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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r 30. 2024

역사와 민족을 논하는 건설 노동자

소비의 두 가지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일


힘들게 번 귀한 돈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신중하고 예민해지곤 한다. 특히 막 수입이 생기기 시작한 젊은 사람이 까탈스러울 때가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를 오가며 할인을 따져보는 건 당연하고,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가성비 없는 식당은 찾지 않게 된다. 칭찬할만한 합리적인 소비다.


돌이켜보면 나도 대단한 소비자였던 적이 있다. 결혼반지에 들어갈 신품 다이아몬드를 사기 위해, 보석신문을 보고 종로에 위치한 국내 수입 7위권 업체와 컨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황한 전화 목소리로 일단 와보라던 담당자는 오래 일했지만 일반인이 다이아몬드를 직접 사러 온 적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에게 남편 되실 분이 다이아몬드 계통에 계시냐고 물을 정도였다. 다이아몬드 산업의 역사, 지질학은 물론 감정용 현미경까지 구매한 터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직원이 건넨 루페를 끼고 같은 등급 중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선별해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다.


그런데 소비의 합리성과 스트레스는 정비례 관계에 있을 때가 많다. 합리적 소비가 강박이 될 때 그렇다.  



장인 장모님을 뵈러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처남과 만났다. 처남도 가족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온 터였다. 제주도 집이 좁으니 따로 호텔을 잡아서 지냈는데 자신이 묵은 호텔에 불만이 많았다.


당시 그 호텔은 1박을 하면 장난감을 주는 행사를 했다. 아이가 둘이고 마침 이틀을 묵게 되었으니 장난감을 2개 달라고 부탁했다. 호텔 컨시어지는 융통성 없이 거절했다.


연박할인도 없던 터라 어차피 하루씩 두 번 예약하면 2개를 받을 수 있으니 무리한 부탁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들 둘에 장난감 하나라니, 솔로몬처럼 장난감을 반으로 가를 수도 없던 처남 입장에선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면 내가 묵은 호텔은 좋았는가 하면 역시 작은 불만이 있었다. 연박 이틀째 오전에 외출을 하면서 방 청소를 부탁했다. 그런데 저녁에도 청소는 돼 있지 않았고 수건 등 물품도 채워져 있지 않아 불편했다.


호텔 하우스키퍼는 깜빡했다며 미안해하셨다. 다이아몬드 감정가 수준의 지식을 탐닉했던 젊은 날의 나였다면 특급호텔 서비스가 왜 이러냐며 따졌겠지만, 우리는 괜찮다 말씀드리고 웃으며 넘겼다.


다음날 외출 후 깨끗이 청소된 방에는 생수 8개, 깨끗한 수건도 그만큼 쌓여있었다. 우리는 산처럼 쌓인 수건과 생수더미를 보며 빵 터졌다. 하우스키퍼 아주머니가 자기 권한 내에서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 호텔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은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소비는 내가 쓰는 것인 동시에 누군가 버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일을 하며 알게 됐다.


대학시절에도 과외가 여의치 않으면 인력시장에 나가 노동을 한 적이 있다. 험한 말이 오가는 현장도 있는 모양이지만 대개는 서로 깍듯이 예의를 갖추며 일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함께 일하게 된 중년 아저씨와 고등학교를 중퇴한 한 두 살 어린 친구가 파트너가 돼 빌딩 외벽타일을 제거했다. 서로 존댓말을 써가며 일했고, 아시바(가설지지대)에 올라, 타일을 떼는 위험한 작업은 중년 아저씨가 도맡아 작업했다.



새참을 먹는데 예순 초반 정도되는 작업반장님이 갑자기 스몰토크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스몰토크라기엔 주제가 거창했다. 논문 식으로 표현하자면, '건국 이후 친일파 척결 실패가 현대 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이랄까? 낡은 빌딩 타일을 떼다가 근현대 정치사를 계란 라면을 먹으며 토론하다니.


게다가 작업반장님의 식견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탁월한 면이 있기까지 했다. 거친 일터란 직업과 그 사람의 관심사는 전혀 다를 수도 있구나 느꼈다.


함께 일하며 만난, 선한 인상의 중년 아저씨는 택시기사였다. 택시 비번으로 쉬는 날이 아까워 일을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앳된 친구는 중국집 배달을 하며 돈을 벌다가 지금은 일용직 노동을 한다고 했다. 이미 수천만 원을 모았는데 자기가 갖고 있으면 써버릴까 봐 인력사무소에 통장관리를 맡겼다고 했다.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작업반장님이 다가와 돈을 더 챙겨드리긴 했는데 내 몫의 담배 한 보루도 혼자 비계를 탄 아저씨에게 드리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역시 합리적인 분이었다.


일을 마친 후 학교 교문 앞에서 친구와 소주를 먹기 위해 기다렸다. 해가 서서히 본관 건물 뒤편으로 지며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혔다. 과외를 마치고 쓸쓸히 그네를 타며 맥주를 마시던 것과는 달리, 몸을 써서 번 정직한 노동이란 단어가 스쳐갔다.


역사에 정통한 작업반장, 쉬는 날이 아까운 택시기사 아저씨, 수천만 원을 모은 어린 청년의 얼굴도 떠올랐다.



일터의 귀천과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은 현실 그대로이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돈을 쓸때면 계산대 너머 지폐를 세는 탐욕스러운 부자를 떠올리며 깐깐해진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와같은 평범한 노동자다.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모두가 자신만의 사정이 있고, 페널티를 안고 있는 삶일지언정 정직하고 합리적으로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기대고, 빚지고, 갚으며 특별한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힘들게 번 것. 그걸 누군가가 가져가는 게 아니라 내가 벌고 그들도 벌고 있다는 입장에 서 보는 것. 그들 역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는 것. 모두가 열심히 살아간다는 걸 긍정해 보는 것.


호텔 컨시어지도, 하우스키퍼도 규정에 얽매이거나 집안 복잡한 사정에 정신이 쓰여 어쩔 수 없었고, 고객불평으로  괴로운 마음에 집에 돌아와 김치찌개를 하릴없이 휘적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적당히 합리적인 것도 좋겠다. 쓰는 것이며 버는 것이란 양 발로 서서 너그러워지면 스트레스가 반비례하게 된다. 내게도 좋은 일이다. 분명 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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