렀어요. 얼마 동안 허공에서 버둥거렸을까... 갑자기 바닥이 느껴지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어요.


엄마는 동하가 게임 시간이 끝났는데 저녁 먹으러 나오지도 않아 화가 났어요. 그리고 방문을 벌컥 열었지요. 그런데 컴퓨터는 켜져 있었지만 동하는 의자에 없었어요.



[진짜 세계 vs. 게임 세계]


밝은 빛에 놀란 동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어요.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이 펼쳐졌어요. 마치 마인크래프트처럼 네모난 물방울로 된 폭포가 마을 중앙에 쏟아지고 있고 레고처럼 생긴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이었어요. 동하는 소리 지를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어요. 지나가던 레고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전엔 귀엽다고 생각했던 검고 커다란 눈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누군가 동하의 머리에 보자기를 씌웠어요.


이걸 쓰고 있어야 돼. 그리고 마을 주민과 눈이 마주치면 안 돼. 절대로!


동하가 뒤돌아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애가 보였어요. 두건에 가려서 눈밖에 안보였지만 검고 반짝이는 예쁜 눈이었어요. '사람이 있긴 있었구나!' 동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자 아이는 어깨동무를 하고는 급히 골목길로 데리고 갔어요. 골목 구석구석은 거미줄처럼 복잡했어요. 그리고 어느 허름한 집 문 앞에 도착했어요. 여자애는 주변을 신중히 살핀 다음 커다란 열쇠 꾸러미로 문을 열고 집안에 동하를 밀어 넣었어요. 하마터면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어요.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고개를 들어보니 거대한 어깨를 가진 누군가가 조그만 창 앞의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어요.


플라톤 선생님, 사람이에요.


여자아이가 모래먼지가 잔뜩 묻은 두건을 벗으며 말했어요. 동하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눈이 예쁜 아이가 금발머리를 가진 진짜 사람이란 게 너무 안심이 됐어요. 게다가 집 앞에 있는 학원 이름에 있던 플라톤이란 선생님도 레고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여자애의 말에, 창을 바라보고 있던 거대한 어깨가 움찔거리며 돌아섰어요.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거대한 그림자가 동하 얼굴을 서서히 가리며 다가왔어요.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을 만지고, 볼을 양쪽으로 쭉쭉 늘려댔어요. 누군가 함부로 내 몸을 만지게 하면 안 된다는 학교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만지지 마세요. 내 몸은 내 거예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용기를 내 소리쳤어요.


껄껄껄! 좋아! 올바른 말을 하는 걸 보니 정말 사람이 맞군


거대한 어깨가 몸을 옆으로 틀며 웃어대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어요. 수염이 잔뜩 나 있고 레슬링 선수처럼 귀가 만두 모양으로 접혀 있었지만 웃는 얼굴은 아주 천진난만해 보였어요. 동하는 소크라테스 선생님께 배운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플라톤과 대화를 시작했어요.



[플라톤과 아카데미아]


동하 : 전 동하에요. 선생님은 이름이?


플라톤 : 나는 플라톤이라고 한다.


동하 : 학원 이름에서 본 적 있어요. 플라톤 무슨무슨 아카데미 학원 뭐 이런 거요.


플라톤 : 그래? 플라톤이란 이름은 원래 평평하단 뜻으로, 내 어깨가 아주 넓고 평평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실제로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리고 아카데미아란 대학교를 유럽에서 최초로 만들었지. 무려 2천 년 전에 말이다. 진리를 아는 건 나의 선생님인 소크라테스 가르침대로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걸 뭐라고 하냐면...


동하 : 모르는 걸 아는 것, 무지의 지로부터 시작해야 해요.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해야 돼요.


플라톤 : 맞아. 우리 스승님이 너를 만났다고 하시더니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아카데미아란 학교를 만들었지. 진리를 위해 질문하고 배우는 학교지.   


동하 : 그런데 이 세상은 뭐죠? 게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세상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여긴 게임 속 세상이죠? 맞죠?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처럼 레고 모양으로 생긴 거죠?


플라톤 : 오! 아주 똑똑하구나. 맞아. 이 세상은 가짜지. 그런데 이곳에 있는 레고 모양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가짜 세계에 산다는 걸 모른단다.


동하 :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폭포에서 튀기는 물방울도 네모난 모양이고 의자나 집도 전부 네모난 모양이에요. 사람들 얼굴도 전부 그렇고요. 그런데 여기 게임 속 캐릭터들은 자기가 진짜라고 생각한다고요?


