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_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 동하는 왜 집에 가고 싶니?
동하 :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도 계시고, 친구와 게임기도 있으니까... 집에 가야 행복해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렇지.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단다. 그럼 집에 가면 될 텐데 왜 망설이지?
동하 : 제가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준 친구를 버리고 혼자 돌아간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렇겠군. 그것이 내가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 이유란다.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지. 이웃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그런데 행복에 이르는 도덕은 기술이 필요하단다. 도덕과 윤리 역시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이거든.
동하 : 도덕과 윤리를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요?
아리스토텔레스 : 응. 지금 상황을 예를 들어보자. 너의 마음은 두 가지야. 첫째는 하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서 집에 돌아가는 거지. 즉 두려움이 너를 삼키도록 놓아두는 상태란다.
동하 : 그건 좀 비겁한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럴 수 있지. 그렇다면 또 다른 선택은 하나를 구하기 위해 무조건 풍덩! 하고 위험한 강물에 뛰어드는 거지.
동하 : 그건 좀 지나친 것 같아요. 하나를 구할 수도 없고 저도 위험에 빠질 테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렇지. 용기가 적으면 비겁함이 된다. 반대로 용기가 지나치면 무모함이 되지.
동하 : 딱 중간에 적절한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아리스토텔레스 : 맞다. 그게 바로 중용이란다. 중용은 어느 한쪽으로도 넘치거나 지나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기술이란다. 예를 들어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용기'가 중용이지. 또 '거만함'과 '자기 비하' 사이에 '겸손'의 길을 찾는 것도 중용이라 할 수 있단다.
동하 : 하지만 늘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중용이란 현명한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 : 맞아. 그래서 첫째,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중용일까?를 깊이 생각하는 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그런 다음에는 반드시 생각을 실천해야지. 머리로만 아는 건 약을 받아서는 먹지 않는 것과 같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도덕적 상상과 생각이 일상생활의 습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하 : 학교에서 실천하는 삶에 대해 배우고, 엄마 아빠가 집에서 예절을 지키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도 그런 이유로군요.
아리스토텔레스 : 과연! 레벨 9의 꼬마 철학자로구나!
정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은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을 많이 해 본 사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