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의 길_파르메니데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이 세계는 허상이다...
너희들의 집, 아무것도 없는 길로 돌아가라!
여신 : 그대는 방금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났지요? 모든 것은 서로 싸우며, 그 싸움으로 인해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꽃처럼 움직이는 것이 세상의 원리라고 배웠지요?
동하 : 네. 밤과 낮, 여름과 겨울, 미토스와 로고스처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싸워가며 세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움직인다고 배웠어요. 또 그런 싸움을 통해 어쩌면 세상이 더 조화롭게 되거나, 더 나은 진리를 알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어요.
여신 : 똑똑한 어린 철학자여.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를 배웠다면 변증법에 따라 이제 그에 반대되는 주장을 배울 차례로군요.
동하 : 모든 것이 변화하고 흐른다에 반대라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여신 : 맞아요. 내게 찾아온 파르메니데스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깨달은 이야기랍니다. 아까 내가 외친 주문을 들었지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동하 : 죄송한데요... 멋지긴 한데 말장난 같아요. 있는 건 당연히 있고, 없는 건 없지요.
여신 : 맞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봐요. 있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어야 해요. 그런데 있는 것이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질 수 있나요? 반대로 없는 것은 처음부터 없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갑자기 뾰로롱 하고 뭔가가 생겨날 수 있나요?
동하 : 그... 그건... 아니죠. 그런데 있던 게 없어지고 없던 게 생겨나야 변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여신님 말씀대로라면 아마도 변화란 건 없는 것 같아요... 잠깐, 근데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계절의 변화는 분명 있는데... 이상해요. 이해가 안 돼요.
여신 : 맞아요. 계절의 변화는 있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계절의 변화라는 현상 뒤에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처음 들을 땐 이상한 이야기 같지요. 그런데 나와 파르메니데스는 이 이상한 생각으로, 이곳 세상이 게임으로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는 걸 알아냈어요.
동하 : 네? 정말요? 여신님과 파르메니데스 님은 게임 세상에서 태어나 살았으면서 어떻게 이곳의 좀비가 게임 캐릭터일 뿐이고 또 이 세상이 게임 속 가짜 세상이란 걸 알 수 있었던 거예요? 저야 진짜 세상에서 왔으니깐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말이에요.
여신 : 우리가 세상을 파악할 때는 눈, 코, 입을 사용해요.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이나 진리를 찾을 때도 탈레스처럼 물도 손으로 만져보고,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불꽃도 눈으로 관찰하지요. 그런데 이건 속아 넘어가기 쉬워요. 꽃 향기를 가짜 꽃에 뿌리고 동하 앞에 가져다 대면 동하는 그걸 진짜 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감각은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해요. 꽃의 모습과 향기라는 현상에 속으면 진짜 세계를 볼 수 없답니다.
동하 : 그러니까 우리가 아예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세상 너머의 진실을 보려면 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봐야 되는 거군요.
여신 : 정답! 파르메니데스는 이전의 철학자들과 다르게 눈에 보이는 세상의 원리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대신에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것들을 알아챌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줬어요. 바로 오로지 논리와 순수한 생각.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따라서 변화란 없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형체(形) 너머(而上)의 진리를 알아내는 학문(學)을 만들었어요. 그게 바로 형이상학(形而上學)이에요.
1. 파르메니데스 :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 엘레아(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학파의 철학자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달리 세상은 불변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생각은 제자인 데모크리토스에게 이르러 '세상은 원자로 되어있다.'라는, 우리가 현재 과학에서 배우는 생각까지 나아갑니다.
2. 형이상학 : 파르메니데스는 경험이나 감각이 아니라 순수한 논리와 생각의 힘만으로 세상 너머의 진리와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즉 세상의 뒤편에 숨겨진 정체와 원리를 순수한 생각과 이성으로 탐구하는 학문인 형이상학의 근거를 마련한 철학자입니다.
3. 여신과 파르메니데스 :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주장을 시로 만들었어요. 그 시에는 여신이 등장해서 파르메니데스에게 진리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로고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처럼 여신이 등장하는 미토스적인 이야기로 자신의 주장을 쉽게 이해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비유나 이야기 방식은 지금도 많이 사용하는 논술의 기본방법입니다.
4. 철학의 큰 두 가지 흐름 :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모두 세상의 근본 법칙을 설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실제 눈에 보이는 세상을 대상으로 변화의 원리를 중요시했다면, 파르메니데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와 이성(생각)이 최고란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이 두 사람의 생각은 이후 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며 지금까지도 철학이 싸우며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