플라톤 : 맞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거라. 그럼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플라톤 동굴의 비유와 이데아]


만약에 사람이 거대한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사람들은 동굴벽을 향해 앉아 있고 고개를 돌릴 수도 없어. 그러니 하루 종일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만 볼 수 있지. 동굴 밖의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지나가는 그림자,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림자, 토끼가 깡충깡충 뛰는 그림자 등등. 당연히 동굴 안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실제 세상이라고 생각해. 왜냐고? 태어나서부터 계속 동굴 안에서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세상은 그림자로 이뤄졌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동굴 안에 있던 사람 하나가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 거야. 어떻게 됐을까? 처음엔 눈이 너무 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을 거야. 그런데 점차 그림자로만 알고 있던 진짜 세계를 보게 되지. 물건을 들고 웃으며 지나가는 진짜 사람, 이슬이 맺힌 초록색 풀잎들, 갈색 털이 복실한 귀여운 토끼의 모습을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진짜 세상을 비추는 밝은 태양을 보게 되지. 그 사람은 동굴로 뛰어들어가서 동굴 안 사람들에게 진짜 세계에 대해서 말해줘.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동굴 안 사람들은 막 비웃어. 이 세상이 어떻게 가짜일 수 있냐고 말이야. 그리고 계속 이 세상이 가짜라는 둥 소문을 퍼트리면 아주 혼날 줄 알라고 협박하는 거지.


너는 지금 이 게임 세상이 가짜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 게임 세상의 사람들은 마치 동굴 안 사람들처럼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 진짜 세상과 진짜 물건이 따로 있다는 걸 믿지 못하지. 그리고 네가 이곳은 가짜 세상이라고 말하는 순간 화가 난 게임 캐릭터들은 너를 때릴지로 몰라.


나는 진짜 세상과 진짜 물건을 이데아라고 부른단다. 지금과 같은 게임 세상은 당연히 이데아 세계를 흉내 내서 만들어진 거야. 그런데 너도 봤다시피 흉내 내다보니 완벽할 수 없었던 거지. 폭포의 물방울 모양은 동그랗지 않고 네모야. 의자 모양도, 집 모양도 전부 네모로 생겼지. 진짜인 이데아를 흉내 낸 것들은 모두 그렇게 엉성한 형태야. 만약 누군가가 여기가 가짜 세상이란 걸 알아챈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지도자가 될 만하지. 그게 내가 쓴 국가란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란다.


동하는 플라톤의 말이 이해가 될 듯했어요. 그리고 여자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보자기로 가린 것도 이해가 됐어요. 게임 속 캐릭터들은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진짜 세계가 따로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화를 낼 게 분명했으니까요.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이 게임 세상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거죠? 엄마가 걱정하신단 말이에요.

동하가 플라톤에게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창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동이 일어났어요. 플라톤과 동하와 여자아이는 다 같이 창으로 다가가 소동을 지켜봤어요. (계속)



[플라톤의 가르침]


o 플라톤 : 소크라테스 제자였고 유럽 최초의 대학교인 아카데미아를 설립했습니다.

o 진짜 세상과 진리 : 플라톤은 게임도 없던 시대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짜는 아닐까? 의심했어요. 그리고 진짜 세상, 참된 진리가 분명히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o 이데아 : 가짜 세상과 반대인 진짜 세계와 참된 진리를 이데아(Idea)라고 불러요.

o 동굴의 비유 : 플라톤이 쓴 [국가론]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예요. 결국 동굴 밖으로 나와서 진리를 본 똑똑한 사람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믿었어요.  


[엄마 아빠를 위한 팁]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다르게 모르는 걸 안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언제나 진리인 정답을 제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데아란 생각이었어요. 즉 수학의 정답처럼 진리란 것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요. 이런 입장을 보통 형이상학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히틀러와 같은 이들이 바로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나온 입장을 적극 활용했어요. 그 결과는 끔찍한 세계대전과 계급에 따른 차별로 이어집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 지배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낮은 계급에 있는 걸 당연시하는 이상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 뒤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형이상학적 전통을 반대하고 다양성을 중시하는 철학과 사상이 많아졌습니다. 언제나 옳은 것 같은 수학이나 과학조차 현재에 와서는 다양하게 비판받고 있거든요.

결국 플라톤이 전해주는 교훈은 소크라테스와 같이 진짜 진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해 보이는 정답도 의심하고 이게 과연 진짜인가를 생각해 보란 것이지요. 따라서 아이가 질문을 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할 때 부모님이 의무감에 정답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 열린 태도가 중요합니다. 언제나 아이 말에는 "그런 생각을 했구나. 이러저러한 면에서 아주 재밌는 생각이네."라고 구체적인 내용으로 동의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인정받은 아이는 나중에 스스로 정답을 결국 찾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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